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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련 Oct 12. 2020

직장은 내 인생의 구원이 아니었다

세상은 차가웠고 구원은 셀프였어요

고등학생 땐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손에는 전공책을 들고 캠퍼스를 걷는 대학생들이 부러웠다. 대학생이 되고 나자 사원증을 걸고 다니는 회사원들이 부러웠다. 그리고 사회생활이 2년 차가 된 지금, 난 내 사원증을 어디다 뒀는지조차 모른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열등감이었다. 난 평범한 고등학생이었고 평범하게 공부를 못했으며 평범하게 지방대에 들어갔다. 그래도 무언갈 만들고 싶은 욕구는 강했기 때문에, 돈도 많이 벌고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무언가 '간지'나 보였던 광고 기획자가 되려는 꿈을 가졌다. 하지만 난 그 꿈을 정확히 광고홍보학을 전공한 지 1개월 반 만에 환불했다. 광고인이 되고자 했던 그간의 열렬한 내 마음은 어디에서 되돌려 받아야 할지 몰랐으나, 어쨌든 반품은 확실히 했다. 

거 참 인생에는 왜 뒤로가기가 없고 난리야 증말 


그저 '간지'만을 좇았단 꿈을 환불하고 나니 왕복 배송료는 고스란히 내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게 왕복 배송료는 평생 내 계좌에 찍혀본 적 없는 액수의 학자금 빚, 운동권 선배들도 받아본 적 없을 것만 같은 처참한 학점이었다. 광고홍보학과는 정말 광고나 홍보인만을 위한 수업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이 따분한 광고이론을 외우고 있을 때 나는 대부분 영화를 보거나 글을 썼다. 난 내 전공보다 국문과 전공 수업을 더 좋아했는데 당연히 학점도 후자가 훨씬 더 잘 나왔다. 광고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친구들 다 나가는 광고 공모전 한번 나가보지 않았으니 광고인으로 취업할 스펙이 없었다. 이대로 가다간 말짱 학자금도 갚지 못하고 백수가 될 게 뻔했다.



이상하게도 난 그럴수록 더욱 높은 명성을 원했다. 내 열등감은 타인의 인정에서부터 채워야만 해결이 된다고 생각했던 거다. 애초에 전공 관련된 것으로 승부를 보지 못할 거 같았으니 난 다른 스펙을 쌓기 시작했다. 닥치는 대로 대외활동을 하고 무언가를 쓰고 영상을 찍고 만들었다. 있어 보이게 잘 양념해서 SNS에도 올리고 불특정 다수가 눌러줄 좋아요를 기대했다. 그래 봤자 40-50개 수준이었지만 바뀌는 좋아요의 앞자리 숫자에 내 아드레날린 수치는 오존층이랑 하이파이브하다가 맨틀까지 다이빙하곤 했다.

이 정도면 간지 나 보이겠지? 꼭 그래야만 해...


졸업반이 되자 난 뒷걸음치며 만들어낸 스펙을 어떻게든 잘 버무렸고 이름을 대면 알 만한 기업에 마구잡이로 지원했다. 면접관이 쏟아내는 질문에 가면을 연신 갈아 끼우며 연기했다. 면접이 끝나면, 사원증을 맨 사람들 사이에 서있던 나의 코는 피노키오처럼 서울에서 국토 정중앙 양구의 배꼽까지 자랐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래도 난 더 뻔뻔해지려 했다. 나도 빛나는 저 사원증을 내 목에 걸고 말리라- 공부 좀 한다고 으스대던 그 동기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서 국토 정중앙 내 콧구멍 아래에 두고 말리라- 이런 생각을 했다.



내게 직장은 그랬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픈 일이 아니라, 그저 뒤틀린 나의 열등감을 채워줄 장식품이었다. 필기시험에서 떨어진 대기업은 내게 자랑할 만한 하이엔드 명품이었고 면접에서 떨어진 중견기업은 은근히 뽐낼 만한 고가의 브랜드 명품이었다. 반면 아무도 모르는 중소기업은 그저 헤어진 전 애인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재수 없게 입고 있던 낡아빠진 보세 제품 같은 거였다. 직장은 내게 어떠한 일을 하고 싶어 가는 곳이 아니라, 그저 한심하고 볼품없는 내 인생을 떡상 시켜줄 구원이었던 거다.


아쉽게도 태어난 게 배짱이였어요... 개미로는 못 살겠어 진짜


물론 내가 어느 대기업에 들어가서 근무하다가, '아- 역시 대기업이나 높은 연봉 따위 내 인생을 바꿔줄 수 없어- 난 정말 날 행복하게 만들어줄 그런 일이 필요해-!' 하며 청춘 드라마처럼 퇴사하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만... 뭐 그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드라마틱한 일을 겪지 않아도 난 다수의 취업 실패 경험에서 느꼈다. 장식품을 아무리 내 몸에 휘감아봤자, 그것이 날 구원해주지는 않는다. 그 어떤 것도 날 대변해줄 수 없다. 구원은 셀프다. 내 인생을 오직 나만이 구원할 수 있다.



난 스타트업에서 첫 직장을 잡아 근무를 했다. 그곳은 돈은 쥐꼬리만큼 주면서 일은 정말 더럽게 많이 시켰다.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 동료들과 뒤에서 욕도 많이 했다. 상사를 욕하며 술도 마셔봤고 내가 정말 성공시키고 싶은 프로젝트에 몰두도 해봤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직장은 내 삶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게 두어서는 안 됐다. 지금 같이 일하고 있는 내 옆자리의 동료들은 그저 같이 일하기 위해 만난 것이었다. 난 언제든 그들과 헤어질 수도 있고, 그들과 나는 업무적으로만 계약된 관계였다. 직장에서도 대학 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됐다. 직장에서는 돈만 벌고, 내가 정말 행복을 느끼고 싶은 것을 찾아야 했다.

 팀장님!!! 저 오늘은 진짜 야근할 기분 아닌데!!! 퇴근시켜주시면 안 되나요!!!!


물론 태생이 뽀로로라 처음엔 직장의 모든 이들과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실패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하지만 어딜 가나 나쁜 사람이 있듯 좋은 사람들도 있었으며 그들과는 지금도 연락하고 만난다. 직장은 내게 구원이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들은 내가 구원에 도달했을 때 내 등을 밀어준 사람들일 수도 있다. 난 여전히 그들과는 같이 걷는다.



난 아직도 내 인생의 구원을 알리는 신호탄을 찾아 헤맨다. 확실히 직장에서의 승진이나 인기 짱 사원이 된다거나 모두에게 사랑받는 뽀로로 같은 것은 아니다. (아, 물론 연봉 상승은 신호탄이라고 인정해줄 수 있겠다.) 



난 더 이상 빛나는 사원증이 필요하지 않다. 나를 구원으로 인도해줄 빛나는 무언가가 아니라, 내가 빛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아직도 애쓴다.

 

사원증이요? 술집에서 민증 대신 들이미는 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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