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푹 빠져 있는 광고가 하나 있다. 그랑삼국이라는 게임의 유튜브 광고다. 배우 이경영의 성대모사로 유명한 개그맨 황제성이 이경영과 함께 나와 ‘뭐가 문제야 say somethimg, 어어, 저 양반 시계 풀면 안 되는데, …진행시켜’ 와 같이 코믹한 유행어 대사를 쏟아낸다. 짧게는 3분 정도지만 원작(?)광고는 웬만한 단편영화처럼 길고 알차다. 그 광고를 보면서 깔깔 웃다가, 한편으로는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나는 저런 것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저 광고 만든 사람들은 얼마나 뿌듯할까. 광고주에게 완성본을 보여주었을 때 그들의 척추는 타고 오르는 자부심으로 저릿저릿했으리라.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나도 한때는 광고인이었다. 물론 마이너회사였다. TV광고까지는 기획하지 못했다. 그래도 동영상 광고를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또 아주 건전해야 하는 공익광고였다. 개그 작가를 지원했다가 1차 서류 심사 통과 후 면접에서 떨어진 기억이 있던 나는 이따금 개그적인 소재를 광고에 써먹을 기회를 노렸으나 그 꿈은 매번 무산되었다.
“이거 이렇게 가면 어때요?”
“에이, 어떻게 그래요.”
동료도 설득시키지 못한 경우 광고주에게까지 도달할 길은 없다. 대부분의 기업 역시 자사의 제품이나 기업 이미지를 코믹한 말장난으로 전달하는 것을 위험하게 느꼈다. 노트북도, 아이스크림도, 건강식품도 일단은 무난한 방향으로, 또는 묵직하고 진지한 방향으로 그래서 눈에 띄지도 않고 기억에 남지도 않는 광고로 제작되었다. 다른 광고들도 대부분 그랬으니까 그렇게 죄책감이나 자괴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이따금 크리에이터의 똘기가 그대로 살아있는 광고를 보면 아차 싶어지는 것이었다.
과거엔 현대카드의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롯데리아의 ‘네들이 게맛을 알아?’, 최근엔 펭수와 손나은이 등장한 동원참치의 광고를 보면 그렇다. 저 사람들은 광고주를 어떻게 설득한 걸까. 아니, 어쩌면 광고주가 그보다 더 미쳐 있었던 걸까. 특히 동원참치 광고는 ‘우리 회사는 역사도 오래되었고, 신뢰할 수 있으며, 맛있고 영양이 풍부해요’라는 직접적인 메시지 대신 다짜고짜 ‘캔을 따’라는 명령과 함께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은 최면(?) 영상을 보여준다. 이것으로 충분할까? 기업 이미지와 제품의 메시지가 전달될까? 라는 의심을 품었다면 결코 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이렇게 재미있고, 매력 터지는 광고가 흔하진 않다. 광고 때문에 어느 기업이 대박 터졌다는 소식도 최근엔 들어보지 못한 것 같다. 여전히 TV 채널이 돌아가거나, ‘광고 건너뛰기’ 버튼을 클릭하게 하는 광고가 훨씬 많다. 그러다 보니 직접적인 광고의 한계를 느낀 광고주들이 다른 방법을 찾게 된다. 홍보나 PPL, 간접광고 특히 요즘 문제가 된 ‘유튜브 뒷광고’가 그러한 것의 한 예다. 인플루언서들이 자신의 유튜브에 광고 아닌 척, 특정 제품을 소개하고 뒤로는 광고비를 받은 것이다. 광고가 아니라서 호감을 느꼈는데 뒤늦게 광고였다는 알게 된 구독자들은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이건 사이비들이 사람에게 접근하는 방법과 비슷하지 않은가. 친구인 척 다가가 돈을 요구하는 바로 그런 거. 블로그 마케팅이 결국 사람들로 하여금 블로그를 떠나게 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국 광고는 광고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재미있고 완성도 높으면 광고라도 보고 또 본다. 물론 그랑삼국 광고를 매일 본다고, 그랑삼국 게임을 다운받는다는 보장은 없지만(실은 나도 다운받지는 않았다.) 덕분에 하루 한 번이라도 웃을 수 있게 하는 것만으로 큰 보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점이 참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