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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Oct 06. 2023

뉴욕에 왔다면 재즈를

블루노트와 디지스클럽

그래픽 같아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읺는 탑 오브더 락 전망대 야경.


대학생이 되고 나서 좋은 것들은 교복 대신 예쁜 옷을 입고 멋진 핸드백을 들 수 있다는 것, 마음껏 화장을 하고 내게 어울리는 향수를 고를 수 있다는 것,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바꿔도 된다는 것 등 수도 없이 많았다. 20살의 우리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도 않는 어른스러워 보이는 옷을 입고 짙은 눈 화장을 했다. 그때는 꾸미지 않고 화장을 하지 않아도 예쁜 나이었다는 사실을 몰랐었으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근사한 것은 당당하게 바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여전히 신분증 검사를 당하기는 했지만. 자,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어른스럽게 와인을 음미하고 칵테일을 즐길 줄 알아야 할 일이다. 우리는 원스인어블루문 Once In a Blue Moon에 자주 갔다.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져 버린, 심지어 건물마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재즈바. 갤러리아 백화점 건너편의 이 청담동 재즈바는 호프집이나 주점과는 다르게 멀끔하게 차려입고 가야만 할 것 같은 곳이었고 인테리어나 조명도 아주 분위기가 있었기에, 그곳에서 재즈를 듣는 동안 우리는 수준 높은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굴었다. 클래식과는 또 다른 장르의 수준 높은 문화라고나 할까.


나에게 재즈는 그 시절, 20대 초반에 듣던 팻 매스니, 찰리 헤이든에 멈춰져 있다. 이들이 지금도 재즈계에서 통하는 연주자들인지, 아니면 그 시절의 잊힌 뮤지션이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30대를 통과하면서는 한 번도, 정말로 단 한 번도 재즈를 듣지 않았다. 재즈가 싫어진 게 아니라 그저 기회가, 여유가 없었다.


블루노트의 파란 무대

“그래도 뉴욕에 왔는데 블루노트에는 가봐야 하지 않을까?”

“오, 좋은 생각이야.”


40여 년의 역사를 가진 Blue Note에서는 매일 밤 두 차례의 공연이 있었다. 우리는 8시 공연을 예약했는데 일찍 온 순서대로 자리에 앉을 수 있다기에 6시 반쯤 블루노트에 도착했다. 다행히 기다림 없이 입장은 했지만 좋은 자리는 벌써 차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픈 시간인 6시부터 들어왔나 보다. 무대 전체가 한눈에 보이는 발코니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간단히 식사를 시작했다. 공연 티켓 예매와 별도로 테이블석에 앉으면 인당 $21달러 이상 주문을 해야 하는데, 일찍 와서 식사와 칵테일만 마셔도 인당 $100 정도는 훌쩍 넘어버리니, 주문에 대한 걱정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본 공연은 Nicholas Payton이라는 그래미 수상자의 공연이었다. 그는 보컬이면서 작곡, 프로듀싱까지 담당한다고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색소폰을 불었다. 이 모든 걸 한 사람이 다 소화할 수 있는 것이 맞나 싶게 엄청난 폐활량과 정교한 손놀림으로 신들린 연주를 해냈다. 모두가 집중하느라 푸르스름하게 어두운 공간에 숨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드럼 연주, 피아노 연주만큼 멋졌던 것은 실로폰 연주였다. 초등학교 때 들고 다니던 실로폰을 클래식 음악 공연장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이 20살 때의 일이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이 실로폰을 재즈바에서 보다니! 실로폰으로 저렇게 즉흥적이고 격정적인 연주를 할 수 있다니!


조금 더 고급바 느낌의 디지스 클럽

뉴욕에서 듣는 라이브 재즈의 맛을 알아버린 우리는 다음날에도 재즈를 들으러 갔다. 이번에는 Jazz at Lincoln Center에 위치한, 센트럴파크 뷰를 보며 재즈를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한 재즈 라운지인 Dizzy’s Club이다. 링컨센터는 뉴욕필하모닉과 뉴욕시티발레단이 공연하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지 재즈 공연장도 있는 줄은 몰랐다. 우리 호텔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었기에, 저녁을 먹고 호텔에서 쉬다가 늦은 밤 슬슬 공연을 보러 나갔다. 호텔과 가깝다고 여유를 부린 덕에 맨 뒷자리 밖에 남지 않았던 것은 아쉬웠지만 대신 공연자와 그 연주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던 점은 좋았다.


무대 뒤 맨해튼의 마천루가 포인트

우리가 본 공연은 재즈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중국계 미국인 Helen Sung의 공연이었다. Dizzy’s Club에서의 Helen의 재즈 피아노 공연은 Blue Note의 어둡고 시가 연기 가득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서의 재즈와는 완전히 달랐다. 붉은 카펫이 깔려있는 클래식 공연장 분위기의 라운지에서, 뒤 배경으로 센트럴파크와 뉴욕시의 마천루를 놓고 듣는 피아노 선율이라니! Nicholas Payton의 공연이 더 날것의 클럽 분위기였다면 Helen Sung의 공연은 조금 더 클래식 공연에 가까웠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Helen의 이력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연주자들도 오케스트라차럼 앉아있는 공연

재즈는 1900년대 전후 남부 흑인들이 북부로 이주하면서 전파되기 시작해 1920년대에는 시카고와 뉴욕에서 번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기 라디오 음악방송이 등장하며 재즈시대 Jazz Age가 열렸다. 100년 후 2020년대에 내가 접한 재즈는 이미 흑인들의 삶의 애환을 담아내던 그들만의 전유물을 넘어선 듯했다. 연주자들의 면모로 보나, 그 분위기로 보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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