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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bstructionist Mar 31. 2019

02. Su

1. 거대한 블루칩의 등장

Article 뉴욕 본사는 맨해튼 39번가에 위치한 40층 건물의 5-10층에 위치하고 있다.

Article의 재정상태가 그렇게 넉넉지 못한지라 맨해튼에 본사를 마련하는 것부터 삐꺼덕대긴 했지만,

맨해튼에 똬리를 틀고 난 이후부터 판매부수와 광고매출이 대폭 상승했다.


덕분에 처음에는 빌딩의 5, 6층만 빌렸지만 해년마다 층수를 늘려

이젠 무려 다섯 개의 층을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Article 국장은 이 상태로만 간다면 머잖아 Article 빌딩 하나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있었다.


때문에 국장은 스테판이 들고 온다는 Su의 소식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Su는 앤디워홀과 데미안허스트를 잇는 초거장이 될 것이 분명한 작가였다.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성까지 보장이 되는 작가!


하지만 그 작가의 이름을 제외한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Su에 관한 작은 신상 정보라도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이 당연했다.

국장은 이번 기회를 잘 잡으면 Article이 미술계에서 이목을 한 번에 집중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국장은 앉아 있지도 못하고 국장실에 있는 커다란 사무용 테이블 근처를 왔다 갔다 하며 안정을 찾지 못했다.

국장은 몇 번이나 들었다 놨다 한 전화기를 다시 집어 들고 5층 안내 데스크로 연결했다.


[안 왔습니다.]


연결이 되자마자 딱딱한 여성의 무뚝뚝한 말이 여지없이 내뱉어졌다.

국장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몇 번이나 반복했던 말을 되풀이했다.


“오면 꼭 연락하게.”

[네, 네. 앗… 스테판!]

“스테판??”


무미건조하게 대답하던 안내 데스크 여인이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모습을 드러내는 스테판을 보고 저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국장이 하도 전화하는 통에 자신도 스테판을 애타게 기다렸던 참이었다.

국장은 당장 올라오라는 말을 남긴 뒤 회선을 종료했다.


“안나, 무슨 일이에요?”

“난리도 아니에요.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야할 것 같은데요?”


안나가 스테판에게 등 뒤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스테판은 어색하게 웃으며 작별 인사를 남긴 뒤 뒤돌아섰다.

어쩐지 스테판의 낯빛이 창백한 것도 같다.


“괜찮아요?”


안나는 걱정 어린 목소리로 스테판에게 물었다. 스테판은 안나의 말에 손을 흔들며 다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자마자 보이는 거울로 스테판 제 얼굴이 보였다.

까만 쇼트커트에 신비로운 녹색 눈을 가진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스테판은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놀라긴 정말 많이 놀랐나 보다.


스테판은 마지막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미친 듯이 회사로 뛰어왔다.

사실 가는 도중에 국장님께 전화를 할 수도 있었지만,

머릿속이 너무나 혼란스러워서 전화는커녕 발을 움직이는 게 고작이었다.


스테판은 점점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이게 꿈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상상이 들었다.

사실 엘이 준 사진만으로는 사진 속 소년이 바로 ‘그 Su’라는 것도,

게다가 ‘그 Su’가 시실리 보스 루이 하멜의 양자라는 것도 확신하지 못했다.

그 사진은 그저 루이 하멜과 러셀 윈스턴이 만나고 있는 장면이 다였고,

그 소년은 단지 그 상황에 끼어있는 존재로만 보였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모든 정황을 종합해 봐도 시실리 보스 루이 하멜과 순 자산만으로만 따지면 세계 100대 부자 안에 드는 러셀 윈스턴이 만날 접점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루이 하멜의 양자로 짐작되는 아시아 소년을 데리고―?



띵―

엘리베이터가 10층에서 멈춰 섰다. 스테판은 무의식적으로 엘리베이터를 걸어 나갔고,

자신의 앞에 보이는 국장 때문에 화들짝 놀라 주저앉을 뻔 했다.


“스테판!”

“오… 국장님…!!”


국장은 스테판을 온몸으로 환영하며 그의 어깨를 잡고 국장실로 이끌었다.

스테판은 배불뚝이 아저씨의 손에 질질 끌려가며 여기저기 보이는 Article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스테판은 Article이 발돋움하기 시작할 때부터 합류한 멤버였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스테판이 합류하고 난 이후부터 Article이 날개를 단 것처럼 활개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 때문에 국장은 스테판을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고속 승진을 시켰고, 고작 30살에 수석 기자까지 꿰차게 됐다.


하지만 국장은 여전히 현장을 돌아다니는 스테판을 못마땅해 하다가,

이렇게 대어를 물어오니 기쁨에 춤까지 출 수 있을 정도였다.

Article 내에서는 꽤 유명한 스테판의 별명은 ‘럭키그린’이었다.

마감을 하다가 잘 안 풀리면 스테판의 머리카락을 고여 낸 물을 마시면 2시간 안에 마감을 완료할 수 있다는 허황된 이야기가 퍼질 정도로 스테판은 Article 사원 전체에게 사랑을 받는 조금 늙은 아이돌이었다.


사실 엘도 Article에 있을 당시 스테판에게 행운을 나눠주라며 매일같이 끈질기게 키스를 해대고 들이대다가 결국 사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엘은 분노한 국장 및 Article 사원들에게 쫓겨나다시피하여 USA 투데이로 간 것이다.


“얘기해봐.”

“…….”


국장은 순식간에 스테판을 꿰차고 국장실로 들어와 다짜고짜 스테판을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이미 내려놓은 커피를 재빠르게 컵에 담아 스테판에게 내밀었다.

스테판은 순식간에 벌어진 국장의 접대(?)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저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일인데 이걸 어떻게 전달해야 한담.


“일단… 이건 아직 저도 확신할 수 없어요.”

“뭔데?”


스테판은 우물쭈물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엘에게 받은 서류봉투를 꺼내 건넸다.

LTE급 속도로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낸 국장은 아까 스테판 자신이 했던 표정을 그대로 리플레이 하고 있었다.


“Oh… my…!”


벌떡

국장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물론 마지막 사진을 손에 꼭 쥔 채였다.

국장은 테이블 옆을 부산스럽게 왔다 갔다 거리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국장님?”


스테판은 뭔가 일이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은 생각에 국장을 불러봤지만, 국장은 아랑곳 않고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국장이 전화를 건 곳은, 진짜 말도 안 되는 곳이었다.


“Mr. 리? 지금 우리 잡지 인쇄가 얼마나 되었나?”


오, 맙소사


“국장님!!”


덜컹

스테판이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켜 국장의 팔을 다급하게 잡았다.

통화를 하고 있는 와중에 이게 얼마나 실례인 줄은 알지만, 지금 국장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전면 취소해야 한다.


“스테판?”

“안 돼요! 절대 안 돼요. 절대!”

“…Never?”

“Ever!”


스테판은 필사적으로 국장을 말렸다.

국장은 단호하게 안 된다고 말하는 스테판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Mr. 리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사실 이건 아무리 국장이 아끼는 스테판이라 해도 지금 이 건은 Article의 내일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사였기에 절대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국장은 일단 스테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스테판에게 다시 자리에 앉을 것을 권유했다.

테이블은 이미 엎질러진 커피 때문에 엉망진창이었기에, 국장은 자신의 수건을 가져오며 스테판에게 물었다.

다행스럽게도, 서류봉투와 사진 쪽에는 커피가 전혀 묻지 않았다.


“확신할 수 없는 거야?”

“…일단은요.”


스윽스윽

국장은 커피를 닦으며 스테판에게 다시 커피를 마실 건지 물어봤다.


“아뇨, 괜찮아요. 그보다 지금 여기에 있는 Louis Suha으로 추정되는 이 소년이 ‘그 Su’라고 확신할 수 없어요.”

“어째서?”

“러셀 윈스턴과 함께 있다고 Su라면, 지금까지 그의 손을 스쳐갔던 수많은 애송이 작가들이 전부 Su여야 해요.”

“흠…”


스테판은 사진에 있는 아시아 소년을 가리키며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냈다.

국장은 스테판의 말을 들으며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거 오랜 기자 생활을 통해 쌓은 특유의 ‘감’이 지금 스테판이 가리키고 있는 저 소년이 바로 그 ‘Su’라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소년은 너무……”

“어리다고?”

“네.”

“…사실 스테판, 나이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건 너도 알잖아?

그리고 나는 아시아인들의 나이를 도통 모르겠어. 그들은 항상 어려 보인단 말이야.”


국장이 어깨를 추겨들고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스테판도 국장이 말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국장에게 말하기 전에도 모두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스테판은 뭔가 불안했다.

지금 이 상태로 기사가 나가게 된다면 안 될 것 같다는 묘한 불안감이 그를 잠식했다.


“하지만 국장님, 확실치 않다는 건 사실이에요. 우린 미술 전문잡지라고요. USA 투데이 같은 일간지가 아니라.”

“…애인 직장을 너무 폄하하는 것 아니야?”

“흠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스테판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사실 이건 스테판의 진심이었다.

일간지가 쓰레기같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안에서 생성되는 말도 안 되는 가십거리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엘이 회사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뒤에 USA 투데이에 들어간다고 하자 대판 싸웠던 적도 있다.

그 일로 거의 헤어질 뻔 했고 말이지.


“우린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된 Fact를 전달해야죠.

명색이 technical인데, 혹시라도 이게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이면요?

USA 투데이는 그냥저냥 묻어가면 되지만 우리는 신용이 땅에 처박힌 다구요!”

“……음.”


국장은 스테판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하지만 Su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너무 없어.

이름 외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작가에 대한 풍문이라면 진위 여부를 떠나서 관심을 충분히 끌 거라고.”

“…그럼 그 뒷수습은 국장님께서 하실 건가요?”


스테판의 입이 일자로 꾹 다물어진다.

국장은 저를 똑바로 노려보는 스테판의 녹안에 이마에 식은땀이 삐질 흐르는 것 같다.

저를 매섭게 노려보는 스테판에게 국장은 결국 항복했다.


“알았어, 알았어! 일단 뒤로 미룰게. 됐지?”

“…후, 네.”


국장은 입맛을 다시며 사진을 테이블에 내려놨다.

이번에 잘만 터트리면 Article이 창공을 활짝 수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신, 제가 알아볼게요.”

“……직접?”


국장은 스테판의 제안에 귀가 다시 움찔 했다.

사실 스테판이 Article을 대표하는 럭키 가이라서 가능하면 데스크 작업을 하면 좋겠지만,

스테판의 진정한 빛은 현장 작업에서 나왔다.

과거 워싱턴 포스트에서 활약한 바 있는 스테판의 실력은 출동하는 족족 대어를 낚아올 정도였다.

 스테판의 입사 이후 Article이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스테판 본인에게 있었다.


“네, 그러니까 당분간 시간 좀 주세요.”

“…직접 뛰어다니게?”

“그래야죠. 사진까지 나온 판에, 털면 나올 거예요.”

“…….”


너무 적극적으로 나서는 스테판의 모습에 약간의 의심이 들 정도로 스테판은 몸을 국장 쪽으로 쭉 빼고 저가 조사하겠다며 국장에게 어필했다.


스테판이 털면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USA 투데이에서 기사가 나간 마당에, 몸을 움츠리면 움츠렸지 꼿꼿하게 당당할 순 없었다.

사실 러셀 측은 당당할 수 있어도, 적어도 하멜은 몸을 사려야 할 것이다.

마피아 보스라는 게 햇빛 아래 그렇게 당당하지만은 아니니 말이다.


그래서 스테판은 하멜 쪽을 공략하다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뭐, 사실 엘과의 5일 약속도 조금 걸리기도 했고.


“휴우, 하긴. 스테판 Su의 팬이었지?”

“네.”

“…그럼 다음 달 인쇄 들어가기 전까지. 가능해?”

“……끙…”


스테판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계산에 들어갔다.

약 한 달간 아무리 캔다고 해도 거부 러셀과 시실리 보스의 비밀을 캐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스테판은 고심하다가, 다다음달에 있는 Miart-Fair가 있다는 걸 기억하고, 국장에게 제안했다.


“다다음달에 있을 Miart-Fair 전에, 가져올게요.”

“……다다음달?”


톡톡…

국장은 테이블을 톡톡 치며 계산에 들어갔다.

다음 달이면 모를까, 다다음달이면 너무 늦었다. 그 때가 되면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Article의 중요 저력인 스테판을 외부로 내보내면 두 달간, 전체적인 분위기가 어떻게 바뀔지 알기 때문이었다.


"대신 당장 다음호부터 Su에 대한 특집 지면을 실어주세요."

"Su에 대한 특집은 이전에도 많이 했었어."

"알죠. 하지만 어떻게 판을 깔아놓느냐에 따라서 체크메이트가 될지, 우리가 당할지 모르는 일이에요.

빠져나갈 구멍도 마련해 놓아야죠."


다시 국장의 손이 움직이며 셈을 놓기 시작했다.

빠져나갈 구멍이냐 충격이냐, 하지만 그것 또한 스테판이 가져오는 특집의 무게감에 비례했다.


"그리고 그 참에 여기서도 조사를 진행해주세요. 항상 저에게 메일로 내용 보내주시고요."


단정적으로 말하는 스테판의 어조에 국장은 이미 계산이 한차례 마쳐졌다는 듯이 손을 거두었다.


“스테판, 너도 알겠지만 지금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

“알아요. 도약할 때죠?”


둘의 눈빛이 마주했다.

국장의 눈에는 30층이 넘는 건물에 Article의 로고가 박힌 모습이,

스테판의 눈에는 Su를 만나 작품에 사인을 받고 있는 저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부탁할게.”


타악―

둘의 손이 맞잡아졌다.


“맡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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