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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Aug 06. 2020

중독

생각하는 나를 찾으세요

일로 만난 어떤 사람과 간단한 식사를 한 후 카페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나와의 대화에 썩 집중하지 못하는 느낌을 계속 주고 있었다. 퇴근 이후 시간이니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왜 이리 불안해 보일까. 카페에 앉은 후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계속 ‘잠깐만요’, ‘잠깐만요’ 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어 SNS 댓글을 확인하고 답을 하는 것이었다. 회사 SNS를 관리하는 일도 겸임하나보다, 하고 널리 이해하려던 찰나, 그는 자랑스럽게 그것이 자신의 개인 SNS이며 팔로워 숫자가 엄청나다고 이야기했다. 

“아, 그러세요?”

비로소 그가 나와 얘기하는 동안, 처절한 SNS 금단 증상에 시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한 마디에 영향을 받아 수백 개의 ‘좋아요’가 달리는 SNS 안은 얼마나 달콤할 것이며, 그 밖의 세상은 그에게 얼마나 시시하고 지루했을까. 이해는 했지만 어쨌거나 그 순간, 그의 눈앞에 실존하던 대상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팔로워들보다 존중받지 못했다는, 서운한 느낌은 지우기 힘들었다. 


예전에는 중독이라고 하면 알코올이나 마약, 도박 같은 것을 떠올렸지만 요즘은 그 범위가 더욱 확장되었다. 게임, SNS, 운동 나아가 사이비 종교까지. 여기서 사이비 종교를 붙인 것은 그들의 증상이 중독자의 증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한 인간의 일상을 침범하고 사회적 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중독에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중독은 내 마음대로 멈추거나 조절할 수가 없는 것이다. 때론 자신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대다수 사람은 잠깐씩 뭔가에 빠지긴 해도 그것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관심사를 여러 곳에 분산시키는 게 생활에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뭔가 한 가지에 미친 듯이 빠지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지 않은가 싶다.     

우선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 남편과 아이들이 있는 가정주부인데도 아이돌 팬 활동에 중독된 경우를 본다. 그들의 앨범을 사고 음악을 즐겨 듣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해외공연까지 따라가는 수준이다. 젊어서부터 내내 직장과 가정을 위해 희생만 했고, 제대로 ‘놀아본’ 적 없다는 결핍감에서 오는 몰입이다. 

공부에 취미가 없는데 공부를 해야만 하는 학생들은 도피처로 ‘게임’에 몰두한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솜씨로 제작된 게임은 현란한 이미지와 흥미로운 시나리오로 중독될 의지가 없는 사람도 쉽게 끌어들이는데 공부 말고 다른 것을 찾는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매력적이겠는가. 

몸매를 관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경우엔 운동에도 중독된다. 나 같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더는 완벽할 수 없는 몸매임에도 운동, 운동에 매진한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완벽한 몸매가 눈에 보이지 않고, 어쩌면 더 살이 찔 미래의 모습, 많이 퍼져 있던 과거의 모습만 머릿속에 가득한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상대가 없다. 사람이 슬플 때는 슬퍼하며 울고, 위로받고, 실망했을 때는 어떤 방식으로든 실망을 표현한 뒤, 또 위로받아야 한다. 그런데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줄 상대가 없다. 결국, 자신의 진짜 감정을 속으로 누르고 있다가 엉뚱한 중독 대상에게 쏟아붓는다. 아이돌을 향해 웃는 듯 울고, 게임 속 캐릭터 옷을 빌려 입어 화풀이를 하고, SNS에 현실에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적는다. 


최근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킨 한 사이비 종교단체는 한 개인을 철저히 분석하여 그의 약한 부분에 파고든다고 한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쏟아내려고 하는 ‘일반’ 사람들과 달리. 자신만을 위해주고, 챙겨주고, 모든 불안과 걱정을 다 듣고 잠재워주는 ‘그쪽’ 상대가 어찌 좋아 보이지 않을까. 그렇게 자신에 대해 철저히 파악하고 이해해서 입안의 혀처럼 구는 사람에게서 벗어난다는 것은 외로운 사람의 처지에선 무척 아쉽고 미련이 남는 일이다. 모두가 바쁜 현대사회에서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을 쉽게 믿었다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게 씁쓸하지만 말이다.     

결국, 뭔가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개선되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힘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중독에 끌려들어 갔다는 거짓 믿음을 버리고 강하고 당당한 주체자로서 게임이나 SNS, 운동이나 사이비 종교 뒤에 숨어버린 진짜 문제를 찾아 들여다봐야 한다. 그 어떤 것도 ‘생각하는 나’보다 강하게 내 삶을 좌지우지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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