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리키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영화 <미안해요, 리키>
''사는 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 모든 게 엉망 친창이야.'' 남자 주인공 리키의 푸념이다. 후반으로 갈수록 영화는 마음을 졸이게 한다. 공포영화도 스릴러 영화도 아닌 극 사실주의 영화 한 편이 스크린을 떠나지 못하고 긴장시킨다.
인간을 지배했던 자본주의는 이제 시스템으로 인간을 조종한다. 택배차를 떠나 있으면 3분 이내로 삑삑거리는 시스템은 화장실 갈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다.
83살의 영국의 거장 감독 켄 로치는 가장 현실적인 잣대로 우리에게 스럴러 공포보다 더 무서운 현실 이야기로 관객을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2016년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도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공무원 집단과 컴퓨터 사용과 사투를 벌이는 평범한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두 아이의 아빠 리키는 평생 건설현장에서 일하다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택배회사에 취직한다. 출근 카드도, 실적에 시달릴 필요도 없다. 임금 대신 택배 건당 수수료를 챙기며, 일한 만큼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조건에 매료되어 무리한 투자를 한다. 리키(크리스 히친)는 간병인을 하는 아내의 차까지 팔아한 택배 회사와 개인 사업자로 택배 기사 계약을 맺는다.
6개월만 버티면 빚도 갚고 내 집 마련도 가능하리란 단꿈도 잠시, 당장 필요한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택배 차량 구매비만 1만 4000파운드(약 2100만 원),
회사 차를 쓰면 하루 65파운드씩 내야 한다.
사정상 하루라도 쉬는 날엔 대리기사 고용비를 부담해야 한다. 강도라도 당하면 제 몸보다 물어줄 돈, 벌점이 더 걱정이다.
“서명하면 개인사업자가 되는 겁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인 겁니다.”
택배 회사 매니저의 이 말이 ‘최소한의 노동권과 생명권도 회사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미란 걸 그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상황은 아니 리키의 일상은 급속도로 나빠진다. 간병인 아내는 차가 없어 버스로 이동하기 때문에 늦어서 고객들의 컴플레인이 늘어난다.
사춘기 아들은 학교에 적응 못하고 길거리에 페인트로 그림을 그리거나 폭행하고 물건을 훔친다. 아들 세브는 결국 경찰서에 잡히고 부모가 가지 않으면 교도소에 갈 상황까지 왔다. 경찰서에 가기 위해 그는 또 택배회사에 벌금을 물어야 한다.
벌금은 계속 늘어나고 빚만 늘어난다. 아내는 불만이 커지고 아이들과의 관계는 계속 나빠진다. 아이들이 원하는 건 돈이 없어도 예전처럼 식구들이 같이 모여 살기를 원한다. 같이 식사하며 아이들의 마음을 읽어간다
그 사이 택배차에 강도가 들고 몸은 상처투성이다. 개인 사업자라 보험혜택도 없다. 물건 값도 보상해야 하고 아파서 일 못한 것 부서진 택배회사 단말기 값도 갚아야 한다. 갈수록 빚은 불어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노동의 가치와 인간의 존엄이 무너진 무한경쟁사회를 현미경처럼 들여다보는 영화다. 켄 로치 감독의 현실을 직시하여 정서적으로 관객을 설득시키는 힘이 대단하다. 그는 영국의 현실이 저 정도 악화되어 있나 의심을 가질 정도로 날카롭게 현실 묘사를 한다.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은 사실성만으로 눈물을 자극하고 사건을 몰아가 감정을 뒤흔든다.
가족이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강도로 인해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고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택배차를 끌고 가는 리키의 불안한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어쩌면 삶의 무게를 다 짊어지고 비틀비틀 불안하게 차를 운전하는 리키의 모습이 곧 우리에게 닥쳐올 운명처럼 불안한 심정을 전이시킨다.
그래서 ''영화를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수작.''이라고 표현해 보았다.
자본, 플랫폼, 시스템만 돈을 벌고 정작 실제로 노동하는 인간이 멸종해가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충분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영화를 못 만들까
왜 못 만들까?
왜 만들지 않을까?
우리가 보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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