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제가 마케터라구요?
긴장되는 스타트업 첫 출근. 입사 동기인 듯한 다른 사람과 회의실에서 덩그러니 앉아 인사담당자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숨막히는 정적 속에서 어색한 눈빛 교환을 하던 찰나에 담당자가 들어왔다. 졸업증명서 등 입사에 필요한 자잘한 서류들을 제출하고,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과 현황에 대해 간단한 교육도 받았으니 이제 여기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 궁금해하던 것도 잠시, 대표님의 부름을 받았다.
"마케터로 일해볼 생각 없어요?"
"네?"
"제가 보기엔, 페퍼님은 디자이너로도 괜찮지만 마케팅을 더 잘 할 것 같아서요. 이전에 마케팅 업무를 해본 적이 있죠?"
"어...네...이전 회사에서도 디자인 업무와 브랜딩 업무를 같이 했었고요. 마침 저도 마케팅 직무에 흥미가 생겨서 그 쪽으로 전향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럼 잘됐네! 제가 디자이너 친구한텐 잘 말할테니까, 마케터로 일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요."
"헉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분명 디자이너 두 분과 1차 면접을 봤는데 갑자기 마케터라니... 도대체 나의 어떤 면을 보고 마케팅 직무를 추천해주셨던 것일까? 대표님과의 면접에서 이전 직장에서 했던 업무에 대해 간략하게 단서를 남기기는 했지만 입사하자마자 급작스럽게 받은 제안이라 얼떨떨한 게 컸다. 갑자기 마케터가 된다고?
"혼자 마케터로 일하려면 힘들 텐데...."
내가 마케터로 채용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니 이전 직장 상사분께서 걱정하며 하셨던 말. 이 때 이 말을 뼈에 새기면서 귀담아들었어야 했는데. 어려울 걸 알면서 수락한 제안임은 틀림없었지만 이 때의 나는 닥쳐온 미래를 예견하기에는 너무나도 쪼렙이었다. 알 수 없는 자신감과 기대감에 부풀어 그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업무라니!' 라는 감사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케터로 채용된 내 옆자리에는 영업사원으로 같은 날 입사한 동기가 있었다. 회의실에서 봤던 그 친구였다. 나와 비슷한 표정으로 비슷하게 어리둥절하고 있는 이 친구를 보면서 '아, 이 친구와 이제부터 친해져야겠구나...' 다짐하며 스타트업에서의 첫 날이 저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