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박람회 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일어나 기차를 타고 광주로 갔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기대하는 것은 인생 첫 출장이라는 것과 밥이 맛있는 전라도로 간다는 것이었다.
원래도 호텔을 좋아하고, 대표님이 또 좋은 곳으로 방을 잡아주신거 같아 새벽부터 편한 밤을 기대했다.
그리고 맛있기로 소문난 전라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그것도 신났다.
서울 음식은 자극적이기만 하고 맛이 없어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참고로 난 대구사람이다)
그것빼고는 다 걱정이었다.
출근한지 열흘도 안됐는데 사람들 앞에서 우리 서비스를 시연하고 설명해야하는 것.
정부 박람회인 만큼 기관에서 높으신 분들도 많이 오신다는 것.
대표님 앞에서 실수하면 혼날거 같다는 것.
하루에 7시간을 서서 밥먹을 때 말고는 쉬지도 않고 말을 해야한다는 것.
그렇게 기대와 걱정을 안고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입구에 도착해 하루 먼저 와 계신 팀장님께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께서 나오셔서 명찰을 주셨고 명찰에 새겨진 QR코드를 찍고 입장했다.
박람회장의 규모는 꽤 컸다.
정부 박람회라 그런지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여러 기관이나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대기업에서 멋지게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우리와 같은 중소협력사 부스는 상대적으로 초라했다.
심지어 단체로 구석에 자리잡고 있어 자칫하면 방문객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돌아갈 위치였다.
팀장님께서는 부스 준비로 여념이 없으셨다.
정황상 인터넷선을 당일 아침에 받으신 것 같았다.
하지만 공유기에 연결을 해도 인터넷이 되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계셨다.
급한대로 내 핫스팟으로 TV에 소개영상과 페이지를 세팅하고 공유기를 만져보았다.
그 와중에 대표님도 오셔서 괜히 한소리 들을까봐 빨리 세팅을 끝내려고 했지만 공유기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결국 혼자 10분 동안 난리를 친 다음에야 세팅을 완료할 수 있었고 손님 맞을 준비를 완료했다.
근데 한가지 문제가 더 있었다.
인원이 부족해 부스 운영 단기 알바 한명을 채용했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팀장님께 여쭤보니 노쇼한거 같다고 연락도 안받는다 하셨다.
그래서 나에게 채용 사이트에서 다른 지원자를 찾아 전화를 돌려보라고 하셨다.
'나도 출근한지 얼마 안됐는데 감히 어떻게 사람을 뽑지'라는 생각으로 지원자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다행히 한분이 된다고 하셨고 오후에 출근하는 걸로 이야기를 마쳤다.
예상보다 우리 부스 방문객은 더 적었다.
아예 우리 라인 자체가 방문객이 없었다.
그럴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입구에서 들어오면 정부기관이랑 대기업에서 열심히 준비한 부스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데 굳이 볼거없는 구석으로 올까...
대신 대표님과 안면이 있거나 비슷한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 대표님이나 기관분들이 꽤 오셨다.
다행히 그분들은 대표님이 맡으셨고 우리는 그나마 작은 관심이라도 가져주시는 분들께 열심히 서비스를 홍보했다.
하지만 절반 정도는 멀뚱히 서있는 시간이었다.
괜히 옆 부스는 사람이 많나 하면서 기웃거리고 그곳에서도 같은 처지의 부스를 흘낏하긴 마찬가지였다.
점심은 팀장님과 함께 먹었다.
뭘 먹지 고민하다가 냉면집에 갔는데 오겹살 두루치기 정식이 있어 시켰다.
생각보다 서울이랑 물가차이가 없어서 놀랐는데 나오는 음식을 보니 그럴만하다 생각했다.
반찬이 정말 갖가지가 넘었고 메인메뉴인 오겹살 두루치기의 양도 상당했다.
맛은 정말 훌륭했다.
서울에서는 먹기 힘든 건강하고도 깊은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반찬도 하나하나 다 맛있었고 특히 젓갈 맛 많이 나는 김치가 정말 맛있었다.
그렇게 음식 하나하나를 다 음미하면서 먹는 경험을 오랜만이었다.
그렇게 먹고 돌아오니 알바분이 도착하셔서 데리러 갔다.
첫인상은 밝고 좋아보이셨다. 뭔가 야무진 구석이 있어 보이셨다.
팀장님과 대표님께 소개를 드리고 일을 알려드렸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은품을 미끼로 홍보를 하고, 앱 설치와 회원가입을 시킨 뒤, 서비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룰렛을 돌려 경품을 추천하는 프로세스를 알려드렸다.
당연히 처음에는 헷갈려하고 우리 서비스를 설명하는데 많이 힘들어하셨지만 금방 익히고 잘 하셔서 다행이었다.
팀장님도 차라리 이 분이 오셔서 다행이라고 하셨다.
점심 이후로는 사람들이 꽤 몰렸다.
대부분은 경품 이벤트 때문에 오셨지만 그래도 기회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우리 서비스를 홍보했다.
몇시간 정도 하니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기관에서 오신 분들은 여전히 상대하기 부담스러웠다.
대표님 앞에서 얼타다가 등짝도 맞고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
그렇게 5시가 되고 박람회 1일차가 끝났다.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개발팀과 함께하는 회식이 있었다.
대표님께서 유명한 육전집을 예약하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이동했다.
개발팀 팀원분들은 모두 인상이 좋으셨다.
맨날 화상으로만 뵙다가 실제로 함께하니 생각보다 더 친절하고 좋으신 분들이었다.
몇분을 제외하고는 다 또래라 같이 시원하게 술을 마시고 싶었지만 차를 가져오거나 다들 내일 바쁘셔서 팀장님과 한분하고만 소맥을 말았다.
육전은 정말 맛있었다.
나는 육전을 서울에서만 먹어봤는데, 당연히 누린내가 나는 음식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놀라울만큼 냄새가 안나고 맛있었다.
새우전, 낙지전, 굴전 모두 맛있었다. 특히 굴을 잘 먹지 않는 나도 굴전을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남초회사의 회식은 생각보다 잔잔했다.
한명씩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술을 마시고 간단하게 사는 얘기, 일하면서 힘든 얘기 등 회사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회식을 마치고 팀장님이 대표님과 팀장님, 나를 숙소까지 태워주셨다.
대표님은 방으로 들어가시고 팀장님과 나는 술을 더 했다.
입사한지 열흘밖에 안됐는데 팀장님이랑 이렇게 따로 술을 먹는다는게 신기했고, 생각보다 편해서 더 신기했다. 여기서 첫 커리어를 시작해서 나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팀장님과 일얘기, 연애얘기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숙소로 도착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스타일러도 써보고 혼자 큰 침대에 누워서 잠도 자고 재밌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