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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사 Nov 26. 2018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끝을 거닐다, 광교 저수지 수변길

엄마와 함께 한 모든 순간의 기록

"같이 갈래?"


그냥 한 번 해본 내 말에, 세탁기는 미리 돌려놨어야 했는데 무슨 입을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엄마를 보며 혼자 운동 삼아 바깥 바람 쐬고 오려 했던 내 본심이 죄책감을 불러 일으켰다. 여전히 난 나 밖에 모르고 엄마는 우리 밖에 모른다. 기억도 희미한 어렸을 적 가족 여행을 이후로 가족 누구와도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반면 난 성인이 되고 혼자 여행에 발을 붙이자 전국을 돌아 다니며 매일 다른 계절의 새로운 풍경을 알아 갔다. 그리고 며칠 전 엄마의 생일날, 엄마가 살면서 제주도 여행을 보내 준다는 아빠 말에 속아 그동안 제주도도 못가봤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제주에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없을만큼 떠날 동안 엄마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광교 저수지의 첫 모습. 오래 눈으로 담다.
다른 각도에서 또 한 컷.

집에서 엄마에게 오늘 우리의 행선지는 광교산 정상이라고 서로 등산복으로 풀셋팅을 했지만, 길에 미숙한 내 탓으로 인해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광교 저수지로 노선이 변경 되었다. 광교산은 기약 없이 다음으로 미루어 본다.


수변 데크길. 오랜만의 외출에 들뜬 엄마는 굼뜬 나를 지나쳐 간다


등산복이 민망한 산책길. 가을과 겨울 사이 11월의 풍경은 따뜻한 감이 도는 동시에 차갑다. 찬 손을 핑계로 엄마 등산복 주머니 속 손을 잡았다. 친구들은 차갑다며 내치는 손을 엄마는 왜 이렇게 손이 차갑냐고 날 닮아서 그렇다는 둥 홍삼 먹어야 한다는 둥 나이 들면 더 혈액순환이 안된다는 둥 하며 끝까지 놓아주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던 수변가의 1.5km 데크길은 호떡 트럭과 쉼터를 종착 표지판 삼아, 그 옆으로 산과 연결되어 있는 다리를 건너 미련이 남은 광교산 8코스의 산행을 시작하려 했다.


수변길에 포함되어 있는 수원 팔색길 중 모수길.


경사가 가파른 등산. 며칠 동안 감기 기운이 있던 엄마는 잠깐의 등산에 오한이 오는지 땀으로 얼굴을 적셨고, 그런 엄마에게 언제 세수하고 왔냐고 하자 내 헛소리를 좋아하는 엄마는 그저 웃고 만다. 다시 하산해 데크길의 맞은 편 수변길을 따라 걷기로 한다.


좌 저수지 우 산이 계속되는 길.


제법 많은 양의 마른 낙엽이 발 밑에서 미끌거렸다. 맞은 편의 수변길은 산 아래 평지였기 때문에 난이도는 하 정도였지만 좁은 길에 잘못 미끄러지면 바로 저수지 행이다. 늘 그렇듯 엄마의 아빠 및 동네 아주머니 뒷담화를 지겹게 듣고 난 후, 숲 속에서 체험학습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아주머니 일행을 몇 마주하고 나니 1.8km의 길이 어느덧 시작점으로 돌아왔다.


이번 산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소. 가을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프레임.


반대편에선 보지 못했던 저수지 언덕을 지나 주차장까지의 풍경이, 마주한 작은 공원에서 무르익은 가을의 정취가 절정을 자아낸다. 매일 반복되는 출퇴근 길에선 겨울의 시작이었는데 이 곳에선 아직 지나가지 못하게 가을의 끝자락을 잡아 두고 있는 듯 하다. 만발한 단풍 구경이 아닌 져가는 은행잎일지라도 아직 온전한 가을의 모습과 순간을 담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엄마와 함께.


저수지 인증샷. 한 쌍.


모처럼 밖에 나왔으니 인증샷을 남겨야 한다며 지나쳐 가는 엄마를 계속 불러 세웠다.


"엄마, 여기 서있어"

"얼굴이 엉망인데 어디 보면 돼?"


미안 엄마, 나도 엉망이야... 발만 찍는 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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