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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l 12. 2023

#6. 나는 왠지 벌써 이 바다에 속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도 부리나케 일어나서 바다로 출발했다. 하와이에서의 아침은 서핑으로 시작한다. 날씨에 상관없이 새벽 다섯 시 반에 와이키키의 '카누스(Canoes)' 매일 나간다. 카누스는 와이키키 비치에 있는 스폿으로, 사람들이 해변에서 노는 곳에서 조금 더 깊이, 파도를 몇 개 넘어가면 있는 스폿이다. 와이키키인만큼 접근성이 좋고 파도가 얌전해서 인기가 많다. 잔잔한 파도에 우아하게 롱보드를 타는 사람들과 거친 파도를 좋아하지 않는 장년의 서퍼들이 많다. 가까운 덕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아침운동처럼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침에 로컬이 많고 여덟 시 이후부터는 차차 관광객이나 젊은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관광객이 많은 스폿이라 텃세가 없고 초보들에게도 너그러운 편이다. 내가 타던 양양에 비하면 이곳의 관대함에 절로 감사하다. 보통 양양같이 파도가 귀한 곳들은 파도를 가로채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다. 때문에 누가 타는지 눈치를 계속 볼 수밖에 없다. 서핑은 한 파도는 한 명이 탄다는 룰이 있다. 가장 뒤에서, 그리고 같은 라인업이라면 피크에 가까운 사람이 우선권을 가진다. 그보다 낮은 우선권을 가진 사람이 그의 파도를 가로채면 "드롭했다"라고 말한다. 드롭은 중요한 문제로, 서핑하며 대부분의 싸움은 드롭과 관련이 있다. 특히 여행객이라면 지형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문제가 생기면 절대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드롭하는 행위는 철저하게 피해야 한다. 건너 건너 아는 어떤 분은 발리에서 로컬과 시비가 붙어 결국 응급실에 실려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카누스의 사람들은 룰에 덜 엄격한 편이다. 비교적 드롭에 예민하지 않아 누군가와 같이 타는 것도 (눈치만 잘 본다면)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피크에서 패들 하는 사람이 "나는 왼쪽으로 갈 거야!"이라고 말하면 그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도 같이 파도를 탈 수 있었다. 같이 파도를 타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의 진로를 방해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도 너그러이 넘어갈 수 있었다. 여행객으로서 불리한 입장과 조심해야 할 것들을 많이 들어왔기에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너그럽게 대해주는 것이 더욱 고마웠다.


며칠 오지 않았는데 벌써 아침마다 보는 얼굴이 생기고 인사하는 얼굴들이 많아졌다. 낯 선 얼굴인 나에게 먼저 눈인사를 건네오는 사람들이 정겹다. 오늘은 대니얼이 넌지시 알려주었다. 내일부터 며칠간 해파리가 나올 거니 미리 준비를 하라고. 어떻게 아느냐 하면, 보름달이 뜬 지 9일이 지나면 해파리가 나온다고 한다. 신기해서 계속 물어보았더니 잘은 모르지만 달과 해파리의 행동 주기가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걱정해 주는 것이 정겨웠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다른 서퍼도 나에게 알내일 해파리가 나온다고 알려주며 긴 레깅스를 입는 것이 추천했다. 해파리에 쏘이면 생각보다 아프니 조심하라고. 다들 친절하고 다정하다.


든든한 마음으로 파도를 탔다. 두어 시간 타고 이제 두세 개만 타고 나가야지 했는데, 보드 옆에 바다거북이 나타났다. 거북이를 어제도 만났었는데 오늘도 만났다. 커다란 거북이가 수면 가까이, 그것도 내 옆에 둥둥 떠있다. 아 너무 좋다 서핑을 하면서 커다란 바다거북이를 이틀 연속이나 만나다니, 기분이 너무너무 좋다. 보드에 엎드려서 거북이를 한참 구경했다. 오늘 만난 애런이 그랬다. 사실 우리가 보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엄청 많은 거북이들이 있을 거라고. 그의 숙소에서 내려다보면 우리가 서핑하는 스폿에 거북이가 수십 마리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는 다만 그 거북이들을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서핑을 하다가 아래를 들여다보면 니모물고기라던지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치는 것이 보인다. 서핑보드에서 우리가 팔을 휘젓든 다리를 찰박이든 그들은 그냥 거기에 있다. 물고기와 거북이와 해파리의 터전에 놀러 가서 우리는 파도를 탄다. 내 보드 옆에 있는 거북이와 나를 피하지 않는 물고기들에 안심이 들었다. 나를 경계하지 않는 바다의 주인들. 그리고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바다 위 서퍼들. 나는 어쩐지 벌써 이곳에 속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날 밤, 산책하다가 발견한 공원의 큰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소원을 빌었다. 이렇게 매일매일 충만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이렇게 꽉 찬 하루를 살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 달라고. 그렇게 두 손 모아 소원을 빌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도 너무나 행복한 하루.



아참, 해파리는 집에 와서 찾아보았는데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box jellyfish라는 놈이 그런 경향을 보였다. 오죽하면 해파리달력도 있었다. 최근에 하와이대학에서 밝혀낸 원인으로는 다음과 같았다. 상자 해파리라는 이 종은 보름달이 뜬 지 8~10일 즈음에 얕은 물가로 와서 알을 낳는다고 했다. 즉 재생주기가 보름달과 관련 있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 알을 낳는 주기가 달에 관련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신기했다.


https://www.hawaii.edu/news/2022/05/25/lunar-cycle-jellyfish-spawn/


상자해파리.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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