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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랭 Apr 10. 2023

미국에서 먼저 경험해 본 완벽 노마스크 생활

원래 마스크 썼던가요?

 미국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겪은 가장 큰 문화충격은 역시 노마스크였다. 분명 비행기 안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사할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나 역시  불안감에 아이에게도 잠잘 때도 무조건 마스크를 껴야 한다고 잔소리를 해댔는데, 미국 도착과 동시에 입국 심사 줄에서부터 한 두 명씩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더니,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고 있는 것이 아닌가. 딸아이가 그 광경을 보더니 “여기는 마스크 안 써도 돼?”라고 묻길래, “그런.. 가봐?” 라며 우리 가족도 슬쩍 마스크 벗기에 동참하였다. 미국이라는 땅덩어리를 밟자마자 바로 시작되는 노마스크 생활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까는 안 됐는데 지금부터는 되는 이 상황이 아이러니하여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습관이라는 게 생각보다 무섭다. 그동안 답답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마스크를 벗으니 뭔가 중요한 걸 하나 안 입고 있는 듯한 민망함이 몰려왔다. 사실 마스크 속에 숨어 편안한 점도 많지 않았던가. 칙칙한 얼굴이며, 보기 싫은 여드름도 마스크 한 장이면 노 프라블럼이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려도 마스크 안에서는 상관없다. 재미없는 농담에 입꼬리까지 올리지 않아도 눈으로 웃는 시늉할 수 있던 마스크가 이제 나에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가시지 않은 코로나에 대한 불안감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실외에서는 그나마 덜했지만, 실내에서 특히 낯선 사람과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는 아직도 ‘혹시나’하는 마음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습관이 무서운 만큼 사람의 적응력도 무서웠다. 일주일정도 노마스크 생활을 하고 나니 이제 마스크는 답답해서 못 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때 마스크 안 끼고 나가면 큰일 나는 줄 알 던 딸아이도 어느 순간부터 마스크를 찾지 않았다. 칙칙한 얼굴은 여전했지만, 나는 언제 마스크를 썼냐는 듯이 당당히 맨얼굴로 밖을 나섰다.

 문제는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마스크였다. 외국에서는 마스크를 안 쓴다고는 들었지만, 그래도 학교에서는 쓰지 않을까 싶어 어른 마스크 남편과 내 것 각각  300장씩 600장, 아이용 300장, 총 900장의 마스크를 챙겨 왔건만, (심지어 아이 거는 그 비싸다는 포켓x, 티니x  마스크를 챙겨 왔다.) 그 어마어마한 마스크들은 박스도 뜯지 못한 채 집 창고에 쌓여있다. 한국에 가져갈 때쯤이면 한국도 노마스크일 것 같은 슬픈 예감과 함께...

 마스크 없이 다니는 삶이 어쩌면 당연한 건데, 새삼스럽게 요즘 이 삶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소중함은 언제나 그걸 잃었을 때 가장 극명하게 깨닫게 된다. 마스크 없이 턱밑까지 숨이 차게 달리는 아이를 볼 때,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웃기는 아이들을 볼 때, 매일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에게 입모양으로 ‘사랑해’라고 말해줄 때, 나는 이 일상의 행복함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는다. 앞으로 또 이런 일상들이 달라지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만, 그래서 나는 더더욱 지금의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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