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렌터카를 빌려 섬을 투어한다. 한량처럼 보내던 와이키키의 삶을 떠나고 싶지 않지만 또 북쪽 해변으로 갈 생각에 신나기도 한다. 나 혼자 있었다면 와이키키에만 줄곧 있으며 집, 서핑, 카페만 다녔을 텐데 워니가 있는 덕분에 바지런히 섬 반대편으로도 나가볼 수 있었다. 십 년 전 왔을 때는 운전도 못 해서 세 시간 버스를 타고 할레이바를 갔다가 지오반니 새우트럭을 먹으러 갔었다. 그때에 비하면 시간도 운전도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지금은 호화롭다. 물론 아직 나는 운전을 못하지만.
섬의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하니 왠지 설렜다. 무슨 옷을 입을지 서로 맞춰보며 몇 벌 없는 옷 중 고민하고 화장품도 꺼내 얼굴에 찍어 발랐다. 텀블러에 투명한 얼음과 커피를 담 선글라스 장착 후 렌터카 픽업하러 출발!
운이 좋게도 우리 숙소 건물 1층에 렌터카 사무소가 있었다. 이곳이라면 대여도 반납도 우리 건물에서 할 수 있으니 너무 편하다. 사실 한국에서 다른 곳에서 예약을 해 두었는데 주말에 가서 알아보고 냉큼 이곳으로 예약을 바꾸었다.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행운을 비는 인사를 받으며 나왔다. 화창한 햇살을 받고 있는 파란색 2015년형 닛산 Versa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일 동안 잘 부탁해
차를 타고 후하 워니가 심호흡을 한다. 워니가 운전 담당이다. 시동을 켜고 건물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윤슬에 반짝이는 운하가 펼쳐진다. 와아- 감탄하고 있는 동안 "노래 틀자!" 높은 목소리로 워니가 말했다. 이런 길엔 노래가 빠질 수 없지! 블루투스가 없는 차라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었다. 선곡은 뉴진스의 Attention. 우리는 열창했다. 어느새 귀여운 색의 집들을 지나쳐 고속도로에 올랐다. 눈앞에는 화창한 햇살이 쏟아지고 양 옆에는 코코넛 나무들이 있다. 고속도로가 한적해질 때쯤 LIKELIKE Highway를 지나쳤다. 진짜 귀여운 이름이다. 라이크라이크 하이웨이. 라이크라이크 하면서 또 꺄르륵 웃었다. (사실 알고 보니 리케리케 하이웨이였다.) 햇살이 좋아서 가는 길 너무너무 좋았고 이곳에 나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침마다 이 길을 달리며 출근하는 나를 상상하느라 기분이 좋았다.
섬을 관통하여 도착한 곳은 할레이바. Iwa라는 새의 집(hale)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가고 싶었던 샌드위치집에 가서 참치샐러드를 시켰는데, 이럴 수가, 하와이에서 먹은 것 중에 제일 맛있다. 샐러드 위에 참치필렛을 올린 메뉴였는데 그릴향을 잔뜩 밴 도톰한 참치가 육즙 가득하고 신선했다. 맛있는 점심을 먹은 데 이어 파인애플도 샀다. 오기 전 요즘이 딱 파인애플 철이라고 해서 신이 났었는데 막상 와 보니 한국보다 비싼 파인애플에 언뜻 지갑이 열리지 않았었다. 그래서 오늘에서야 드디어 구매한 파인애플, 한 입 씹자마자 달큰한 과즙이 잔뜩 배어 나와 단연 그 어디서 먹는 것보다 맛이 좋았다. 맛있는 것들만 먹어서 기분이 너무 좋아
배를 통통하게 채우고는 기대했던 거북이를 보러 출발했다. 찬찬히 해안도로 따라가는 것이 너무 좋다. 가는 곳마다 멈춰 설까 말까를 반복했다. 일단 거북이를 보자 하며 도착한 곳에는 말이 있었다. 목장 옆에 차를 세우고 비치로 갔다. 멀리서부터 사람들이 많은 것이 한눈에 저곳이 스폿인 걸 알 수 있었다. 도착했더니 엄청 큰 거북이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꾸움뻑 꾸움뻑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북이에게 가까이 갈 수 없도록 자원봉사자분들이 밧줄로 결계를 치고 있었다. 그 안에서 잠시 자다가 쉬다가 놀다가 하는데 조금이라도 움직일 때마다 자원봉사자분들이 결계의 위치도 바꿔주었다. 하와이는 배려가 많고 여유로운 곳이라는 것을 한 번 더 느낀다. 하와이 말로 거북이는 호누(Honu)라고 한다. 이름조차 귀여워. 오늘 만난 이의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 이름은 김수한(가명), 나이는 약 40세 추정, 수컷. 특징: 꼬리가 귀여움. 움직일 때마다 짧고 두툼한 꼬리가 좌우로 움직였다. 거북이를 봐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고 행복했어.
거북이를 실컷 보고 섬의 아래쪽으로 조금씩 내려가는 길, 이제 이 아래로는 쭉 해안도로에 비치가 펼쳐진다. 조금 전 가 보고 싶었던 해변들을 하나씩 들르며 비치들을 구경하다가 가장 멋진 샥스코브에 정착했다. 무시무시한 이름과 달리 돌 모양이 위에서 봤을 때 상어를 닮았다고 해서 Shark's cove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곳은 지상낙원 같았다. 검은 화산암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지반을 만들었고 그 위에 멋들어진 나무가 군데군데 자리 잡고 있다. 나무그늘 밑 어디든 자리를 깔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었다. 나무그늘 아래서 한참을 가만히 멍 때렸다. 살랑살랑 부는 산들바람과 눈 아래로 펼쳐지는 윤슬이 가득한 바다, 그 안에 스노클링을 하는 평화로운 사람들과 리트리버까지.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잘하는 사람은 아닌데, 이곳에서는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싶어 뭔가를 하는 정신이 아까웠다.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은 곳이었다.
워니는 스노클링을 하러 내려갔다. 물고기가 정말 많다며 코옹- 하고 멀리서 나를 불렀다. 그렇지만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이곳에서 영영 이 풍경을 눈에 담고만 싶었다. 한참을 아래를 내려다보다 자리에 누웠다. 오전에 여기저기 관광했던 피로가 여기서 다 풀리는 기분이다. 나는 진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보다 이렇게 앉아서 멍 때릴 수 있는 게 너무너무 좋다. 한참을 앉아있다가 쌀쌀해져서 일어났다.
북쪽의 선셋은 얼마나 예쁠지 보고 싶었다. 선셋까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떠서 푸드랜드 가서 저녁 장을 봤다. 생선과 버터와 시금치 등등을 사서 구워 먹으려고. 침이 꼴깍 나왔다. 와이나메아 비치에 들러서 선셋을 보았다. 생각한 만큼 엄청난 선셋은 아니었지만 초록빛의 잔디와 잔잔한 바다, 하늘은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비치파크에서 돌아오는 길 조그맣고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는 고속도로를 달리며 언제까지나 이 행복이 계속되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