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일이 있어 시내에 나갔다가 더위에 지쳐 한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안에는 한 팀 정도가 앉아 있어 한산했고 젊은 카페 알바는 혼자 카운터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주문을 한 뒤 자리를 잡았다. 그때 아쉬웠던 것은 그녀의 응대가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표정이 밝지 않았고 인사를 한 기억도 없다. 겨우 한 시 정도 되었을 뿐인데 벌써 지쳤나. 이런 부분에 너무 예민한 스스로를 자책하며 나는 구석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내 뒤로 노부부가 곧 들어왔고 그들은 나처럼 바로 주문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넓은 자리에 앉아 버렸다. 카페 안을 둘러보며 소란스럽게 수다를 나누다가 문득 생각난 듯 일어나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 또 털썩 앉았는데, 그때 알바는 모기만 한 소리로 저, 계산 먼저 해주셔야 하는데요,라고 했다. 아, 맞다, 계산해야지 하며 그들이 일어선 순간, 좀 더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중년 남자들 4명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그들은 테이크아웃으로 커피를 주문한 뒤 또 다른 자리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이제 저 알바는 내 커피, 부부 커피, 남자들 커피 다 해서 7잔을 만들어야 했다. 모두 똑같은 아메리카노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 순간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생각보다 빨리 카페 알바는 나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 자리까지 와서 놓아주었다. 셀프서비스보다 이런 서빙이 손님에게 더 편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절실하고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다. 나도 그날만큼은 너무 미안했다. 프랜차이즈 카페들처럼 그냥 불러주어도 괜찮은데. 저기 6명이 자기의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행히 그 이후 또 다른 손님이 들이닥치지는 않았다. 내 커피가 반 이상 비어갈 무렵, 노부부의 커피도 전달되었고 남자들도 커피를 들고나갔다. 그제야 처음 그녀의 표정에 이해가 갔다.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 해변 같은 카페. 손님은 훅 왔다가 또 훅 나가는데 언제 오는지 또 언제 나가는지 그걸 전혀 예측할 수가 없다. 알바는 그냥 바위처럼 단단하게 그 밀려오는 것들을 받아내야만 한다. 그러고 보니 혼자 일하는 카페 알바가 종종 있었고 그들의 표정은 언제나 무덤덤하고 단호했다. 놀라지 않으려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결국 무너지지 않으려고.
내가 일어나 다 마신 컵을 알바에게 가져다주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고맙습니다, 했다. 의례적 인사말이 아니었다. 대부분은 그냥 컵을 놓고 갔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자리로 가서 컵을 가져오는 일까지 한다는 것인가. 그 순간, 나는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할 뻔했다.
일회용 컵을 매장 안에서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알바의 일은 더 늘었다. 컵 설거지가 계속 쌓인다. 주인 입장에서는 두 명의 알바를 고용하거나, 알바가 있는데 굳이 나와서 같이 일을 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알바의 일이 너무 늘어나 일찍 지치게 된다면 결국 그것은 주인의 손해가 될 것이다. 누구나 혼자서도 충분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런 식은 적어도 두 명이 일을 나누어서 해야 가능한 것이다. 혼자 이 공간의 모든 것을 책임지고 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너무 무거운 일이다.
나는 휴일 오후 한가한 사람으로서 손을 빌어주고 싶었다. 빈 테이블의 물 자국을 닦거나, 밀린 설거지를 대신해주거나. 어쩌면 화장실도 못 가고 있었을 텐데, 그 잠시 카운터를 지켜주거나. 그러면 그녀의 표정에 좀 더 여유가 생길 텐데.
하지만 그 말은 그냥 입속으로 다시 꿀꺽 삼킨 채 나는 카페를 나왔다. 내가 밀고 나온 문으로 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