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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l 11. 2023

#5. 하와이에도 우기가 있나요

서핑을 하고 지쳐서 나왔더니 신기하게도 바다 바로 앞에서 워니가 코옹- 하고 나를 부른다. 워니도 나를 찾아왔는데 때마침 내가 바로 나오고 있었다고 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찾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워니를 서핑보드에 태워 둥둥 부유하고 있을 때 즈음, 하늘에서 후드득 비가 떨어졌다. 아침에는 그렇게 날씨가 좋았는데 갑작스레 비라니. 아랑곳 않고 입술이 파래지도록 놀았다.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다. 다행히 비가 오는 와이키키의 우동집은 평소보다 오히려 한산했다. 자고로 비가 오면 국물이 국룰이건만 외국인들에게는 없는 룰인듯 했다. 줄 서지 않은 덕에 기분 좋게 우동과 무스비로 배를 통통 채웠다.


국물을 먹고 잠시 물을 사러 간 와중에 돌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조만간 그치겠지 하며 쉬이 봤던 비였건만 하늘에 구멍이 뚫렸는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릴없이 기다리기를 한참, 둘이서 커다란 비치타월을 뒤집어쓰고 숙소까지 뛰어가기로 했다. 둘이서 깔깔대며 클래식의 OST를 부르며 빗속을 뛰어갔다. 와이키키에서 자탄풍과 클래식은 어쩐 일인지 당연한 일처럼 어울렸다. 집으로 돌아와 한숨 자고 났더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하늘이 맑다. 그리고 저녁 해 질 녘 하늘은 그 어느 때만큼이나 예뻤다. 비 덕에 오늘 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별을 잔뜩 보았다.


다음 날 아침 날씨도 거짓말처럼 좋다. 하늘에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펼쳐졌다. "그림 같다"는 상투적이 말이 내 입에서 자주 튀어나온다. 미술관 전시 어딘가에서 본 그림 같다. 화가가 고심해서 만든 색들로 칠한 하늘 같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창문을 활짝 열고 부지런히 청소도 하고 빨래를 했다. 낯 선 땅이지만 내 공간을 가꾸는 것이 내가 벌써 이곳에 속한 것처럼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개운한 기분으로 집단장을 마쳤다.


이제 비치에 가서 태닝을 해야지, 어제 월마트에서 새로 산 비치파라솔을 야무지게 챙겨 나왔다. 와이키키로 향하는 길,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설마, 날씨가 그렇게 좋았는데, 하며 불안한 마음을 버리고 비치에 도착했다. 처음 써보는 파라솔을 꽂기 위해 열심히 모래를 파서 깊은 구멍을 만들고 파라솔을 꽂았다.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대수랴 싶었다. 그런데 저어기 한 발치 옆 파라솔이 펼쳐진 채로 데구르르 구른다. 커다란 파라솔이 모래밭 위를 데구루루 굴러가는 모양새가 우스워서 웃고 있던 찰나, 어어- 우리의 파라솔이 휘리릭 날아갔다. 당황한 우리의 눈과 우리 옆 중년 커플의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우리 모두 빠앙 터져서 깔깔깔 웃어댔다. 날아가는 파라솔도 잊고.


파라솔을 접은 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미련을 가졌지만 비는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덜덜 떨며 기다리다가 들어온 우리는 오늘도 뜨끈한 것이 땡겼다. 한국에서 들고 온 떡볶이 밀키트를 개봉! 어제 사온 계란도 삶았는데 하와이는 어쩜 계란까지 맛이 좋다. 워니는 여태 하와이에서 먹었던 것 중 가장 맛있는 한 끼 식사였다고 한다. 역시 떡볶이는 항상 옳아. 떡볶이를 먹다 보니 어느새 해가 졌다. 해 질 녘의 비가 오는 와이키키는 그대로 운치가 좋았다. 분홍빛의 하늘과 따뜻한 노란색이 비를 맞아 진해졌다.


항상 코발트블루색 혹은 핑크색일 줄로만 알았던 하와이의 하늘도 다양한 얼굴이 있었다. 하와이에도 사실은 사계절이 있다고 한다. 다만 변화의 폭이 작아서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겨울에는 사람에 따라 얇은 패딩을 입을 만큼 춥고 여름에는 유난히 덥다. 봄은 하와이의 우기라 보통 4월까지는 비가 온다고 한다. 우리는 5월에 도착했건만 그래도 비를 꽤나 맞았다. 기후변화로 하와이의 계절도 이제는 조금씩 예상할 수 없어진다고 했다. 어느 날은 오늘 같이 두어 시간씩 오기도 했고 어느 날은 잠깐 오고 그치기도 했다. 비가 오면 잠시 추워지지만 좋은 점도 있다. 바로 무지개를 잘 볼 수 있다는 점. 비가 잠시 왔다 그치면 찰나일지라도 무지개가 금세 생긴다. 저기 끝에서 반대쪽 끝까지 큰 반원을 그리며 모습을 드러내는 무지개 덕에 비가 오면 무지개를 볼 기대감에 두근대기도 한다.

비를 맞아 색이 진해진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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