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 수목원의 오월. 아침부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울창한 숲은 잠시 숨을 죽이고 빗물에 촉촉이 젖어 있다. 산책로의 흙길도 많이 패어 있다. 악어의 등자국처럼.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슬며시 얼굴을 내민다. 저 산등성이 너머 운해(雲海)가 자욱해지니 날씨가 곧 개일 모양이다. 수목원의 숲 해설사는 우리 일행을 데리고 작은 키 나무 앞에 섰다.
" 이 꽃나무 이름을 아시나요? 지금 꽃이 떨어져 있지만 수수와 닮았다고 해서 수수꽃다리라고 부른답니다. 흔히들 라일락이라고도 하지요. 수수꽃다리는 자생종이고, 라일락은 서양에서 들어왔는데 서로 꽃 모양이 흡사하고 물푸레과 나무라 혼용해서 부르지요. 여러분, 즐겨 부르시는 유명한 <베사메 무쵸> 노랫말 아시죠? 베사메~베사메 무쵸 고요한 그날 밤 리라꽃 지던 밤에... 그 노래에 나오는 불어의 리라꽃이 라일락이고 우리 수수꽃다리랍니다. 중국에서는 향기가 그윽하다 하여 정향(丁香)이라고 부르지요. 자, 그럼 누가 이 잎사귀 한번 씹어 보시겠어요?"
호기심 많은 나는 아무 의심 없이 잎사귀 하나를 따서 질겅질겅 씹었다. 혀에 감도는 맛이 어찌나 쓴 지 뱉어내고 말았다.
"아니 왜 이렇게 쓰지요?"
숲 해설사는 당연하다는 듯 비시시 웃었다.
"네, 그래서 꽃말이 '첫사랑'이라고 하지요. 쓰디쓴 맛을 잘 느껴 보셨군요. '젊은 날의 추억'이라고도 합니다"
침샘에 남아있는 쓴 맛을 계속 뱉어 내면서 숲 해설은 들리지 않고 문득 한줄기 그리움이 엄습해 왔다.
그의 부음(訃音)을 들었을 때 가슴 한편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이제 마흔 후반일 텐데 벌써 세상을 떠나다니... 미국으로 이민 가서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한국에 들어오면 연락을 주었고 우리는 짧지만 오누이처럼 변함없이 안부를 나누었다. 그의 첫 모습은 수수하였다. 꾸밈없는 표정에 나지막한 말투, 나이에 걸맞지 않게 삶의 지혜가 느껴지는 진지함. 그리고 그에게서 늘 살구향 같은 화장품 냄새가 났다. 대학시절 그와의 관계는 이성(異性)보다는 친구 사이가 더 어울리듯 편하고 은근했다.
"삶이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왕복하는 시계추와 같다"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 헤르만 헤세의 사랑, 장자(莊子)의 나비의 꿈,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무궁한 신(神)들 얘기를 두서없이 얘기해도 그는 잘 경청해 주었다. 지방에서 갓 올라온 외로운 젊은이의 고민과 열망을 다독거리며, 낭만을 즐기되 현실을 잘 보라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때로는 라이브 음악감상실인 <셀부르>에서 통기타 가수들 노래를 들으며 사이다를 나누어 마시곤 했다. 그는 늘 그림자처럼 내 편에 서 있었다.
군대 소집영장이 나왔을 때다. 고향 마산에서 먼저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기에 서울역으로 가니 그가 나와 있었다. 혼자 가면 쓸쓸할 거라고 잠시나마 동행하겠다고 곁에 앉았다. 차창의 풍경을 무심히 보면서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동대구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그제야 그는 내 손을 꼭 쥐고 군대생활 잘 마치고 오라며 미소와 함께 내렸다. 다시 서울로 간다며.. 이처럼 고마운 사람이 또 있을까. 사랑이란 감정이 느껴지는 포근하고 용기를 주었던 사람이었다. 각자 가정을 꾸민 뒤에도 부부끼리 만나 인사하고 지방의 자택에 놀러 가기도 하였다. 그 후 그의 남편은 개신교 목사가 되어 사목활동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그도 열렬한 신앙인이 되어 나를 보면 신앙을 전도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그의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그저 몸이 많이 아팠다고.. 자네가 궁금하였다고.. 아버님의 두런거린 말씀이 귓전에 울렸다. 딸 넷인 딸 부잣집인데, 스스럼없이 놀러 간 집은 여기뿐이었는데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돌아 나오니 목이 메고 허망하였다. 그와의 이별을 새삼 느끼면서, 나 역시 그에게 기억되고 갈무리될 만큼 좋은 사람이었을까 자문해 보았다.
숲 해설사가 넌지시 다가왔다.
" 아직도 쓴맛을 느끼세요? 좀 지나면 없어질 거예요 "
하늘 저편에 무지개가 떴다. 아까 본 수수꽃다리에 꽃망울이 열렸다. 그 속에서 그가 다정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2022년 4월 3일 손 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