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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은강 Aug 09. 2020

그는 왜 그런 사과문을 썼나?

며칠 전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비정상회담으로 스타가 된 가나인 샘 오취리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이런 글을 올렸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의정부고교 학생들이 흑인 분장을 한 졸업사진을 올리고 ‘2020년에 이런 것을 보면 안타깝고 슬프다, 웃기지 않다, 문화를 따라하는 것은 알겠는데, 얼굴 색칠까지 해야 하냐? 한국에서 이런 행동이 없었으면 한다.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인종이 얼굴에 검은색을 칠해서 흑인 분장을 하는 것은 인종차별 행위라는 것이었다.      


언젠가 개그우먼 홍현희가 검은 피부 분장을 했을 때 역시 샘 오취리가 일침을 던졌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났다. 아, 그렇구나. 그것은 인종차별 행위인 것이구나.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코미디언들도 흑인 분장은 자제했던 거구나. 그래서 그 순간에는 생각했다. 흑인 입장에서 저런 것이 불편하고 놀림당하는 기분이 들 수 있다면 우리나라 학생들이 실수한 것이고 그에 대해 그가 항의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보니 한글 내용 아래로 좀 더 긴 영어 내용과 역시 영어로 된 해시태그들이 있었다. 그게 좀 이상했다. 좁게는 의정부고교 학생들에게, 넓게는 한국 사회에 이해와 자제를 부탁하는 것인데 왜 영어로 굳이? 게다가 해시태그도 다 영어로? 한국 사람들에게 할 말인데 왜? 댓글들을 읽어보니 그가 달아놓은 teakpop은 특히나 케이팝에 대한 뒷담화라는 의미라고 했다. 평범한 학생들의 퍼포먼스에 왜 케이팝 관련의 의미를 부여하지? 저 소년들이 언제 케이팝 가수를 꿈꾸었나? 이상했다. 어쨌든 그가 많이 화난 것 같은 느낌은 받았다. 하지만 댓글들도 역시 화가 나 있었다. 한글 내용보다 좀 더 정색한 느낌의 영어 표현, 그리고 맞지 않는 해시태그 때문에 댓글들은 모두 ‘흑인 분장은 잘못했지만, 너의 반응도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애들이 알고 그랬겠냐? 너나 초상권 침해하지 말고 애들 사진 내려라’는 식이었다.       

 

하루를 꼬박 욕을 먹은 후 샘 오취리는 마침내 그 사진과 포스팅을 내렸고, 일종의 사과문을 올렸다. ‘제가 올린 사진과 글 때문에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죄송하다, 학생들을 비하하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고, 제 의견을 표현하려고 했는데 선을 넘었고 학생들의 허락 없이 사진을 올려서 죄송하다’ 또한 ‘한국 교육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teakpop 해시태그가 케이팝에 대해 안 좋은 얘기를 하는 내용인 줄 몰랐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었는데 이번 일들로 인해 좀 경솔했던 것 같다, 죄송하다”로 마무리를 지었다.    

  

이 사과문을 보고 나니 비로소 화가 났다. 적어도 처음 학생들의 졸업사진을 보고 올린 글에서는 그가 가졌을 분노와 진심이 느껴졌다. 표현방식이 거친 것은 문제지만 그래도 글의 취지와 진정성은 보였다. 그런데 이 사과문은 다르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몰라서 그랬다, 경솔했다, 미안, 끝. 그냥 상대가 세게 나오니까 대충 꼬리를 내려버린 느낌이다. 이런 글을 보면 오해하게 된다. 아, 이 사람은 그저 인기를 잃을까 봐 두려운 것이구나. 인기 앞에서는 자신의 신념도 버릴 수 있구나. 그럴 거면 왜 처음에 그런 글을 올렸을까.      

내가 기대했던 사과문은, 적어도 가나라는 나라의 대통령까지 꿈꾼 사람이라면, 처음의 분노 담긴 글보다는 진정된 톤으로 ’자신의 표현이 격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흑인을 희화하는 이미지에 대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정도로 어쨌든 자신이 처음에 그 글을 쓴 취지를 지켜나가야만 했다. 인기는 놓친다 해도 명분은 남겨야 하지 않는가. 그런데 그는 겨우 이틀 만에 삭제해버려도 되는 글, 죄송하다며 덮어버릴 수 있는 글 때문에 이 분란을 일으킨 것이다. 뭘까, 이게. 너무 아쉽다. 


어쩌면 그는 한국 사회에서 그리 주목받지 못했던 인종차별 이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게 하는 계기를 만들 수도 있었다. Blackface가 왜 안 되는지, 한국 사회에 더욱 널리 알릴 수도 있었다. 그런데 결국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너 같은 외국인 노동자 보기 싫다’ 같은 일차원적인 적개심만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의 글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인종차별에 대해 좀 더 교육을 받아야 하는, 무지한 나라다. 이러한 나라에서 아프리카 가나에서 온 한 청년이 전 국민이 아는 스타가 되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이 이룩해낸 이러한 ‘역경 극복의 신화’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물론 그런 욕심 때문이었다고 한들 뭐가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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