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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mbrella Nov 19. 2021

Error Code-2. G에게

안고 싶고 안기고 싶은 나의 G에게.

할머니 안녕하세요, 은진이에요.


편지가 업로드될 즈음은 의미심장한 날이겠죠. 하지만 무슨 날인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알 필요는 없으니, 여기에 굳이 설명하지는 않을래요. 그냥 제 마음이 생각보다 덜 울렁거려서, 아직 그날이 되기 이틀 전에 이 편지를 써서 그래서 그런 걸까요, 놀라울 따름이에요.


할머니, 제 또래들 사이에서는 벌써 일 년, 이라는 노래 제목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인기인데요. 진짜 벌써 일 년이 빠르게 흘러갔네요. 할머니 저는요, 할머니의 투박하면서도 따뜻하고, 딱딱하면서도 물렁했던 그 손을 만질 수 없다는 게 슬퍼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슬픈 건요, 누구보다 푸근한 품을 가졌던 할머니의 품 안에 안기지 못한다는 사실이에요 제게 죽음을 가장 실감 나게 하는 건 촉감인 거 같아요. 할머니의 손을 만지작 거릴 수 없고, 할머니의 팔과 어깨와 다리를 주무를 수 없고, 할머니의 허리를 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저의 눈앞을 순식간에 흐려버려요.  


할머니. 전 저번 주에 할머니한테 다녀왔어요. 납골당에 다녀온 걸 할머니한테 다녀왔다고 말할 수 있는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게다가 우리 가족은 교회를 다니잖아요. 근데 납골당을 찾아가는 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을까? 그걸 할머니를 찾아간다고 말할 수 있을까? 가면서도 의문이 들기도 해요. 사실 납골당은, 죽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기보단 산 사람을 위해, 즉 남은 사람을 위해 남은 사람이 죽은 사람을 마음껏 그리워하고 울기 위해 만든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혹 누군가는 자기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서 가기도 하겠죠. 전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그걸 ‘할머니를 찾아갔다.’라고 의미 부여하는 건 어폐가 있지 않나,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우리 가족이 그 단어를 사용하는 건 말이에요.


이런 말을 굳이 이 편지지에 적는 건, 엄마 때문이에요. 할머니도 아시죠. 저는 제 엄마를 정말이지, 정말  도무지 사랑하지 못하잖아요.  아니, 이해할 수 없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맞으려나요, 맞아요. 할머니의 딸이요. 할머니에게는 영원히 아픈 손가락일 그 사람이요.. 물론 할머니에겐 안 아플 손가락이 없을 테지만요.


할머니. 저는 이번 추석에 가족들을, 아니 남들은 친척들이라고 부르는 삼촌과 이모들을 보러 가지 않았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보고 싶지 않고 보지 않을 생각이에요. 전 그들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요. 그들을 보면 그들의 무책임함과 뻔뻔함에 안 그래도 없었던 어이가 상실하고 분노가 폭발해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거든요. 그럼 전 또, 제가 왜 울었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하겠죠. 하지만 정작 제 진짜 속마음은 전달하지 못했겠죠.


당신들이 지긋지긋하다고. 당신들이 당신들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지 않고, 남의 돈을 꾸려고만 하는 것이 지긋지긋하다고. 제발 당신들의 숨은 당신들이 챙겼으면 좋겠다고. 제발 그만 징징댔으면 좋겠다고. 나도 20살 때부터는 내 용돈 벌이는 하고 살았는데, 당신들은 왜 그걸 하지 않느냐고.  그렇게 소리 지를 수 없겠죠. 아마 이 한마디를 꺼내는 순간, 저는 엄마나 아니면 삼촌 혹은 이모에게 뺨을 맞거나, 욕을 들을지도 몰라요. 아마 엄마에게 차마 이 편지에 담을 수도 없는 욕을 듣겠죠. 늘 그래 왔던 것처럼요.


할머니, 전 어릴 때부터 제가 학대받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 집엔 이불을 잘못 개는 일에도 쓰리 아웃제가 있었어요.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째로 이불을 잘못 개는 날이면 저는 아침부터 욕을 들어야 했어요. 날 세상에 내놓은 사람이, 이불이 잘못 접었다며 나의 존재를 짓밟아버리는 욕을 들었을 때 얻는 모멸감은 음… 꽤나 정말이지 꽤나 힘들어요. 그럴 때면 생각했어요. 난 왜 태어난 걸까? 그녀는 날 왜 굳이 낳은 걸까? 그녀도 나의 존재가 달갑진 않았을 텐데, 하고 말이에요. 사실 저도 세상에 태어나길 바란 적은 없었거든요.  


할머니, 할머니는 저희 아빠를 오서방이라고 부르면서, 오서방이 그렇게 싫지는 않다고 했잖아요. 저도 차라리 제 아빠란 사람을 오서방이라고 부르는 게 편했어요. 그 오서방이라는 사람은 텔레비전을 볼 때 발을 쭉 뻗고 엄지발가락을 꼬고 앉는 습관이 있었대요. 근데 희한하고 슬프게도 제게도 그런 습관이 있어요. 엄마는 제가 그렇게 앉아있을 때면 역시 피는 못 속인다며 넌 오서방의 딸이라고 말하곤 했어요. 전 그때마다 생각했어요. 아, 엄마에게 난 그녀의 딸이 아니구나. 그녀에게 난, 오서방의 딸이구나. 엄마에게 난, 외계인의 딸이나 다름없을 수도 있겠다, 하고 말이에요.


물론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죠. 하지만 할머니, 우리 가족이 항상 잊어버리는 건요, 제 생각과  감정이에요. 우리 가족은 항상 제가 어떻게 느꼈는지, 제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제가 얼마나 속상하고 괴로웠는지는 신경 쓰지 않아요. (그에 비해 전 온 가족의 카운슬러였죠. 설날이나 명절 때면 전 항상 바빴잖아요. 외숙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모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요. 사실 그게 저한텐 조금 버겁기도 했거든요.)


제 애착 이불만 해도 그랬죠. 7살은 어린 나이예요. 그 어린애가 밤에 낯선 곳에 자는 것이 무서워 좋아하는 이불을 들고 가는 건, 놀림당할 일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삼촌과 이모, 그리고 또 다른  어른들, 그리고 그 어른들을 보고 제 사촌들은 제 이불과 저를 놀려댔죠. “다 큰 일곱 살이 아직도 이불을 들고 다닌다”고요. 그래서 전 아직도 그 이불을 안고 자요. 이젠 다른 곳에 여행을 갈 땐 그 이불을 챙겨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잠이 안 오고 두려운 밤이 찾아올 때면 그 이불 없이는 잠에 들지 못해요. 일곱 살의 저에겐 그 이불은 친구였어요. 그는 제게 필요한 존재였고, 그건 생존 욕구에 가까웠어요. 하지만 그의 존재는 가족들에겐 달랐죠. 그저 놀림거리일 뿐이었어요.


그렇게 전 어릴 때부터 서서히 이런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애가 돼버리기 시작했던 거예요. 가족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학을 떼는 사람이요. 제가 남들에 비해 어린 시절을 유독 잘 기억하는 건,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에요, 그때의 기억이 그만큼 저에게 고통이어서 그런 거예요. 그만큼 저를 괴롭혀서 그런 거예요. 잊을 수 없어서 기억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이런 날, 가족들을 원망하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요. 그리고 이미 전 22살에 할머니와 가족들에게, 그러니까 할머니와 삼촌과 외숙모, 이모와 엄마에게 너무나도 많이 제 감정들을 쏟아냈기에, 그리고 그때의 제 폭력성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기에 이 편지를 쓰고 있는 건데요. 또 원망을 하고 말았네요. 아직 제 안에 응어리가 다 풀리지는 않았나 봐요. 아니면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가 죽고, 그 몇 달 뒤에 오서방이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대는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3년 만에 되풀이되는 것 때문에 그런 걸까요? 그래서 그런지 요 몇 주 정말 지옥 같았어요.


아 참, 할머니. 전 이제 신을 믿는 게 조금 어려워졌어요. 아마 제가 신을 믿는다면, 그건 원망할 대상을 찾기 위해서인 거 같아요. 이렇게 엿같은 세상을 만들고, 고통에 절여진 사람들을 관조하고만 있는 신에게 욕하고 싶어서요. 근데 그 신이 하필 전지전능하고, 완전무결하다기에, 그러면 내가 욕하고 소리 지르고 악을 써도 크게 죄책감이 들지 않아서, 그래서 믿는 거 같아요. 할머니한테 이런 말을 하면 오 주여, 하실까 봐 말씀은 못 드렸어요.


하여튼 저는 이제 천국보다는 지옥이라는 단어를 많이 써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그런데 전 이런 제가 더 좋아요. 비전이니 꿈이니 뭐니, 그런 긍정적인 단어들로 희망찬 미래로 가득했던 삶을 꿈꿨던 오은진보다 지옥 같은 삶을 살아도 우울과 권태를 통해 볼 수 있는 세상을 쓰는 오은진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할머니가 그토록 바라던 선생님의 꿈은 잠시 접어두었지만, 완전히 접어둔 건 아니니 너무 슬퍼하지 마시길. 그리고 혹 제가 선생님이 되지 않더라도 제가 무얼 하든, 저의 꿈을 응원해주실 걸 전 알아요.


아참, 엄마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모랑 아웅다웅 잘 지내고 있답니다. 사실 아웅다웅 보다는 요새는 알콩 달콩의 비중이 더 늘어난 것도 같으니 걱정을 조금 더 덜어내셔도 될 것 같아요.


할머니. 원랜 할머니를 아주 아주 정말 정말 사랑했다는 내용들로, 할머니와의 추억들로 가득한 편지를 쓰려고 했는데, 벌써 세 쪽이라 이만 줄여야 할 것 같아요. 할머니를 향한 제 사랑은, 우리 나중에 나누기로 해요.  사랑해요. 아주 많이요. 그리고 감사해요. 할머니의 손녀라서, 할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자랑스러워요.


할머니 단언컨대 저는요, 비록 원망으로 가득한 편지를 썼지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많이 당신을 사랑했어요. 그러니까 다시 한번, 사랑해요. 사랑합니다. 또 늘 보고 싶어요. 거기선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길 바라요. 할머니가 믿는 하늘나라가 있다면, 우리 꼭 다시 봐요. 


From. um___br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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