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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Sep 07. 2020

서울살이가 힘들어도, 고향엔 내려가지 않는 이유

나는 확실히 삐뚤어진 사람이었다. 전라도의 작은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동경심이 강했다. 지금은 이렇게 작은 우물 안에 있어도 그 밖엔 더 큰 어떤 세계가 확실히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고교시절 내내 공부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한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입시 공부를 잘해야만 성대한 나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에, 나는 항상 묘목 취급을 받고는 했다. 어쩌면 묘목도 아닌 이름 없는 어떤 꽃의 씨앗 정도, 나는 딱 그 정도의 취급을 받으며 자라왔다.



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어렴풋하지만 확실한 자신감이 있었다. 남들보다 방정식이나 함수, 미적분은 못 풀어도 나만이 더 잘하는 무언가가 확실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입시 공부가 판단의 기준이 되는 이곳에서는 비록 작은 씨앗에 불과하더라도, 이곳이 아닌 더 큰 곳에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줄 세계가 존재할 거라고, 나를 받아줄 존재들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항상 품고 있었다.



나에게 그 큰 세계는 서울이라는 곳이었다. 그래서 대학을 고를 때 무조건 수도권으로 갔다. 전라도의 광역시에 있는 적당한 국립대학을 가라는 주변의 말을 전혀 귀에 담지 않았다. 남쪽 동네는 좁았고 내가 모르는 신세계가 너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내게 서울은 신세계였고 그곳에서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난 주위의 만류를 이기고 무작정 대학을 위로 올라왔다. 그 선택이 나를 파괴하는 것이든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는 것이든, 어쨌든 지루하고 따분한 남쪽에서의 생활에서 완전히 탈바꿈한다는 것 하나는 확실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난 탕아가 됐고,
 멋지게 성공하기 전까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서울이라는 신세계는 기대 이상이었다. 난생처음 보는 것들과 처음 먹는 것들이 투성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맥도널드의 빅맥도 서울에 올라와서야 처음 먹어보았다.) 잘 알지는 못하지만 어딘가 멋져 보이는 작품들이 걸린 전시회장, 줄을 서서 타는 넓은 놀이공원, 강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마시는 한강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내겐 새로웠고 흥미로웠다. 평생 이렇게 멋진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에서 즐겁고 화려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이라는 큰 도시에서 혼자 산다는 건 너무 어려운 일 투성이었다. 나는 다림질을 하며 옷의 주름을 제대로 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스무 살이 돼서야 알았다. 요리 재료를 사서 보관하고 손질하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 욕실의 물때를 자주 닦아줘야 한다는 것도, 빨래와 설거지, 청소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걸 서울살이를 하며 알았다.



또, 서울엔 나보다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우물 안에서 뭐라도 된 듯한 기분을 느꼈던 내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알게 됐다. 그들에게 열등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나의 칼을 부지런히 갈고닦아야 했는데, 나를 담금질하는 횟수만큼 내가 부족한 사람이란 걸 계속 상기해야 했다. 인간관계도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과 끊임없이 마찰을 빚었다. 그들에게 상처를 받기도 했고 내가 상처를 주기도 했다. 연줄 하나 없는 서울에서 나는 외로웠고 때로는 주저앉아버리고 싶었다. 



특히나 한 달에 한 번씩 내야 하는 월세나 통장의 잔고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나의 목을 조르는 것이었다. 가끔 스스로 푼돈을 벌거나 부모님에게 손을 벌렸는데, 그럴 때마다 부모라는 경제력의 그늘에서 참 오래도 편하게 쉬어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것들이 고향에서 가족이라는 그늘 아래서 너무 당연하게 누려온 것들이었다. 이 어려운 일들이 당연스럽게 어렵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걸 성장통이라고 한다지만, 당시의 나에겐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었고 울고 싶었다. 모두에게 인생은 세상으로부터 쏟아지는 화살 세례를 견뎌내는 것이라고 하지만, 왜 내 몸에 달라붙은 과녁은 남들보다 크게 느껴지는 걸까 싶었다.



그렇게 담금질을 당할 때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끔 고향에 내려가면 푹 쉴 수 있었다. 머리 아픈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됐으며 돈을 많이 쓸 이유도 없었다. 내게 그리움은 자주 익숙한 풍경과 음식의 맛으로 다가오고는 했는데, 고향에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바다가 있었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엄마의 김치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난 고향이 주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그리워했다.



서울살이가 강한 볕 아래에서 피와 살을 튀기며 싸우는 전쟁터였다면, 고향은 나무 그늘 아래서 등 대고 가만히 눈감고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서울과는 달리, 고향은 그늘이었다. 눈살 찌푸리지 않아도 모든 게 확연히 보이는 곳이었다. 그만큼 고향엔 서울엔 없는 안정감이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도망치고 싶었다. 그늘 아래서 계속 쉬고 싶었다. 더 큰 세계와 흥미로움을 찾아 서울로 떠났던 미성년의 다짐은 그렇게 쉽게도 부서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고향에 내려가도 느껴지는 안정감은 하루 이틀뿐이었다. 고향에서 편하게 지내는 며칠이 지나면 나는 확실히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향이라는 그늘 아래서 시원하게 쉬고 있지만 그늘을 벗어나 여전히 더 달리고 싶은 욕망이 끓어올랐으니까. 아직 내가 이뤄내지 못한 것들을, 꿈만 꾸고 있던 것들을 성취해내서 나 자신을 더 사랑하고 싶었다. 주변에 인정받고 결국엔 내가 나를 인정하며 진짜 나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아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늘이 아닌 볕이 내리쬐는 전쟁터에서 끊임없이 싸워야 했다. 수십 번이고 나 스스로를 더 담금질해야 했다. 나는 고향이라는 편안한 그늘 아래서 쉬는 동안에 내가 놓쳐버릴지도 모르는 것들을 안타까워했다. 안정감은 나를 쉬게 했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이뤄내고 싶은 나의 욕구를 더욱 끓어오르게 만들기도 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그늘에서 꽃은 필 수 없음을.



편안하기만 한 고향에 있으면 나를 꽃피울 수 없는 거였다. 탕아는 탕아다. 볕 아래에서 자신이 꽃을 만개하고 나서야 고향에 멋지게 돌아가고픈 그런 허세를 가진 존재다. 아무것도 아닌 채로, 내가 나에게 만족할 수 없는 상태로 고향에 다시 돌아가버리는 것은 나 같은 탕아들에게 너무 쪽팔린 일인 것이다. 상경의 명분과 다짐을 잃어버린 채, 꽃이 되지도 못한 채 그늘로 돌아가는 건 내게 패배와 다름없었다. 나는 이곳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됐다. 어디로 가야 할지 제대로 모르지만, 그곳이 고향은 아니었다. 나는 다시 도망쳐야 했다. 먼 길을 지나온 삶이기에 어쨌든 다시 그늘을 벗어나 볕 아래서 싸우고 있는 저들 틈에 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이것을 미련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괜한 고집이라고, 그 어떤 생산성도 없는 자아도취라고. 마치 자신의 말이 틀렸음을 짐작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자기가 맞다고 우기는 어린아이 같은 짓이라고.


맞다. 정확히 맞는 말이다. 난 그런 부류였다. 나는 어떻게든 내가 맞다고 발악하는 그런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그 아이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말이 틀렸다는 걸 알았음에도 어떻게든 고집부리는 이유는, 이렇게까지 온 이상, 내 말을 도로 물려버리면 내가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존심의 문제인 거다. 여기서 물러나면 지는 거니까. 그런 나 자신의 모습을 내가 용서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난 그런 아이들을 미련하다거나 바보 같다고 표현하지 않겠다. 그래야 탕아기에. 그런 탕아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뜨거운 볕 아래서 오늘도 달리고 있는 탕아들을 응원한다. 그들의 삶은 유난히 고집 세고 자존심 센 어느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쩌면 나같이 선택의 결과에 멋져 보이고 싶은 탕아의 이야기이기에.


가끔 너무 치열하게 살아가 자신을 불태워버리는 탕아들을 동정할 필요도 없다. 내가 아주 잘 아는데, 그런 탕아들은 동정도 별로 안 반가워한다. 그냥 내버려 두고 보시라. 아마 그들은 결국에야 자신을 사랑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들은 결국에야 멋져지기 위해 어떻게든 치열하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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