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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Sep 03. 2023

삶공포증

나는 올해로 만 40세이고 여전히 사는 게 무섭다. 직장에서 새 업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할까 봐 두렵고, 육체의 노화에 수반되는 정신과 마음의 쇠락이 두렵고, 내 경제력이 내 삶을 책임지기 어려워지는 날이 오는 것이 두렵고, 이런 두려움들에 정신없이 휘둘리다가 아끼는 인연들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할까 봐 두렵다. 


20대 청춘 시절에는 막연히 어른 되면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이 나이가 되어도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어도 아마 마찬가지일 듯싶다. 


내일이 무서워서 잠들기 힘든 밤이 찾아올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삶 공포증’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철학 서적도 찾아보고, 명상도 해보고, 약물에 의존해 보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산다는 건 원래 무서운 거라서 내리는 비를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어쩔 수 없는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생의 결정적인 순간들은 항상 두려움이 수반되었다. 직장을 구하는 일도, 친구를 만드는 일도, 연애를 하는 것도, 괴로운 관계를 정리하는 일도, 먹고 사는 기술을 갈고 닦는 일도 항상 매번 무서웠다. 


하지만 두렵지만 겪고 지나 보면 항상 가볍지 않은 의미 있는 무언가가 꼭 남았다. 그런 두려움을 겪고 난 후의 의미 있는 결과들이 쌓여 내 정신과 인격의 토대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사는 게 무섭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산다는 것은 원래 무서운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전혀 무섭지 않을 일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확실하게 무서운 일이라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런 거니까 어쩔 수 없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그 두려움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누가 시키거나 가르쳐 주지 않아도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 앞으로도 같은 요령으로 잘 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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