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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환 Feb 14. 2024

강아지와 바스크 치즈 케이크

애견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인지 요즘 들어 산책을 나가면 강아지를 많이 마주칠 수 있다. 산책을 나온 강아지들은 모두 즐겁고 신난 표정이다. 발걸음은 경쾌하게 들썩거리고 두 눈이 호기심으로 초롱초롱 빛난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 모든 것들이 흥미로워서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보인다. 침울하거나 우울하거나 어딘지 모르게 힘없고 쓸쓸해 보이는 강아지는 단 하나도 없다. 인간과는 다르게 말이다.


그런 강아지들의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 박탈감도 느껴지고 주눅 들기도 한다. 저렇게 세상을 즐기지 못하는 내가 강아지 보다 훨씬 더 열등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나라고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강아지 부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청춘이라 불리던 무렵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은 생물이었다. 하지만 마음의 노화라는 것은 육체의 노화 보다 훨씬 더 무서운 것이었다. 좋아하던 것을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강도로 좋아할 수가 없어진다. 그 어떤 새로운 것에도 예전과 같은 강렬한 흥미나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에 활기가 없어지고 삶이 침묵한다. 침통하고 씁쓸한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주 전에 들린 카페에서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먹다가 문득 나도 이것을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는 것이 오래간만이라 무척 반가웠다. 이 충동이 길게 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레시피를 찾아보고 재료를 주문했다. 다음 날이 되자 예상대로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만들고 싶다는 충동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전날 주문한 재료들이 이미 도착해버렸기 때문에 이젠 만들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 작전대로였다.


그렇게 생전 처음으로 베이킹을 해보았다. 처음인 것 치고는 상당히 괜찮게 구워졌다. 맛도 상당히 좋았다. 만드는 과정도 재미있고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다는 충동을 놓치지 않고 경험으로 연결하여 삶에 편입시켰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드물기도 하고 좀 많이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직 나에게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제 산책 나가서 강아지랑 마주쳐도 예전처럼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봐, 강아지. 너의 명랑한 힘도 제법이지만... 나는 무려 바스크 치즈 케이크를 구울 줄 알게 된 인간이라고!’ 라고 받아칠 수 있을 것 같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는 3개 정도 구워보았다. 구울 때마다 솜씨가 좋아져서 이제는 꽤 그럴듯한 퀄리티로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기회가 된다면 여기저기 선물해 볼까 싶다.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말라는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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