데이터 보관용, 풀배터리 검사
내가 정신과를 알아본 지는 꽤 되었던 것 같다.
계기는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의 압박감, 책임감, 휴식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 죄책감 등등이 겹쳐지면서
약 8개월 정도 전부터 이유없이 속이 답답하거나, 소화가 안되거나, 화가 나는 등의 일이 있었다.
남들에게는 별 일이 아니었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굉장히 큰 일로 다가온 것이 바로 '밥을 못 먹을 정도로 속이 아팠다'라는 지점이었다.
우리집에서는 '밥을 못 먹으면 정말 크게 아픈 것'이라는 기준 아닌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자신 자체가 식탐과 밥에 대한 집착이 대단한 인간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속이 너무 아파서 밥을 못먹을 지경이 된 것과, 면역력이 떨어져 대상포진까지 오게 된 것을 알게되자마자 '어쩌면 이것은 내장기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주변사람들을 비롯하여 인터넷을 총동원하여 괜찮은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기 시작했다.
물론 찾자마자 바로 병원을 예약한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주변에 '나 정신과 다니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서인지 데이터를 확인하는데에 시간이 소요된 감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사기를 당한 전력도 있고, 사람들이 좀 귀를 팔랑하게 할 만한 이야기를 해주면 거기에 쉽게 수긍해서인지 이런 병원 관련 데이터는 가능하면 '지인 검증'을 꼭 거치려고 하는 부분이 있었다.
뭐, 바쁘기도 했고.
그래서 장장 반년 정도의 검증을 거쳐 찾아가게 된 것이 바로 '광주 삼성봄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이었고, 처음에는 그렇게 검색해서 간 것도 무안할 정도로 '예약'을 하고 가지 않아 시간만 날리기도 했었다.
1. 삼성봄정신건강의학과 의원에서의 첫 상담
어이없게도 초진을 예약해야한다는 것을 몰라 무작정 찾아갔지만, 당황하지 않고 명함을 챙긴 뒤 월요일 9시가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게 된 병원은 첫 상담부터 약 2주 후에 찾아가야 할 정도로 예약 잡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그리고 찾아간 병원에서 처음 확인한 것은
1) 병원을 찾아온 목적
2) 내 심리 상태에 대한 간단한 설문조사(잠을 잘 자고 있는지,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지 등)
3) 스트레스 수치 검사(건강검진 할 때 받는거랑 비슷해보였음)
위 3가지였다.
병원을 찾아간 목적은 간단했다. 일단 현재 나의 상태가 정상인지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에, 내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종합 심리 검사(풀 배터리 검사)'를 받아보고 싶었고, 혹시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혹은 약물 치료까지 필요한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리고 설문조사는 몇 장 되지 않은 수준이라 어렵지 않게 작성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트레스 수치 검사는 걍 의자에 기대 누워있기만 하면 되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검사를 진행하고 30분 정도?를 대기했었던 것 같다. 대기 후에 처음으로 의사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의사선생님께서는 내가 병원에 온 목적을 좀 더 상세하게 확인하셨다.
그리고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약물 치료'보다는 '검사' 후에 필요하다면 '상담 치료'가 더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러면서 동시에 해 주신 말은 '생각보다 스트레스 및 피로도의 수치가 높으니 주의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회사를 퇴사할 결심을 하고, 어느정도 업무에서 많은 부분 손을 뗐음에도 불구하고 피로도가 남아있는 상태라는 부분에서 다소 놀라웠지만, 뭐 이미 만성 피로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검사를 예약하기 위해 삼성봄정신건강의학과 바로 옆에 있는 이유즈 심리상담센터로 향했다.
이유즈 심리상담센터는 삼성봄과 연계되어있는 심리상담센터라고 하였으며, 종합심리검사는 이유즈에서 진행이 가능하다고 안내해주셨다.
그리고 연계된 이유즈에서 비용 안내를 해주시고(총 30만원) 결제 후에 검사 안내 및 일정을 잡을 수 있었다.
검사는 다음 두 번으로 진행된다고 하였다.
1) 사전 질문지
- 직접 작성하는 문장 완성 검사(작성 종이를 줌, 사진으로 찍어 회신해달라고 하였다)
- 웹사이트로 진행하는 사전 질문 답변 검사
2) 대면으로 진행하는 검사
결제 후 사전 질문지와 대면 검사 일정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2. 이유즈 심리상담센터에서의 검사
우선 첫 상담을 하고 온 날 바로 집으로 돌아가서 사전 질문지를 모조리 작성했다.
문장 완성 검사의 경우 내가 텍스트로 내용을 쓰는 부분이다 보니 크게 골치아프거나 오래 걸리지는 않았지만, 내가 그 문장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나에게 아버지는 ____'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가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고 작성하느라 시간이 걸린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웹사이트로 진행한 검사였는데, 이 검사는 문항 수가 정말 살벌하게 많아서 답변을 체크하다가, 졸다가, 했었던 것 같다.
문장을 직접 작성한 종이를 사진으로 찍어 이유즈 센터로 송부한 후, 대면 검사 날짜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대면 검사는 무려 최대 4시간 가까이 소요된다고 하여서 어쩔수없이(?) 연차를 쓰고 센터에 방문했다.
센터에 갔을 때 상담을 진행할 의사선생님에게 오늘 진행할 검사에 대한 안내를 들었고(오래 걸리면 진짜 4시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검사를 시작했다. 검사는 다음 단계를 통해 진행되었다.(순서는 정확하지 않음)
1)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왜 검사를 받게 되었는지 계기 등)
2) 그림을 보고 해당 그림에 대해 연상되는대로 이야기하고,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검사
3) 지능과 관련된 순서맞추기, 나열된 숫자를 순서에 맞게 재조립하기, 상식 등에 대한 문제 등
4) 그림 그려서 해당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
5) 블럭을 통해 그림에 맞게 맞추기
6) 그림을 보고 정답에 맞게 맞추기(좌우 도형을 맞췄을 때 정답이 되는 도형을 맞춰라 등)
검사를 모두 마치고 나니 정말로 3시간 이상이 지나있었다.
검사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어려웠던 지점은 다음 지점이었다.
- '상식'에 해당하는 내용에 대해 '정답'에 가깝게끔 말하려고 하니 해당 단어나 의미가 떠오르지 않았다.
- 내가 생각하는 지점에 대해 설명을 하려고 했을 때, 생각하는 바를 온전히 의미를 담아 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어려웠다.
- 언어적인 부분을 나는 당연하게도 A --> B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께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라고 물었을 때 그 연관관계를 한번도 고려해보지 않았던 터라, 연결고리를 생각해보며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 나의 경우, 수사적인 부분에 대해 기억하고, 집중하여 이를 처리하는 것이 어려웠다.
- 수리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어려움을 겪는 지점은 알고 있었지만, 그걸 실제로 겪고나니 약간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어려움이야 둘째 치고, 나름 열심히 대답했고, 이 날은 검사만 진행한 채 집으로 향했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했었던 첫 번째 시점은 바로 이 검사를 진행한 이후였는데, 집에 가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꼼짝도 못하고 누워서 아무생각도 없이 핸드폰을 뒤적이거나 게임을 하는 등의 머리를 쓰지 않는 소모적인 일밖에 하지 못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바로 어제 결과를 들은 다음날이다.
3. 검사 결과를 듣고, 결과에 대한 후기
바로 어제 검사에 대한 결과를 들었다.
나름 센터를 향할 때에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었는데, 바로 그 걱정은 '결과가 무척 안좋아서 약물 치료를 받아야하거나, 정상인의 수치에서 멀리 떨어져있다면 어떡하지' 였는데. 다행히도 결과는 우려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결과는 내 나이 다른 사람들 기준 백분위 '평균'이었고, 일부 결과의 경우 '평균 이상'이었으며, 일부 결과의 경우 '평균 이하'로 나왔다.
그리고 심리상으로 봤을 때 나의 '검사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최근 회사 생활로 인한 영향일지는 모르겠으나, '적응 장애'가 확인됨
- 스스로를 향한 '자기 비하'와 그로 인한 '무기력', 그리고 '우울감'이 보임
상세 설명을 들었을 때 놀랄만큼 공감이 되는 이야기라(모든 이야기 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나왔다.
그리고 다음 만남(상담)을 기약하며 상담을 마무리했는데, 선생님께서 다음 상담 시에는 '내가 상담을 하려고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하셨고, 심리도식질문지(YSQ-L3)에 대해 응답해보라고 하신 후 다음 상담일정을 잡고 센터를 나왔다.
일단 전체 상담 비용은 다음이며
최초 삼성봄 정신건강의학과 내방 - 35,400원
종합심리검사(풀배터리) 비용 - 300,000원
결과 상담 및 YSQ-L3 비용 - 130,000원
소요된 일정은 다음이다.
최초 예약 - 2주 소요(전화로 2주 후 내방 요청)
대면 검사 - 영업일 기준(토욜 포함) 13일 후 진행
결과 상담 - 영업일 기준(토욜 포함) 15일 후 진행
최초 삼성봄 방문으로부터 1달 조금 넘게 소요되었고, 인터넷으로 확인한 결과 굉장히 빠르게 받은 결과라고 한다.(요즘 정신과 진료 잡기가 몹시 어려운 때이니만큼)
인생 최초로 정신과 진료 및 센터에서 종합검사를 해본 나의 후기는 이렇다.
"역시 사람은 이상이 있다면, 그게 정신이든 몸이든, 검사를 해봐야 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당장 '난 이상이 있으니 약부터 먹어볼까'가 아닌 상담부터, 검사부터 진행해보는게 맞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게 냉큼 할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비용은 아니지만, 우선순위를 따져본다면 나에겐 오히려 이 편이 싸게 먹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확실히 검사를 받고 나니, 좀 더 목표가 명확해지고, 검사 결과를 기반으로 나에게 확신이 좀 더 생겼다.
나의 이 무기력함은 확실히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부터서라도 조금씩이라도 바꿔갈 수 있는 방향으로 노력해봐야지.
나 스스로를 찾아갈 수 있는 길을 조금씩이라도 밝혀 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