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미뤄두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을 겁니다
폭음은 옛말이다. 적당히 기분 좋을 만큼만, 숙취 때문에 내일이 힘들지 않을 정도로만 술 마시는 법을 터득했으니까. 음주의 적당한 선을 알게 됐다는 건, 조금씩 진해지는 내 팔자주름처럼 나이 듦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글은 잘 쓰고 있니?”
술자리가 조용해졌다. 친구가 무심코 물은 말에 모두가 입을 닫았고 내 눈치를 봤다. 어쩜 타이밍도 거지 같지, 마침 대여섯의 스무 살짜리들이 앉아있던 옆 테이블도 대화가 끊겼다. 술집 안의 모든 사람들이 내 대답을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난 딱히 할 말이 없어 잔을 들이켰다. 그날따라 소주잔이 차가웠던 거 같다. 잔을 손에 쥘 때마다 전해지는 냉기를 아프게 느꼈다.
나 같은 게 무슨 글을 쓰냐고, 그만뒀다고 말했다. 연출도 음악도 그냥 이젠 안 한다고, 취미 정도면 좋을 거 같다고 애써 말했다. 난 이제 뭘 해 먹고 살아야 할까 농담을 던지며 무거운 분위기를 풀었다. 그러자 친구들이 각자 스무 살 적의 꿈들을 털어놨다. 미술을 하려고 했던 친구, 영화의 꿈을 키웠던 친구, 방송을 하고 싶었던 친구까지. 대학에 들어오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이 나이가 되면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말들이 술집을 가득 채웠다. 오전 수업을 빠질 만큼 술을 마셔대던 대학 때와는 달리, 우린 다음 날의 출근을 위해 자리를 일찍 마무리했다. 자리를 일어나며 슬펐던 건, 우리가 그 시절 꾸던 꿈을 전부 과거형으로 발음했다는 것이다. 우린 그날 넘어뜨린 술병 속의 술처럼 흘러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날따라 그 친구들의 뒷모습이 작게 보였다.
미술을 하려고 했던 친구는 영업 사원이 됐다. 영화의 꿈을 키우던 친구는 미술관에서 일을 하고, 방송을 하고 싶었던 친구는 카페를 직장으로 삼게 됐다. 스무 살의 꿈들은 흩어지고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그래도 넌 하고 싶은 거 해”
날 위로하려던 친구의 말이 내겐 왜 그렇게 아프게 다가왔을까. 자취방으로 돌아가며 후회했다.
아, 오늘은 그냥 죽도록 마실걸.
자취방에 들어와 문을 닫으며 생각했다. 쉽게 흥미를 갖고 쉽게 흥미를 잃는 나는 딱 그 정도인 사람인 걸까. 연출도, 글이나 음악도 그냥 관심에 불과했으려나. 애매한 술기운을 쫓으려 물을 마시는데, 손에 댄 머그잔마저도 차가웠다. ‘분명 직업은 자아실현의 도구랬는데, 씨발’ 읊조리며 잡코리아를 켠 뒤 취업 리스트를 내리니 한숨이 계속 나왔다. 그렇게 소주 냄새를 방에 가득 채웠다.
다음 날은 이상하게 머리가 더 아팠다. 어제 소맥으로 시작해 하이볼까지 섞어 마신 게 문제였으려나, 생각하며 두통약을 먹었다. 숙취로 인한 두통에 두통약은 미봉책이라고 어느 의사가 그랬다. 건강에 좋지 않으니 술을 줄이는 게 근원적인 처방이라고. ‘아, 맞다. 그랬었지. 술 줄여야겠다’ 생각하며 약기운이 돌기 전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어제 얼마나 마셨는지, 술값은 누구에게 보내면 되는지 시끌시끌했을 단톡방이 그날따라 조용했다. 다들 어제 대화의 여파가 큰 걸까. 잃어버린 꿈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으려나.
난 매일같이 중간 정도의 재능을 가진 나를 저주했다. 남들보다 관심을 가지는 분야가 많았으나 그냥 그 정도였다. 특출나지도 않고 직업으로 삼기에는 더더욱 보잘것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따금씩 누군가의 칭찬을 받을 뿐, 입에 발린 말이란 것 즈음은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많았고 내가 가진 능력은 나도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열심히 노력해서 능력을 계발해야만 한다지만, 그러기엔 현실이 너무 무거웠다. 영화를 꿈꾸던 그 친구는, 영화계의 박봉으로는 집의 빚을 갚을 수도, 생활 유지를 할 수도 없어 미술관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영화판에서 존버해야 영화 인맥을 쌓는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겐 이번 달의 생활비가 가장 큰 위협이었으니까. 미술을 하고 싶어 하던 친구는, 부모에게 더 이상 손 벌리기 미안하다며 영업 사원이 됐다. 유학 가서 미술을 배우거나 미술 전공으로 대학을 또 다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이 먹고 돈도 스스로 못 버냐는 주변의 눈초리를 견딜 수 없었기에. 방송을 하고 싶어하던 친구는 언론고시를 준비할 자금이 없어 카페에서 일한다. 일하며 방송계 취업을 생각하지만, 바빠 여유가 나지 않아 쉽지 않다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겐 갚아야 할 학자금이, 아들에게 거는 가족의 기대가, 타인의 시선에 쉽게 매몰되는 나의 기질이 존재한다. ‘포기하지 말라, 부딪히라. 노력하라’라고 헛소리하는 어른들은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로 살아본 적이 없고, 내 친구들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누구나 각자의 사연이 있고, 그 사연을 버티며 산다. 누가 뭐래도 내 사연이 나한텐 가장 힘든 거다.
약기운이 돌고 나니 지끈거리던 머리가 편해졌다. 집에만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평소에 좋아하던 카페를 갔다. 비가 왔고, 세상은 온통 회색으로 가라앉아있었다. 난 홀로 앉아 커피를 시키고 무엇이든 쓰기 시작했다.
‘난 내가 스무 살 즈음엔 세상의 한 부분에 큰 획을 긋고 요절할 천재인 줄 알았는데…’
간단한 자조로 시작한 문장은 이내 내가 포기한 꿈들을 적는 것으로 이어졌다. 천재적 재능이 없는 이상 무조건 손가락만 빨게 된다는 꿈.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꿈 같은 것들. 그러다 창피하게도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울어본 게 언제더라. 건조한 눈에 인공눈물을 떨어뜨릴 때야 ‘아, 이게 눈물을 흘리는 느낌이었지’ 생각했던 게 엊그제였는데. 난 이내 눈물을 빠르게 훔쳤다. 왜 그랬지. 말을 먼저 걸어보고 싶었지만 쑥스러워 친해지지 못한 사장님이 날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봐서 그랬으려나. 아님 20대 중반의 남자가 혼자 처량하게 울고 있는 모습을 남들이 보면 뭐라 생각할까 창피하니 그랬으려나.
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숙취를 견디기 위해 먹는 두통약처럼 미봉책을 조금 더 유지하자고. 취업을 할지, 꿈이라는 뜬구름을 잡으려 점프할지 찬찬히 생각하기로 했다는 거다. 꿈을 유예하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미래를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더 많이 울어야 하는 걸까. 난 내 꿈을 위해 결단 하나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그런 비겁한 사람으로 좀 더 살기로 했다. 그런대로 괜찮다. 이런 용기 없는 모습도 나임을 인정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픽하이의 낙화를 들었다. 그날따라 가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가질 수 없는 꿈이지만, 버림받은 꿈이지만, 비틀거리는 꿈이지만 I have a dream’
‘내 꿈은 하늘을 걷는 난쟁이의 꿈, 달콤한 자장가에 잠이 든 고아의 꿈, 시간을 뒤로 되돌린 불효자의 꿈, 내 꿈은 세상 모든 어머니의 꿈, 내 꿈은 크게 노래 부르는 벙어리의 꿈, 내 꿈은 사랑하는 사람의 작은 속삭임에 미소를 짓는 귀머거리의 꿈’
거참 더럽게 슬픈 가사네- 생각하며 걸었다.
집에 가면 긴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