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병의 과정과 치료에 관하여
TV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 ‘연예인 병’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나치게 사람들의 관심을 의식하고 자아도취하거나 자신의 인지도를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행위를 지칭한다.(나무위키 참고) 이와 마찬가지로 초보 정리인들에게도 오는 병이 하나 있는데 이것을 나는 ‘미니멀리즘 병‘이라고 칭한다.
몇 년 전 핫했던 키워드 ‘미니멀리즘’은 물질의 소유를 최소화, 단순화하는 것을 가리키며. '심플 라이프(simple life)'나 '심플 리빙(Simple living)'으로도 쓰인다.(나무위키 참고) 말 그대로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는 주거 형태를 가리키는데, 정리계에서는 많은 이들이 이 ‘미니멀리즘‘을 표방한다. 정말 극단적인 경우 텅 빈 방에 몇 가지 도구만으로 수도승처럼 생활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정리계의 끝판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렇다 보니 많은 정리계 초보들이 이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정리계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정리인 시기이다. ‘정리’에 관한 미디어나 책에 의해 감화되거나, ‘이사’ 또는 ‘전문가의 도움’을 통해 정리를 경험하게 된 후, 정리의 매력에 빠지게 됐을 확률이 높다. 한동안 정리 한다고 집이 더 어수선해지기도 하지만 노력과 끈기로 정리를 완료해 냈을 때의 뿌듯함과 평온함에 만족도가 최고조에 달한다. 그 후부터는 자발적으로 정리할 곳을 찾아다니며, 정리, 수납에 관한 책과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한다. 동경하는 ‘정리계 고수’들이 생기기 시작하며, 수납 바구니와 정리템들을 마구 쇼핑하는 시기이다. 자고 일어나면 또 정리할 곳이 있나 두리번거린다. 가족과 주변인들에게 정리한 곳을 자랑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리에 관한 영상이나 책들을 접하다가 ‘미니멀리즘’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된다. 텅 비었다고 생각될 정도의 군더더기 없는 미니멀리스트의 집들을 보다가 우리 집을 보니 갑자기 너무나도 지저분해 보인다. 집에 이렇게나 잡다한 물건들이 많았나 싶고, 더욱 극단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있는 경우 오히려 빈 공간이 아이들의 창의력도 키워준다고 하는 말에 솔깃하기도 한다. 이미 비울 때 느껴지는 ’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지저분해 보이거나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을 가차 없이 버린다. 일명 ‘다 버려 시기’이다. 항의하는 가족들이 생기나, 이때는 그 이야기들이 들리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몰래 버리기’도 시전 한다.
얼추 미니멀리스트들의 집과 비슷한 느낌이 되자 비로소 충족감이 든다. 텅 빈 공간들을 보며 마음에 평온함을 느낀다. 그러나 조금씩 가족들의 불만이 터지기 시작한다. 넓은 거실을 위해 소파를 없앴더니 퇴근 후 편하게 쉴 곳이 없다. 수납에 필요한 큰 가구들을 생각 없이 버렸더니 오히려 작은 물건들이 바닥에서 나뒹군다. 다른 가족이나 친구들이 집에 방문하면 어째 내 눈치만 살피고 서 있다가 일찍 자리를 뜬다. 자잘한 장난감들을 다 갖다 버렸더니 아이는 놀 것이 없다며 오히려 스마트폰만 잡고 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 급격하게 ‘현타’가 오기 시작한다. 내 집인데도 내 집 같지가 않다. 가족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나 역시 더 이상은 이렇게 살 수 없다고 느낀다. 헐 값에 팔아넘겼던 가구들을 다시 제 값 주고 사기 시작한다. 머릿속엔 ‘돈지랄’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버린 물건들을 다시 살 때 지출은 컸지만 이를 통해 진정한 ‘미니멀리즘’의 의미를 알게 된다.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그 물건들이 나에게 주는 편리함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 정리‘는 버리는 것이 아닌 ’ 남길 것을 정하는 일’ 임을 깨닫는다. 물건을 살 때 더욱 신중하게 되고, 버릴 때 역시 조금 더 고민하고 버리게 된다. 이쯤 되면 나의 라이프 스타일도 어느 정도 결정되고, 물건에 따라 소유하고 있어야 할 적정 재고가 얼마인지도 알게 된다. 예전에 비해 엉망진창인 공간이 있어도 오히려 침착하게 되며, 수납 장소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므로 정리하는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는다. 이제 제법 ’ 정리인 ‘의 여유가 느껴진다.
이상, ‘미니멀리즘 병’의 발병과 치유의 과정에 대해 살펴봤다. 내 기준 3대 몹쓸 병이 있다. 바로 ‘연예인 병’, ‘단발 병’, ‘미니멀리즘 병’이다. 그렇지만 이 병들은 잘 이겨내고 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공통점들이 있다. ‘연예인 병’을 앓다가 치유된 사람들은 겸손함을 갖추고 더 나은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으며, ‘단발 병’ 역시 일단 겪고 나면 ’아, 그건 고준희여서 어울리는 거였구나 ‘를 느끼며 진정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미니멀리즘 병’이야말로 잘 이겨내고 나면 진짜 나에게 필요한 물건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게 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혹시나 지금 ‘미니멀리즘 병’을 앓고 있는 ‘정리인’들이 있다면 잘 겪어내길 바란다. 당신이 진정한 ‘정리인’으로 거듭날 기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