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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다리담 Sep 17. 2023

#15. 하와이에서 햇빛알러지에 걸리다.

하와이에서 햇빛알러지로 고생 중이다.


햇빛알러지가 웬 말인고 하니, 햇빛에도 알러지가 생길 수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햇볕의 자외선이 강해서 피부에서 이상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나의 증상으로 말할 것 같으면 피부에 오돌토돌 간지러운 두드러기들이 났다. 하와이의 햇살은 만병통치약인줄로만 알았지 행여나 햇살이 병을 불러올 거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며칠 전부터 이런 증상들이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점점 넓은 부위로 퍼져나갔다. 언제부터였는 지 생각해 보니 이미 10일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손등에 모기 물린 것처럼 몇 개의 두드러기가 생기더니 점차 목부분이 빨갛게 부어오르고 쇄골, 손등 등의 범위로 좁쌀 같은 두드러기가 퍼져나갔다.


두드러기가 심해져서 수영을 하기가 꺼려질 즈음에야 심각성을 인지하고 증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쉽게 햇빛알러지라는 키워드를 찾을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나의 증상의 원인이라고 인정하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햇빛알러지를 인정하는 것은 하와이에서 햇빛을 보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내 맘과 달리 증상은 점점 두드러졌다. 오돌토돌하기만 했던 손등이 조금씩 가려워지기 시작했고 증상이 없던 다리에까지 올록볼록한 두드러기가 만져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서핑하는 내내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내리쬐는 햇살 아래에서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두드러기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점점 간지러워지는 손등을 느끼며 처음으로 하와이에서 날이 흐렸으면 하고 바라 보았다.


보드 위에서 파도를 기다리며 앉아 있으니 무릎 위의 다리에 햇빛이 직광으로 내리쬐었다.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양 손등을 무릎 위에 대고 있자 누군가가 다가와서 "명상중이야?"라고 물었다. 손바닥을 하늘로 향해 무릎 위에 올리고 있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명상하는 모양새였다. "그런 셈이야"라고 말하고는 자세를 유지했다. 두드러기가 난 사람보다 명상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나았다.


서핑을 하고 나왔는데 다리가 징그러울 정도로 울긋불긋해져 있었다. 문득 무서움이 몰려왔다. 그제야 심각함을 깨달았다. 며칠 전 귀도 빨갛게 붓고 간지러워서 피어싱 염증반응인 줄 알고 피어싱을 뺐었는데 그것도 사실은 햇빛알러지구나 싶었다. 며칠 간 연고를 발라도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온몸이 햇빛을 피하라고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는데 나만 그걸 듣지 않았던 것이다. 아직까지 얼굴에는 퍼지지 않았지만, 귀에서 목 쪽으로 스멀스멀 염증반응이 번지고 오는 것 보면 얼굴도 조만간 일 것 같다.


얼굴까지 알러지가 퍼진다면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는 신세가 되어 내 하와이 여행도 끝장이다. 얼굴까지 퍼지기 전에 심각함을 깨달아서 정말 다행이다. 아니 어쩌면 내 몸이 내가 심각함을 깨닫기 전까지 찬찬히 기다려준 걸지도 모른다. 벌써 증상이 10일이나 지속되었지 않는가.


다시금 진지하게 검색을 해 보고 나니 햇빛알러지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증상을 살필걸 싶었다. 흔치 않은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인터넷상에는 이미 햇빛알러지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나 있었다. 특히 하와이와 괌처럼 해가 센 적도의 섬들에서 자주 일어나는지 그 지역 키워드와 맞물려 검색되었다. 특히 피부가 비교적 연약한 아이들과 여자들에게 자주 일어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최선의 치료법은 햇볕을 보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외부에서 약을 발라도 자극이 되는 원인을 치워주지 않으면 증상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다행히 한국에서 혹시나 하고 챙겨 온 약(리도멕스)이 있어서 일단은 그걸 발랐었다. 뭐가 걸릴지 몰라 종류별로 바리바리 들고 온 약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다만 연고는 검지손가락만 했고 그마저도 반쯤 쓰다 만 것이었기에 귀에 손등, 다리에 소중히 배분해 가며 발랐다.


연고가 동나기 전에 두꺼운 셔츠와 모자로 무장하고 드럭스토어로 행차했다. 내 목적은 지르텍과 코르티솔이라는 약이었다. 약 천국 미국은 구글링 하면 필요한 약들의 이름까지 상세히 알 수 있었고 어디서든 약을 구하기도 쉬웠다. 다행이었다. 롱스드럭스, 월마트뿐만 아니라 편의점만큼 많은 ABC마트에도 흔하게 팔았다.


약을 먹고 공원에 누웠더니 그새 깜빡 잠이 들었다. 약에 잠 오는 성분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이 정도로 강력한 잠이 쏟아질 줄이야. 눈을 떠보니 어느새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어있었다. 다만 약을 먹고 연고를 잔뜩 발랐는데도 효과가 없는 것 같아 조급했다. 긴팔을 입고 있어도  햇빛이 내리쬐는 거리를 다니는 것이 불안했다. 밤이 되어 해가 내려가자 그 때야 안심했다.


하와이까지 와서 커튼 뒤에만 숨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이틀 뒤 떠나는 워니를 따라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자다가도 걱정이 되어서 뜬 눈으로 인터넷에 햇빛알러지를 검색해서 찾아보았다. 제발 빨리 나아서 있는 동안 서핑을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랐다.


다행히 가지고 있는 슈트를 조합해서 긴팔 긴바지로 만들었고 서핑을 할 수 있었다. 손쓸 수 없이 우스운 꼴이었지만 바다로 나갈 수 있음에 감사했다. 다만 긴 다리 슈트에 래시가드까지 입은 내 모습이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사람들이랑도 얘기하고 싶지 않고 나 혼자만 있고 싶었다. 속으로 바닷속에서 다 나가달라고 외쳤다.


 무엇보다 가장 나를 무섭게 했던 것은 햇빛을 보지 않아야만 낫는다는 조언들이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이 섬에서 나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이전에 인도여행 중 고산병에 걸렸을 때 다른 도시로 내려가기 전까지는 내내 아팠던 것을 기억하며 마음이 아팠다.


긴팔 긴바지로 무장하고 와이키키 거리로 나가니 나 혼자만 동떨어진 사람인 것 같았다. 모두 수영복을 입은 이 거리에서 혼자 꽁꽁 싸맨 모습이라니, 이 섬에 받아들여진 자와 받아들여지지 않은 자가 옷차림으로 나뉘는 듯했다. 길을 따라 걸으면서 긴 옷을 입은 사람들을 찾아 옷차림을 유심히 살폈다. 내리쬐는 햇살 속에 긴 청바지를 입은 사람을 보면 내 증상도 별 것 아닌 듯했다. 저 사람들도 어떤 사연이 있어서 이 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걸까, 혹은 스스로 섬을 밀어낸 걸까 속으로 생각하며 동질감에 위로받았다.


우울해지는 마음을 바꿔먹어서 단순한 선래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 누군가가 하와이에서 의사에게 가서  해당 증상을 보여줬더니 sun rash라고 했다고 한다. 햇빛알러지라는 단어는 조금 과격해서 절망스러운 느낌이 있기에 내 마음대로 생각을 바꾸었다. 햇빛으로 피부가 빨갛게 익어서 몸을 가리고 다녀야 하는 거라고 상상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햇빛을 너무 많이 봐서 그런 거니까 말이다. 신기하게도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했다. 선래시라고 생각하니 온전히 내 업보인 것 같아 억울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노력하면 나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차도가 있을지 모르고 행하는 것과 차도가 있다고 확신하고 행하는 것의 마음 상태는 확연히 달랐다.


희망을 가지고 틈날 때마다 연고를 바르고 관리를 했다. 정말 다행히 4-5일 지나자 래시가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해를 보면 다시 증상이 올라왔고 손등은 계속 울긋불긋하지만, 귀나 목은 이제 더 이상 빨갛게 부어오르지 않았다. 처음으로 항히스타민제를 먹어서 약이 잘 받았는지 아님 하와이에서 스트레스가 없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감사한 일이었다. 여전히 옷을 입을 때 조심스러움이 있지만 이 정도면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니 감지덕지였다. 다시 정상적인 옷을 입고 서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다.


증상의 원인은 여느 피부 알러지처럼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 부족을 짐작하지만 확실히 알 수는 없다. 내 생각에는 너무 방치했던 탓에 피부가 놀랐던 것 같다. 평소 피부하나만은 강하다고 생각했기에 일이 커질 때까지 안일했다. 갑자기 적도의 강한 햇빛을 선크림 하나 없이 직접 맞았으니 피부가 놀랄만했다. 바디로션과 선크림을 그렇게도 안 바르던 나에게 알려준 교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라도 내 피부를 소중히 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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