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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가언니 May 18. 2023

가장 유명한 미지의 인물

에드워드 호퍼, <큰 파도>

SSG의 광고와 Hotel by a Railroad, 1925  (www.edward-hopper.org)
SSG의 광고와 Sunlight on Brownstones, 1956 (https://wichitaartmuseum.org)


배우 공효진, 공유의 SSG 광고를 보고 호퍼를 읽어냈을 때, 설레었다. 미술에 관심 좀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마음, 이해할 것이다. 앞서 ‘호퍼에 대한 오마주’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 <셜리에 관한 모든 것>(2013)이 나왔을 때도 그랬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13편을 토대로 주인공 ‘셜리’의 삶을 그려, 말 그대로 호퍼의 그림을 스크린에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오마주라는 특징 덕에 미술, 영화 두 학계에서 활발히 비교 연구되었다.


2020년 가디언지에 <We are all Edward Hopper paintings now: is he the artist of the coronavirus age?> 라는 칼럼이 실렸다.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현대인들을 호퍼의 그림에 비유했다. 2020년 3월, 코로나가 막 번지기 시작한 때였다. 그리고 사흘 뒤, 아트뉴스에 <No, We are not all Edward Hopper paintings now>라는 반박의 칼럼이 나왔는데,  호퍼의 그림에 나타나는 빛과 그 낙관성을 이야기했다. 그 내용이 고립이건 희망이건, 어쨌든 호퍼가 현대 미술에서 환영받는 작가 중 하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최근 대중의 열광을 호퍼가 본다면 깜짝 놀랄 것, 아니 생전에 그런 관심을 못 받은 것을 아쉬워할 것 같다.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가 파블로 피카소, 마르셀 뒤샹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받은 학교 교육도 마찬가지였어서 현대미술수업에서 에드워드 호퍼는 데이비드 호크니와 함께 ‘1950년대 미국적 리얼리즘’ 정도로만 배웠다.  <밤을 새는 사람들 Night Hawks> (1942)같은 도시, 황량, 황폐, 고독, 암울, 소외의 키워드가 연상되는 그림을 중심으로 살펴볼 뿐. 그래서일까, 큐레이터 얼프 퀴스터는 호퍼를 ‘현대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미지의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표현했다.

 

Nighthawks, 1942 (www.EdwardHopper.net)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을 한다고 할 때도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었다. 국내 전시에 소위 ‘A급’ 작품이 오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올 가을 뉴욕 여행 계획을 세우고 나니 상황이 달라졌다. 휘트니뮤지엄과 공동기획전이라고? 휘트니뮤지엄이라면 내가 곧 방문할 곳? 에드워드 호퍼 사후에 그의 아내 조는 호퍼의 작품뿐 아니라 꼼꼼히 기록된 노트까지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했다. 갑자기 서울전에 흥미가 생겼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20230420-20230820,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전시는 파리에서 시작해 뉴욕-뉴잉글랜드-케이프코드로 호퍼와 함께 이동한다. 호퍼는 1906년에서 1910년 사이 3차례나 체류할 정도로 파리의 빛에 매혹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가 익힌 프랑스 스타일은 환영받지 못했다. 한창 미국적 풍경이 대두되는 시기였다. 때문에 화단의 인정을 받을 때까지 호퍼는 잡지 삽화나 광고를 그리며 생계유지를 했다. 이번 서울전시에는 그가 남긴 많은 잡지표지와 삽화도 볼 수 있다.


Sailing, 1911, Carnegie Museum of Art

 “호퍼가 이런 그림을 그렸다고? 도시를 그리는 그 에드워드 호퍼가?”


요트를 취미로 즐기고 있는 요트인으로서 바다, 배만 나오면 눈이 번쩍 뜨이던 시기, 구글에 ‘sailing painting’을 검색했을 때 나왔던 그림이다. 그의 첫 판매작이라 알려진  <세일링 Sailing>(1911)은 호퍼를 다시 보게 한 작품이다. 그때만 해도 호퍼는 현대인의 고독만 그리는 줄 알았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미국적 리얼리즘’이라고 배운 학교 교육도 한 몫했고.


함께 검색된 그림으로는 <큰 파도 Ground Swell>(1939)가 있다.

Ground Swell, 1939 (www.EdwardHopper.net)


<큰 파도>를 살펴보자. 요트 위에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남자 친구들이나 비키니 탑을 있고 있는 여자 친구의 옷차림, 그리고 반짝이는 바다로 볼 때 강렬한 태양이 내려쬐고 있다. 하늘은 밝고 파라며, 파도가 규칙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요트를 타는 사람으로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요트인데, 이렇게 하나의 세일(돛)으로만 이루어진 것을 캣보트 catboat라고 부르며, 미 동부에서 많이 탄 형태라고 한다. 세일 모양도 특이한데, 오늘날 일반적인 삼각형이 아닌 사각형이다. 스피드와 성능을 중시하는 현대에는 볼 일이 없는 모양이라 생각된다.


여기서 요트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종이 달린 부이, bell bouy이다. 내가 바다에서 본 부이들은 어망을 표시해 놓느라 띄워놓는 흰색의 탱탱볼처럼 생긴 것들이었는데 종이 달린 부이라니, 뭔가 클래식하다. 이게 바로 생각해 볼 부분인데, 이 종은 파도가 심하게 치거나 바람이 세게 불 때 울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종은 위험을 알리는 수단이고 종소리는 경고음이란 뜻이다. 이렇게 밝고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위험을 알리는 종이 있다? 이건 미술사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호퍼의 전형적인 주제인 미스터리, 어두움, 암울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National Gallery of Art가 이 작품을 넓은 의미에서 호퍼의 일관된 주제를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하는 이유이다.


에드워드 호퍼, 〈작은 배들, 오건킷〉, 1914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도 <작은 배들, 오 건 킷>(1914)라는 제목의 하얀 배 그림이 있었다. 호퍼는 태양이 내리쬐는 바다와 요트 그림을 꽤 많이 남겼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뉴욕 나이약에서의 경험 덕분인지 평생에 걸쳐 바다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어둡고 소외된 현대인을 그린 작품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기는 1920년대에 들어서이다. 호퍼는 유화보다 에칭으로 먼저 주목을 받았는데,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알려진 <밤의 그림자 >(1921)를 비롯해 황폐한 도시의 어둡고 추한 부분을 그린 작품이 많다.


이런 이벤트는 너무 재미있지요. 햇빛 속의 여인이 되어 보기.

이번 전시에서 대중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은 아무래도 <햇빛 속의 여인>(1961) 일 것이다. 이 작품은 사진촬영이 가능해 전시장 내에서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리고 작품에 참여할 수 있는 부스도 만들어져 있다. 재미있는 경험의 장이 된 미술관이 반갑고 고마웠다.


서울전시 리뷰와 내가 아는 호퍼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못다 한 에드워드 호퍼의 이야기는 올 가을 뉴욕 휘트니뮤지엄 방문 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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