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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l 16. 2023

#7. 이른 아침의 하이킹

오늘은 조금 멀리 나가 보기로 했다. 그래봤자 먼 곳은 아니고 매일 와이키키에서 보던 다이아몬드헤드,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KCC파머스마켓을 가보기로. 간단하지만 트래킹이기 때문에 아침 일찍 해가 없을 때 가기로 했다. 오늘은 서핑을 안 한다고 생각하니 하루가 조금 빈 느낌이다. 서핑이 삶에 충만감을 얼마나 더해주는지 몸소 느낀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충만하다는 서핑에 꼭 들어맞는다. 아무런 목적이 없이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눈을 뜨고 몸을 움직여 바다로 나가는 일. 짠 내 나는 바다 공기를 한숨 들이켜고 너울대는 바다로 발을 찰박찰박 담그어 들어가는 길. 바다 위 낮게 떠 있는 해를 두 눈으로 마주하는 일, 충만하다. 이른 아침 향긋한 흙을 밟으면서도 느낄 수 있기를.


다이아몬드헤드까지는 걸어가기로 했다. 새벽 운하를 따라 걷는 길에 러닝 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비단 바다가 아니라도 이곳의 하루는 일찍 시작한다.  나 또한 여기서는 아등바등 애쓰지 않아도 일찍 일어나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른 아침을 시작하는 삶을 그렇게 바라는데도 잘 되지 않는데 말이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면 하루를 세 부분으로 쪼개어 쓸 수 있어 좋다. 새벽에 서핑을 하고 한참 쉬고 낮잠을 자도 아직 점심이다. 파삭한 하얀 이불에서 햇살을 맞으며 자고, 저녁에 맛있는 것을 먹고 글을 쓰며 마무리하는 하루. 막상 별 일 하지 않는데도 이렇게 꽉 찬 느낌이 나는 것은 마음은 행복으로 꽉 차있기 때문이다.


운하를 지나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타났다. 이렇게 가까이 동네가 있었구나. 항상 별천지 같은 와이키키에서만 머물다가 진짜 사람 사는 마을길을 걸으니 정겹다. 사람 사는 마을에서 이전 교환학생 시절이 떠오른 것은 냄새 때문이었다. 풀과 습기가 섞인 하와이냄새. 10년 전의 냄새를 코는 기억한다. 그때도 습기 가득한 아침 풀냄새를 맡으며 초록지붕 붉은 지붕 나지막한 집들이 있는 한적한 길을 지났었다. 학교도 지났었다. 후하 숨을 들어마시며 아직 그림자를 가진 새벽의 다이아몬드헤드를 바라보며 걸었다.


그나저나 우리는 어디쯤 온 것일까. 다이아몬드헤드를 보며 걸은 지가 꽤 되었는데 그 주변만 뱅뱅 돌고 있다. 이미 해가 밝게 떴는데 말이다. 이 길은 아까도 왔던 길인 것 같다. 그제야 느긋하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구글맵을 켜 보았다. 아직 35분이 남았다고 한다. 우리는 입구 반대쪽으로 왔는지 산봉우리를 둥그렇게 둘러 입구를 찾아가라고 한다. 가기 전 검색해 보았을 때는 10분이면 간다고 했었는데, 잘 알아보지 않고 눈앞에 산봉우리만 바라보고 걸은 탓이다.


약속한 입장시간이 이미 지나버렸다. 워니의 발걸음이 쿵쾅거림으로 바뀌었다. 발을 구르다가 다시 지쳤는지 터벅터벅 발을 움직이며 해가 쨍한 거리를 말없이 걸어간다. 그녀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지만 터덜터덜, 쿵쾅쿵쾅, 터덜터덜, 쿵쾅쿵쾅. 하는 뒷모습에 숨죽여 웃으며 동영상을 찍었다. 귀여운 꼬꼬가족도 보고 완두콩 사진도 찍고 하는 동안 어느새 다이아몬드헤드에 도착했다.


도착한 다이아몬드헤드는 생각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다. 아직 아침의 풀냄새가 잔뜩 남은 오솔길을 지나 계단을 오르고 나면 전망대를, 또 그 위에 컴컴하고 좁은 동굴을 지나고 마지막 계단을 오르니 벌써 끝이다. 그런데 수고한 것 대비 뷰는 죽여준다. 단 30분 올랐는데 경치는 그 어느 험난한 등산코스보다 호화롭다. 감탄도 잠시, 땡볕에 꽤나 걸었더니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간절하다.


종종걸음으로 언덕 아래에 파머스마켓으로 내려갔다. 여기저기 줄이 길게 늘어져있는 스톨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한 후, 얼음을 가득 채운 커피와 과일을 잔뜩 올린 아사이보울을 골랐다. 사람들이 늘어앉아 있는 보도블럭에 우리도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당과 카페인이 들어오자 우리의 표정은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편안한 표정의 워니이게 아까 찍어놓은 그녀의 동영상을 보여주고는 둘이서 깔깔 뒤집어지게 웃었다. 그녀의 쿵쾅대던 발걸음과 굳게 다문 입. 걸을 때마다 위아래로 힘 없이 흔들리던 백팩. 그리고 다시 터덜터덜 걷던 지친 어깨.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저기압이었다. 아침의 에피소드가 우리에게 반나절치 웃음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다만 그녀는 이 영상을 그 어디에도 올리지 못했다. 너무 성격 나쁜 사람처럼 보인다고. '사실인걸'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이건 우리만 간직하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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