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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미젤리 Jun 24. 2024

나의 쾌활한 독서

 올해 목표로 세웠던 숭례문학당 독서 토론 과정을 끝냈다. 오늘은 지난 6개월 동안 입문부터 시작해서 리더 과정, 심화 과정까지 쉼 없이 끝낸 나 자신을 칭찬해야겠다. 


 사실 책을 읽는다는 것도 버거워하는 사람들에게 ‘독서토론’을 배우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다들 이 아줌마 엄청난 ‘지적 꼰대’는 아닐까 의심한다. 얼마 전 동네 ‘낭독 모임’ 공지가 있어 참여했는데, ‘지나친 독서광은 곤란하다.’는 말까지 들었으니 말이다.

 

‘독서광’이라니. 


 어느 한 분야에 그만큼 즐겁게 몰두하고 있다는 뜻이니 좋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지만 그 앞에 ‘지나친’까지 붙고 보니 마치 나를 독서 O/X 퀴즈로 자신들을 평가하려는 사감의 모습으로 본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단지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그 후 독서 토론을 통해 공감을 얻는 활동도 좋아한다.’라고 자신을 소개했을 뿐인데 말이다.  


  어쨌든, 시작부터 ‘경고’를 가장한 텃세를 부리는 모임은 그냥 빠져나오면 된다.

 독서 모임에서 이보다 더 다루기 힘든 문제들은 따로 있으니, 바로 기승전 모든 이야기를 빨아들이는 그 기막힌 블랙홀, 바로 ‘시댁 이야기’이다. 독서 모임의 참여자들이 대부분 기혼의 여성들일 경우 책 속에 나오는 그 어떤 에피소드들도 다 우리들의 시댁살이와 연결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식의 한풀이와 해소가 감정적 카타르시스와 해탈을 낳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이것이 매 모임마다 반복되는 데 있다. 독서 토론의 본래 취지는 무색해지고 ‘시어머니 성토대회’만 남는다.  


 내가 ‘독서토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런 수다모임을 바꿔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결심대로 올해의 반을 성공적으로 몰두해 보았으니. 나는 스스로를 칭찬해야겠다. 이제 내가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하는가의 현실이 남았지만 말이다. 다행히 그동안 독서를 배우러 다닌다고 여기저기 선전을 해 놓은 덕분인지, 다들 나부터 뭔가 변한 게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내가 변한 만큼 다른 사람들도 변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책을 매개로 좀 더 편안한 사교의 시간을 갖고 싶어 할 수도 있고, 또 누군가는 어려운 책, 두꺼운 책을 모두 읽어 오는데 부담을 느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때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그러니 내가 논제를 만들고, ‘시’ 자 이야기는 하지 말자 제안하면 불편할 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한 방법은 간단했다. 기존 모임은 그 방식을 너무 바꾸지 않기로 한 것이다. ‘공감과 환대’를 위한 토론이라고 기껏 말해 놓고, ‘너는 책을 안 읽었으니 오지 마, 너는 열심히 참여 안 하니 오지 마’라고 말하는 것은 시작부터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오다가 주은 것처럼 토론 논제를 던지고, 사담이 지나치다 싶을 때 적당히 대화를 낚아채는 방법들을 써 보기로 했다. 




 이런 은밀하지만 쾌활한 작전 수행에 지난 6개월간의 스파르타 독서교육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작가가, 저자가, 주인공이 무엇을 했나’를 묻기보다 그들의 행동, 감정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묻는 질문들은 책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와 틀린 생각이 아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경험을 하고 나니, 그동안 혼자 읽고 덮어버린 책들에게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지만 뼈저리게 후회할 일도 아니다. 책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지금부터라도 하나하나씩 뜯어먹으면 될 일이다. 읽을 책이 눈앞에 산더미인데 뭐가 걱정인가? 같이 읽고 토론하는 친구들도 이렇게나 많으니 앞으로는 즐길 일만 남았다. 책과 함께하는 나의 쾌활한 독서활동은 계속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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