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신조’라고 하기에는 조금 거창하지만, 항상 기억하고 떠올리려 하는 이야기를 하나 하려 한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때였다. 취업이 어려운 시절은 아니었지만, 동기들 간 나름의 경쟁이 있어 좀 어수선했다. 누가 더 큰 회사에 들어갔는지, 연봉을 더 받느니 눈치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교수님 한 분이 자기 옛날이야기를 해주셨다. 곧 정년을 앞둔 분으로, 수업시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하지 않던 분이라 ‘오늘은 웬일인가’ 싶었다. 그날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는 어린 시절 작은 에피소드였다.
“어느 따뜻한 봄날, 마당 한편에 앉아 햇빛을 받고 앉아 있는데 엄마 친구분이 방문하셨어요. 그때 내 나이는 7살로 그분이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분은 2년 전 나를 만난 적이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때 내가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재능 있는 아이였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요. 하지만 그 말씀을 듣고 나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가서 한창 노래를 배우고 있던 중이었는데,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자신보다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5살의 나는 잘했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닌데, 이제 어쩌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이제 포기해야겠구나.’ 나는 체념할 수밖에 없었어요. 지난 2년간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 허탈했지요. 지금 와서 다시 시작하기에도 늦었고, 다른 친구들은 이미 잘하고 있으니 따라잡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웃었다. 약간의 비웃음도 있었다. 그 교수님이 워낙 적극적이시라, 학교 행사나 강연 등에 빠지는 법이 없으셨고, 항상 맨 앞자리에서 눈을 초롱초롱, 학생인 우리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던 분이셨는데 말이다.
그렇게 웃고 있는 우리를 보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지금의 너희들이 내 7살의 모습과 무엇이 다르냐고. 지금 4학년인 우리들이 지난 4년간 이룬 건 별로 없고 다른 친구들은 다 나보다 난 거 같다고 절망하고 포기하려 하는 건 아니냐고. 지금 정년을 앞둔 자신의 입장에서 우리들을 봤을 때 7살의 나의 모습과 똑같아 보인다고 하셨다.
그날 그 수업에서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친구들이 몇 명이나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30년 동안 잊지 않았다. 내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 적어도 ‘나이가 문제 될 건 없지’라고 생각했던 건 이 교수님 덕분이다. 세상의 많은 일들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도 교수님 덕분이다. 어쩌면 20대, 30대라면 지금보다 절반의 노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했을 수도 있지만, 지금 이렇게 천천히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작은 일이라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는 나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