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평짜리 좁은 공간에 갇혀서 7년을 산다면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그것도 자신을 유괴한 사람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야 한다면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람을 대할까?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러운 공간이고 살인적 충동이 일어나는 관계다. 공간과 사람과의 관계가 사람을 망가지게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3평짜리 공간은 그렇게 끔찍하지 않다. 바로 사랑하는 아이와 같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주고받는 교감으로 좁은 공간은 무너져 버린다. 관객은 방에 갇혀 사는 엄마와 아이에 대한 이야기로 좁은 방에서 사는 답답한 삶을 상상했으리라, 그러나 영화는 갇힌 방에서 탈출한 두 사람이 어떻게 세상과 소통하며 사는가에 중심을 두고 있다.
영화 <룸> 은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 부분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여주인공 브리 라슨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은 충격적인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 오스트리아에서 사는 요제프 프리츨이라는 사람이 자기 딸을 24년 동안 방에 감금시키고 자식을 7명이나 낳게 했다. 7명의 자식 중 3명은 프리츨이 입양하고 1명은 그 안에서 죽었으며 3명은 룸에 갇혀 살았다. 첫째 아이가 혼수상태여서 병원으로 갔을 때 병원에서 수상하게 여긴 여의사의 신고로 프리츨은 경찰 조사를 받게 된다. 경찰 조사를 통해 딸과 아이들이 세상으로 나오게 되었다. 2010년 엠마 도로 휴가 이 실화를 소설 <룸>으로 발표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영화 <룸 >또한 이 실화와의 연관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조이는 아픈 강아지를 봐 달라고 하는 낯선 사람에게 납치되어 작은방에 갇혀 7년을 살게 된다. 그녀는 갇힌 방에서 납치범의 아이 잭을 낳는다. 잭이 5살 되던 해 아이에게 바깥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탈출을 시도한다. 탈출에 성공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잭과 조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자 조이는 힘들어한다. 세상에 나온 잭은 대인기피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멈춰진 시간이나 마찬가지인 7년 동안 시간과 자기를 찾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을 원망하게 되면서 조이는 심리적으로 힘들게 된다. 잭은 점점 세상과 소통하고 친구도 사귀고 외할머니와도 사이가 좋아진다. 조이는 잠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진 뒤 잭과 다시 만난다. 잭은 전에 엄마와 살았던 방이 생각난다면서 감옥과 같았던 방을 찾아간다. 잭은 텅 빈 방에 남아 있는 물건에게 인사를 나눈다.
영화는 대부분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좁은 방안에 살 때는 물건이 클로즈업되면서 아이와 물건이 마치 친구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보인다. 좁은 공간에서 잭의 역할을 맡은 제이콥 트렘블리 연기는 아주 섬세했다.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혼자 노는 모습, 옷장 속에서 혼자 지내는 밤, 세상 밖으로 나와 하늘을 보는 모습, 새로운 넓은 방 안에서 느껴보는 낯섦 등을 잘 표현했다. 할머니 집에 와서 엄마가 잠시 혼란을 겪으며 떨어져 있을 때 카메라는 멀리서 잭의 모습을 담는다. 넓은 빈 공간에 혼자 있는 잭의 모습은 3평짜리 갇힌 방보다 더 외롭게 보인다. 차라리 엄마와 함께 있던 작은 공간이 그리울 정도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브리 라슨의 연기 또한 잔잔하면서 슬픔을 절제된 모습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 연기를 위해 일부러 좁은 공간에서 지내고 친구들과 연락을 끊고 생활할 정도로 역할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영화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잘못하면 드라마틱한 장면들이 나와 전형적인 탈출 드라마로 전락할 수도 있었는데 감독 레니 에이브러햄 손은 자유로운 공간에 다시 갇혀버린 두 모자를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조이는 “나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 속에 다시 갇혀 힘든 시간을 보낸다. 오히려 탈출하기 전 TV 속 현실이 가상인지 현실인지 깊은 대화를 나누거나 탈출해야 하는 이유를 아이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장면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갇혀있던 작은방은 잊고 싶은 기억의 장소인데도 아이에게는 기억하고 싶은 장소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