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 재방송을 보았다. 동백이(공효진)가 파파라치 기자의 디지털카메라로 아들 사진을 발견하고, “이거 사진 어떻게 삭제해요”라고 묻는다. 기자가 순순히 답해주지 않으니, 동백이는 카메라를 바닥에 내던진다. ‘디지털 콘텐츠는 그런 방법으로는 삭제되지 않아요’ 안타까운 나는, 이것이야말로 디지털 격차다… .
한 달 넘게 이 격차와 씨름 중이다. 애초에 ‘격차’라는 단어가 싫었던 나는 다양한 단어들을 떠올렸다. 높고 낮음이 아니라 멀어지는 것, 벌어지는 것, 그래서 결국 뒤처지는 것들에 관해. 디지털 세상으로 떠나는 열차에 올라타지 못한 누군가는 여전히 플랫폼에 있다. 멀어지고, 사이는 벌어지고, 그래서 어느새 남들이 이미 마침표를 찍은 곳에 남아 중얼거리는 기분.
앞서가려면 알다시피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 이미 미래의 어른인 어린이들은, 또는 10대들은 미래의 감각을 타고났다. 그 감각을 40대가 얻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스를 만큼의 더 빠른 속도가 필요하다. 이 속도감에 지친 사람들, 속도를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뒤쳐질 수밖에 없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 이어달리기 계주 선수로 발탁되었다. 100미터 15초를 뛰는 유망주였으나 본 경기에서는 너무 떨려 발이 꼬였다. 나는 바로 일어나서 달리지 못했다. 주저앉은 채 앞에서 뛰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에 나의 시간은 점점 느리게 흐르고, 이내 최선을 다해 달렸지만 이미 진 기분이었달까. 그리고 졌다.
격차 해소, 영어로 하면 Bridge the gap으로 번역된다. 정말? 스피드를 다리로 해결할 수 있는 건가. 브리지 오버 트러블드 워터(Bridge over the troubled water)가 가능한 것인가. 서로 '다른' 세상에는 다리가 필요하지만, '나쁘고 좋은' 세상에 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부러 차이를 두어 차별을 만들어낼뿐.
그럼에도 우리가 이를 위한 열차를 보낸다면, 다리를 놓는다면, 이왕이면 진입로가 넓고 낮은 경사로로 되어 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의 속도는 너무 빠르지 않게, 우리가 두고 온 것들을 잊지 않도록, 지나치는 것들을 살펴볼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