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순이의 단계별 집탈출기
미국에 온 지 두 달이 조금 지났다. 처음 디트로이트 공항에서 내려 모든 외국인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보는 것 같다는 착각에 입에 경련이 날 것 같이 억지웃음을 짓던 시기는 이제 지난 것 같다. 워낙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대학가다 보니 아시아에서 온 작은 아줌마 따윈 그들의 눈에 띌 일 없었고, 나는 그제야 슬글슬금 동네를 기어 나와 여기저기를 구경할 수 있었다.
처음 나의 활동 반경은 아이의 스쿨버스를 태우고 픽업하는 집 앞이었고, 다음은 마트, 최근엔 다운타운까지 진출했으나, 그래봤자 캠퍼스 도서관을 어슬렁거리거나 그나마 친근하다고 느끼는 스타벅스가 전부인 듯하다. 아이를 낳고 나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나머지 나는 이제 세계여행도 혼자 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혼자 떠나는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라며 떠들어댔는데 막상 직접 닥쳐보니 생각보다 영어 울렁증은 심했고 아무리 안전한 도시라고는 하지만 총기사고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미국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겁이 나더랬다.
그래도 한국 짐 고대로 가져와 여기가 경기도 어느 구석인지, 미국 미시간인지, 알 수 없는 기숙사에만 처박혀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미국에 5년이고 10년이고 산다면 ‘뭐, 다음 기회에 가보지.’ 싶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년 하고 4개월 정도였고, 나는 용기를 내어 밖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나에겐 꽤 많은 시간이 주어졌는데 밖에서 밥까지 먹기엔 살인적인 물가와 아직도 적응 안 되는 팁까지 더해 부담이 너무 컸고, 오전 시간을 이용하여 동네탐방 및 카페 투어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덕분에 나는 카페에서 할 일로 이렇게 또 슬그머니 브런치 앱을 켜게 된 것이다.
외국에서 사는 것과 해외여행을 하는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이 뭘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나는 편안한 차림의 백팩을 메고 화장끼 없는 외국 대학생들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카페에서 그 차이를 많이 느낀다. 해외여행에서도 많은 카페를 가지만 나는 그곳에서 잠시 머물다가는 사람일 뿐이었다. 누가 봐도 차려입은 옷을 입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 순간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외국인이 배경에 보이도록, 또는 그 나라 언어가 보이도록) 기념품을 고르거나,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시그니쳐 메뉴를 고르지만, 그곳에 산다는 것은 나 역시 맨얼굴에 모자를 눌러쓰고 무릎 나온 추리닝을 입고 늘 앉던 자리에서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이다.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의식조차 못하지만 나중이 되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을 장면들.
나는 이곳에서 그런 평범한 장면들을 많이 남기고 싶었다. 더불어 사람 구경 좋아하는 내겐 다른 나라 사람들을 구경할 기회까지 생겼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을까. 거기다가 방치해 둔 브런치에 글을 쓸 소재까지 생겼으니 이거야말로 마당 쓸고 돈도 줍고, 그걸로 주식도 대박 나는 일 아닌가.
그래서 앞으로 이곳에는 나의 좌충우돌(?) 미국 탐방기가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혹여라도 이 글을 읽고 궁금한 사항이나 꼭 경험해 보거나 먹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길 바란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더 풍부한 경험을 할 수 있게 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