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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Jul 02. 2023

#4. 하와이 첫 서핑

찐행복

하와이에서 난생처음으로 서핑을 해 본다. 차가 없어서 이번 여행에는 쉽지 않겠다 싶었는데 이리도 가까이서 서핑을 할 수 았다니, 설레어 뒤척이다가 열두 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다. 다섯 시 반, 노력하지 않아도 잠이 깼다. 서핑 갈 생각에 눈이 말똥 하게 떠진다. 아름다운 와이키키의 어스름한 새벽. 창밖이 붉다. 첫 서핑이니까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서핑샵으로 보드를 빌리러 나갔다. 여섯 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인데도 이미 보드들이 나갔다. 하지만 선택지가 많았고 고르다가 다카야마 보드를 볼 수 있었다. 딩이 많이 났지만 프리미엄급 보드였기에 냉큼 골랐다. 오늘의 럭키-


  와이키키의 파도는 환상적이었다. 힘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일정했고 골반 높이 정도로 편하게 타기 딱 적당한 사이즈의 파도가 쭉쭉 들어왔다.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라인업에 좋은 파도가 오다니, 이런 천국이 또 있을까? 다만 나는 영 파도를 타지 못했다. 오늘 빌린 이 보드는 다루기가 쉽지만은 않아 나는 계속 물에 고꾸라졌다. 이런 내가 안타까운지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건네었다. 포지션을 조금 옮겨보는 건 어떨까? 노즈에 물을 먹은 건 아닐까? 하며. 혼자서만 고군분투했다면 재미가 금방 떨어졌을 텐데 그래도 주변에서 다가오는 따뜻한 말들에 파도를 타지 못해도 즐거웠다.


 한 시간쯤 헤매었을까, 파도가 오고 옆에서 걱정을 해 주던 친구가 밀어주어서 쓱 파도에 올라탔다. 올라탄 파도는 힘이 죽을 듯 죽지 않았다. 아 조금 감이 왔다. 6개월 만에 처음 타는 보드, 처음 타는 스폿이라 조금 어려웠다. 라인업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람들이 바다 어느 지점에 모여있어 보았더니 거북이가 있었다. 아주 큰 바다 거북이가 라인업에 같이 떠 있었다. 발리 깊은 바다에서 서핑하다가 조그만 거북이를 보긴 했지만 이렇게 큰 거북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얕은 곳에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웃고 있다가 입과 턱이 아픈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다. 곧 거북이는 떠나고 나는 감을 찾아서 곧 재미있는 파도를 탔고 웃으며 돌아왔다. 아까 나를 걱정해 주었던 한 할아버지 서퍼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I thought you were a beginner but  you are not. You perfected that wave라고. 호호 아까 밀어주어서 탔던 상했던 자존심이 다시 회복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이미 완벽한 하루였다.


 여덟 시쯤 되니 아침에 같이 타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간다. 새벽에 타는 레귤러들은 이 즈음 나가서 하루를 시작하는 준비를 하나보다. 매일의 아침을 서핑으로 시작하는 그들의 삶은 건강하고 활기찰 것 같았다. 그 삶을 나의 삶으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조금 더 머물렀는데 이때부터는 파도에 힘이 생겨서 이전에 안 잡히던 사이즈의 파도도 잡히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정말 조그마한 파도에도 패들을 쭉쭉해서 잘 잡아 탔다. 멋졌다. 인스타그램에서만 보았던 실력자들이 바로 옆에 있었다. 부럽다. 여기 있는 동안은 매일같이 새벽에 나가서 파도를 타야겠다고 다짐했다. 여섯 시부터 여덟 시까지 딱 두 시간만 타야지. 그렇게만 매일 타면 삶이 너무나 행복할 테다. 이번 여행에 서핑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매일 할 수가 있다니, 그리고 이렇게 편하고 말랑한 파도가 가까이에 있다니. 길 가다 로또를 만난 기분이다. 너무 행복하다.


 하와이에서는 사람들이 다 나를 보고 환히 웃어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내가 먼저 웃고 있었다. 먼저 활짝 웃고 있는 나를 보고 그들도 웃어준 것이다. 여기서 이렇게 가만히만 있어도 얼굴에 웃음이 난다. 찍은 사진들을 봐도 하나같이 얼굴이 웃고 있다. 아아 너무 좋다.


어스름한 새벽의 빛깔
어스름한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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