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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Jul 25. 2020

연민

초조한 마음에 지면 안 돼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런 내레이션으로 시작된다. 

‘작가란 언제나 머릿속으로 상상의 나래를 편 채 무궁무진한 소재를 가지고 끊임없이 사건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 문장이 스테판 츠바이크의 소설 <초조한 마음Ungeduld des Herzens>에서 따온 것임을 나는 훗날 알게 되었다. 잘 모르던 감독으로부터 역시 잘 모르던 작가의 책을 소개받은 셈인데 이 독서로 인해 뜻밖에 ‘연민의 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연민(憐愍)은 한마디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자 상대의 슬픔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감정이다. 그런데 왜 나는 연민을 마흔이 되기 전 끊어야 할 것으로 골라냈을까.     

 

<초조한 마음>의 주인공 호프밀러 소위는 어느 날 우연히 한 저택에서 벌어진 연회에 초대되고 별생각 없이 저택의 주인 딸 에디트에게 춤을 신청한다. 그러나 에디트는 목발 없이 걸을 수 없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저지른 무례에 보상하고 싶어진 호프밀러는 정중한 사과를 한 후 그 집을 매일 방문하게 된다. 거기엔 연민이 작용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연민. 호프밀러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 남을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녀의 마음이 자신에 대한 연정으로 바뀐 것을 깨닫게 되면서 엄청난 당혹감을 느끼게 된다. 에디트의 주치의 콘도어는 그런 호프밀러에게 이런 말을 들려준다.

“연민이라는 것은 양날을 가졌답니다. …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연민은 무관심보다도 더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 의사들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판사나, 법 집행관, 전당포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가 연민에 굴복한다면 이 세상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연민이란 남의 불행을 보고 느끼는 충격과 부끄러움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소심한 인간들의 초조한 마음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이 그러하다. 누군가를 보고 연민을 느끼는 순간, 마치 의무처럼, 자동 반사처럼 상대방을 배려하고 도우려는 의지를 발동시킨다. 나는 좋은 사람이고, 이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성금을 내고, 방문을 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고, 혀를 차며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것은 불편해진 자신의 마음을 가볍게 떨어버리려는 의도일 수 있다. 연민의 대상이 만약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닌 다른 것, 혹은 그 이상을 원할 경우, 당장 발을 빼고 도망갈 궁리를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우리 주변에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우리가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냉혈한처럼 마음의 문을 닫고 산다면 그들과의 공생은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마치 공식처럼 단순하게 남을 돕는 것은 좋은 것, 우리는 모두 연민을 가져야 하고 남을 돕는 일에 열중해야 한다고 믿는 것 역시 위험하다. 특히 너무 선량한 사람, 거절해야 할 때조차 거절하지 못하는, 자기 방어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말이다.      

나 역시 한때 습관처럼 결핍이 있는 남자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다. 무난한 가정에서 어려움 없이 성장한 남자들에게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반대로 어딘지 그늘이 있거나, 곤란에 처해 있거나, 한마디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상대여야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사람에게 그런 빈틈이 있어야 내가 ‘함부로’ 그 인생에 끼어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부자연스러운 관심이 건강한 관계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당신도 한번 자신을 돌아보라. 상대방보다 썩 나을 것 없음에도 감히 남에게 연민을 느끼고, 남의 인생에 참견하고 싶어 한 적은 없는지. 소설 속 호프밀러는 신체적으로는 정상일지 몰라도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고하는 측면에서는 목발이 필요한 사람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외면은 멀쩡하다 해도 내면적으로 사소한 연민에 동정을 베푼 뒤 모두에게서 인정받거나, 칭찬받고자 하는 지지리 못난 측면이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서 남의 인생에 함부로 관여하는 일은 서로에게 불행이 될 수 있다. 상대방은 기대를 키우고 자신은 상대방에 대한 부담감과 자신에 대한 자괴감을 키우게 되므로.      


그럼 연민을 느낀 후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자신의 한계를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과도하게 ‘좋은 사람’ 코스프레를 하지 않도록 주의했으면 한다. 그저 곁에 있어 줄 수 있는 친구, 동료, 이웃이라는 점에 만족하도록 하자. 그 이상의 찬사나 인사치레를 기대하며 연민에 지나친 발동을 걸지 말아야 한다. 길에서 머무는 노숙자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길과 각자의 행운이 있다. 꼭 내가 그 사람의 인생에서 영웅이나 구세주가 되어주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물론 소설 속 콘도어처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히 알고 함께 모든 것을 견디며 극복하겠다는 의지까지 가질 수 있다면 이런 조언조차 필요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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