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에세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련 Sep 10. 2020

월세 재계약을 했고 나는 오늘도 컵라면을 먹는다

퇴사를 하고 나서는, 월세를 내는 25일에는 밥을 거르거나 컵라면 같은 것으로 때우고는 한다. 내가 낸 월세만큼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으니까. 내가 지금 미래의 나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으니까. 내가 나 스스로에게 내리는 유죄 판결. 그리고 컵라면은 일종의 징벌인 셈이다.



퇴사를 결정하고 마지막 근무 날이었다. 회사에서 그런대로 버텨보았지만,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지는 시점이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의심을 했고 껍데기인 채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하는 끝없는 회의감이 드는 날이었다. 내가 나답게 살고 있는지, 그렇다면 나답게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답 없는 질문들을 나 자신에게 해대는 날이었다. 회사에 있던 짐을 다 싸서 집에 들어와 방문을 열었는데, 벽에 바퀴벌레가 붙어 있었다. 여름이 되고 습해지니 종종 날벌레들이 생기긴 했지만, 정말 내 손가락 한마디 크기의 바퀴벌레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날에 그만한 벌레를 보니까 몸이 정말 굳어버렸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전기 파리채를 꺼내 그를 저승으로 보냈다. 나에겐 그 사체를 처리하는 것도 굉장히 고통스러웠는데, 환풍기조차 없는 욕실의 변기에 적당히 잘 버렸다.



대학 시절에 나는 벌레를 굉장히 잘 잡았다. 친구의 자취방에 벌레가 나오면 가서 대신 잡아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난 벌레가 나오면 몸이 굳고 이 거지 같은 방을 옮겨버리겠다는 생각을 한다. 대학생 때 머물던 자취방은, '내 집'이라기보다 잠깐 머무는 '방' 정도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고 나서도 방의 컨디션은 큰 차이가 없었다. 나는 수년간 이 방에서 지내야 했고 그런 곳에 벌레가 나타난다는 건 안전하지 않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벌레의 습격을 받을 때마다, 부동산 중개 어플을 켜 이사 갈 만한 집들을 알아봤다.


부동산 어플에 등록된 자취방의 사진은 두 종류로 갈린다.


휘황찬란한 인테리어로 휘감은 채 월세가 80만 원이 넘는 방. 그리고 월세는 50만 원이 채 되지 않지만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가 있는지 내 눈을 의심하게 되는 방. 후자의 방에서 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고 전자의 방세를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은 더더욱 없었기에 나는 여름마다 벌레가 나오는 이 방에 만족하기로 했다.



부동산 어플을 다시 지우고 침대에 누웠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에 선크림을 욱여 바른 듯이 해낸 벽지가 보였다. 그마저도 조금 울어 있었고 천장 구석에는 작게 곰팡이가 피어있었다. 그 곰팡이를 닦아내고 제거제를 바른 후 방의 습도를 조절하면서 곰팡이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지만, 가끔 내 기분에 따라 그 곰팡이 자국이 더 커진 듯 보이기도 했다. 가끔은 그 곰팡이 자국이 천장을 다 뒤덮고 어느새 벽까지 내려와 내 방을 전부 감싸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 헛된 생각은 그만 하자고 나를 다그치고 채 여름이 불을 구매하지 않아 조금은 두꺼운 이불을 뒤집어썼다. 선풍기를 틀어도 여전히 눅눅한 방구석 때문에 땀이 조금 났다. 에어컨을 틀었다. 그리고 곧 2년간의 월세 계약이 끝나간다는 걸 떠올렸다. 그 생각은 자연스레 곧 집주인이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으로 이어졌다.



내가 사는 동네는 아주 핫한 동네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져 있다. 덕분에 방의 크기와 조건에 비해 월세가 비싼 편이었다. 집주인들은 보증금보다 월세를 더 많이 받기를 원했고, 고작 사회초년생인 나에게 그걸 감당할 여유는 없었다. 더욱 깊고 교통이 불편한 곳으로 간다면 월세를 절약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면 더 이상 서울에 사는 이유가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인프라는 서울의 후미진 골목에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룸메이트를 들이는 것이었다. 옷과 책상을 놔두던 작은방에 입주할 누군가를 찾아 월세를 나누기로 했다. 결국 지인을 들였고 비좁은 방에서 장정 두 명이 오손도손 살게 됐다. 다행히도 집주인은 월세를 올려달라고 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계약 연장을 하게 됐다.



그래도 이 동네에서 이 정도의 방이면 괜찮은 거라고, 마찰감이 없는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것도 행운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래도 나는 구청 가까이에서 살잖아. 그래도 주변에 버거킹이 있어서 원할 때는 나가서 사 먹을 수도 있잖아. 벌레는 나오지만 그래도 쥐 같은 건 나오지 않잖아. 옆방의 소음이 다 들리지만 그래도 집주인이 나를 건드리지는 않잖아. 이런 껍데기 같은 위로를 계속했다.



재계약을 한 후 첫 월세를 이체하고 나서 생각했다. 집주인은 월세들이 모인 계좌를 보면 어떤 느낌일까? 가만있어도 다달이 들어오는 돈들로 무엇을 할까? 하지만 어차피 부질없는 생각이다. 임차인은 임대인의 경제력에 대해 궁금해해 봤자 도움되는 것이라곤 전혀 없다. 그리고 그날도 여지없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웠다.



언제쯤 나는 월세 날에 나를 심판대에 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돈을 많이 벌면 월세 날이 더 이상 내게 심판의 날이 아니게 될까? 전세에 살면? 그럼 난 내게 징벌을 내리지 않을까? 혹은 다른 형태의 징벌을 내릴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나는 아마 오랫동안 25일엔 굶거나 컵라면을 먹을 거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출판사에 다녔었는데요, 망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