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남겨지고
하와이에 도착해서 월마트에 갔다가 주인과 함께 쇼핑하는 하얀 불독을 보았다. 사람 많은 마트 통로를 자기 산책길이라도 되는 듯이 유유히 누비는 그를 보며 겁쟁이 담담을 생각했다. 해변에서 원반을 물어오는 쉐퍼드를 봤을 때도, 운하를 따라 총총 걸어가는 말티즈를 봤을 때도 담담을 생각했었다. 겁쟁이 하얀 강아지 담담이를.
나는 하와이에 올 때 강아지를 엄마 집에 맡기고 왔다. 사실은 담담이만 좋다면 하와이로 함께 데려오고 싶었다. 항공사에 물어봤을 때 하와이는 그래도 비교적 강아지 입국이 덜 까다로운 편인 것 같았다. 몇 가지 접종을 맞고 증명서를 받아서 강아지와 입국하면 되는 듯했다. 강아지 비행기 비용은 왕복 약 70만 원 정도. 하지만 가장 걸리는 점은 제한 무게(6.6kg 정도였다)를 넘어서 담담이가 화물칸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혼자 8시간 넘게 컴컴한 화물칸에 있는 것은 예전에 갇혀있었던 보호소의 우리를 떠올리게 할 것 같았다. 이동을 어찌어찌 통과한다고 해도 낯선 곳과 물을 무서워하는 담담이에게 하와이는 천국이 아닐 터였다. 데리고 오는 것은 내 욕심이었다.
담담이는 그야말로 쫄보 강아지다. 산책길 지나치는 대문 뒤에서 개 짖는 소리만 들려도 귀를 뒤로 접고 꼬리를 다리 사이로 내려 줄행랑을 친다. 너무 무서우면 몸이 굳어 움직이지도 못하는 강아지다. 처음엔 엘리베이터 앞에서도, 샤워기 소리에도 몸이 굳곤 했다. 오죽하면 이름도 겁먹지 말고 담담하라는 뜻의 담담이라 지었을까. 이런 겁쟁이 강아지를 한 달이나 떠나보낼 결정을 한 것에 스스로가 떳떳하지 못했다. 내 강아지를 사랑한다면서도 막상 나의 즐거움과 서핑이 더 우선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가 떠나 있을 동안 담담이가 최대한 잘 지낼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고맙게도 엄마 집에서 담담이를 받아주어서 그곳에서 한 달간 더부살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담담이에게 꼭 들어맞는 상황은 아니었다. 첫 번째는 담담이가 실내에서 지낼 수 없다는 것. 전형적인 시골집인 엄마집에서 강아지를 실내에 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미 실내견으로 살아온 지 육 개월이 되었는데 바깥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두 번째는 엄마집에 이미 강아지가 있다는 것. 우유라는 담담이 또래의 갈색 강아지인데 담담이는 우유를 무서워했다. 둘이 덩치도 비슷한데도 말이다.
그렇지만 한 달간 맡아준다는 것도 감지덕지였다. 강아지 호텔이나 친구집보다도 훨씬 마음이 놓이는 안식처였다. 담담이의 적응을 기도하는 수밖에였다. 4-5일을 엄마집에 있으면서 담담이가 마당에서 잘 적응을 하도록 도왔다. 그나마 날씨가 좋은 계절이라 다행이었다. 떠날 때까지 담담은 잘 적응한 것 같기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했다. 멀리서 훔쳐볼 땐 괜찮아보이다가도 내가 마당으로 나가면 낑낑 소리를 냈다. 바깥 생활이 진짜 괴로운 건지 어리광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불편한 채로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에서의 매일 하루의 마무리는 엄마와 담담이의 일과와 사진을 얘기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엄마는 고맙게도 담담이 찍사를 자처해서 매일 바지런히 담담이 사진을 찍어날라 주었다. 사진 속 담담이는 점점 더 밝고 행복해 보였다. 적응을 한 게 분명했다. 담담이의 일상은 누구보다 바빠서 지루할 틈이 없어 보였다. 새벽마다 아빠와 공원으로 해변으로 쏘다니며 산책을 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산책을 하고 나면 오전 내내 지쳐서 잠을 잤다. 오후에 엄마와 잠시 놀거나 동네 마실을 가고 저녁에 동생과 산책을 가고 나면 다시 잠을 자고. 다행히 우유와도 잘 지낸다고 했다. 동갑내기 견생 10개월 차 강아지들. 둘이서 조그만 강아지 집에서 같이 잠도 자고 밥도 같이 먹고 틈만 나면 같이 논다. 순딩이 우유가 담담이가 적응하게 도와주었나 보다. 밥도 잘 먹고 응아도 우리 집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이 한다.
부모님은 그들의 방식으로 담담이를 잘 보살피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보는 것보다 더 잘 담담이를 케어해 주고 있었다. 그저 내 손에서 떠난다는 사실에 혼자 너무도 불안했나 보다. 강아지가 잘 지낸다는 사실이 나에게 너무 큰 위안을 준다. 너무 마음이 좋다. 좋은 손에 있다는 것이, 좋은 보살핌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을 놓게 하는 일인지. 여기서 강아지를 봐도 더 이상 담담이 생각에 속상하지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