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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끼 Sep 22. 2021

스타트업에서 마케팅 전략이란

#3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사수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총 직원 수 열댓 명, IT 회사답게 그마저도 대부분의 인원이 개발자인 이곳. 외로운 마케터를 홀로 둘 순 없었는지 나는 졸지에 '영업팀' 소속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업마케팅' 팀이었지만 나를 제외한 세 명은 모두 영업 인원이었기 때문에 영업팀의 보너스 파트 같은 느낌이랄까? 아무래도 마케팅과 관련 있는 부서가 영업팀 외에는 없다 보니 회사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조직의 유일한 마케터로서 각오는 했지만 처음으로 마케팅 업무의 첫 발을 뗀 것이나 다름없는 나에게는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심지어 팀장님은 정식으로 영업 업무를 하셨던 분이 아니라 비슷한 직무에 계셨던 분이었다. 마케팅 실무는 둘째치고 내 업무에 대해 물어볼 사람이 자신 말고는 없었다. 같은 날 들어온 영업팀 동기도 나처럼 상황이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말 내가 필요해서 뽑은 게 맞기는 한가? 싶을 정도로 나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도 압박을 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월급 루팡이 될 순 없는 상황. 주마다 있는 주간회의에서 프로덕트 테스트를 했던 간단한 소감과 현재 회사에 필요한 업무를 피력했다. 발표를 마쳤는데 대표님의 얼떨떨함이 섞인 미소와 함께 무려 직원분들의 박수갈채를 받게 되었다. 여기.. 이대로 괜찮은 거 맞아?



앞길이 구만리지만 일단 시작해볼까


 첫 주부터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나는 동기와 함께 고객 조사라는 걸 시작해 보기로 했다. 이 필드가 매스 타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절실했던 것도 있었다. 타깃 고객 모수가 워낙 적기도 하고 모으기도 어려운 고객이다 보니 1:1 인터뷰 방식으로 채택. 바로 이전 직장에서 인터뷰 설계를 해봤던 경험을 살려 인터뷰 준비를 해 갔다. 여러 고객들을 인터뷰하고 오니 아예 모르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나 스스로가 고객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앞으로 갈 길이 멀겠구나 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인터뷰 결과지를 사내 메일로 전체 공유했다. 우리의 고객이 누군지 다들 궁금하겠지?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그 메일을 읽어보는 사람은 우리 팀과 대표님 정도가 끝. 이 활동이 사내에 파급력을 가져올 거라는 기대는 감히 하지 않았다. 이때부터였을까, 앞으로도 쭉 혼자일 것이란 걸 직감했던 것이.


 인터뷰가 끝나고도 고객 조사는 계속되었다. 2000여 명의 유저들에게 설문지를 배포했다. 어떤 점이 불편하고 어떤 점을 개선하기를 바라는지. 응답은 코딱지만큼 돌아왔지만 이제 조금은 고객을 알 것 같았다. 이제 이 자료를 기반으로 브랜드 전략을 짜 보면 되겠다고 느끼던 차에, 우리 팀 팀장님은 계속해서 '마케팅 전략' 문서를 가져오라는 대표님의 압박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마케팅 전략이 뭔가요?


  이것만은 정확히 하자. 묻고 싶었던 것은 '대표님이 원하는 마케팅 전략은 뭔가요' 다. 그러나 마케팅 전략을 짜 보지 않은 주니어로서는 '마케팅 전략'이라는 이 무시무시한 단어가 무엇인지부터가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지사. 바로 이전 직장이 브랜딩 에이전시였기에 '브랜드 전략'이라는 단어에는 익숙했지만 마케팅 전략은 과연 어떻게 짜는 걸까? (이 시점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NEEDS는 끝끝내 맞출 수 없었다....) 이 당시 대표님이 어떤 책에 나오는 마케팅 방법론을 그대로 실행해야 한다고 말하는 통에 팀장님과 나는 뒤늦게 그 책을 읽으며 그의 의중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NO'. 몇 번이고 수정해 가져 갔지만 그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영업팀 동기도 매달려서 고객 분석 자료를 함께 만들었지만 그때 만든 마케팅 전략은 이후 펼쳐보지도 않고 폴더에 고이 모셔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마케팅 전략을 짜는 일은 계속됐다. 때로는 사업 전략처럼, 때로는 브랜드 전략처럼... 어떤 때에는 광고대행사가 된 기분으로 광고 스토리보드를 짜 간 일도 있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 그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표님의 요구는 크게 보면 두 가지였다.


1. 콘텐츠 크리에이티브("B급 콘텐츠")로 승부하는 마케팅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보고 싶다


"B급 콘텐츠". 각종 밈을 총동원해 만들 수는 있겠지만... 킬러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기간 성과라는 조건은 어려운 주문이었다. '따뜻한 아이스 아아메'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디자인으로 치면 화려하면서도 심플하게, 엘레강스하면서도 모던하게 같은 느낌. 결국 광고대행사까지 동원해 B급 캠페인 전략도 짜 봤지만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문제로 좌초되었다.


2. 정해진 예산은 없지만, 예산안과 로드맵이 필요하다


정확한 예산은 알려줄 수 없다. 하지만 회사 사정에 맞는 예산안과 로드맵은 필요하다니. 대략적인 예산 범위를 듣고 서로 동의할 수 있을 만큼의 비용으로 전략을 세웠지만 그마저도 눈이 팽팽 돌아가는 실무에 치여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다. 


나중에는 마케팅 전략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사업 방향이 계속 바뀌었기에, 전략에 대한 고민은 어느새 저 멀리 가버렸다. 눈앞의 업무를 기계적으로 쳐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이 회사 사람 다 됐구나- 하던 게 입사 1년쯤. 이게 바로 스타트업의 애자일 방식인 걸까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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