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어느 정도 영어를 알아듣고 말하게 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졌다. 그중 하나가 다양한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 영화를 시작으로 다양한 전시회와 박물관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엔 뮤지컬을 한 번 봐야겠다 생각하던 중에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블루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뮤지컬로 공연한다는 소식을 입수하게 됐다. 나도 에피소드들을 모두 외울 정도로 아이가 정말 많이 본 애니메이션 중 하나기에, ’ 이거다.’ 싶어 한 달 전에 예매를 마치고 그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뮤지컬도 뮤지컬이지만 디트로이트의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Fox theater를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욱더 기대가 컸다. 뮤지컬 공연 당일, 우리는 일찍이 도착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공연장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드디어 공연장의 문이 열리고, 웅장한 공연장의 내부에 놀랄 틈도 없이 가방과 소지품 검사가 진행되었다. 공항에서나 하던 금속탐지기까지 통과하고 나니 그제야 높은 천장과 금빛으로 빛나는 오리엔탈 분위기의 극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턱시도를 입은 직원들이 분주히 이곳저곳을 다니며 관람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조금은 긴장한 마음으로 차례차례 줄을 서서 굿즈도 사고 극장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그렇게 턱시도 차림의 직원이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아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왠지 느낌이 싸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극장에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 꽉 찼는데 내 앞에도, 내 뒤에도, 내 옆에도 갓난아기들이 가득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어린이 뮤지컬을 관람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어린이 뮤지컬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어린 아기들은 공연 중간에 울 수 있고, 공연 중간에 밖을 나가기 어려우므로 대부분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의 아이들이 온다. 나 역시도 뮤지컬을 가기 전부터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 앞좌석은 발로 차면 안 된다, 일어서면 안 된다, 중간에 나올 수 없으니 화장실을 미리 가야 한다며 전부터 잔소리를 많이 해댔는데, 조금은 다른 분위기에 살짝 당황스러웠던 것이다.
미국 아기들을 어린 나이에도 제지가 되는 것인가? 공연 전 으레 하는 관람 규칙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면 분위기가 바뀌는 건가? 별 생각을 다하던 중 그 흔한 ‘공연 도중 핸드폰으로 사진이나 동영상 찍지 마세요.’라는 언급조차 없이 공연은 갑자기 시작되었다.
그다음부터는 더더욱 가관이었다. 불이 꺼지자 소리 지르는 아이, 놀라서 우는 아이들의 소리가 서라운드로 극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멘붕이 되어 공연을 보는데, 이건 눈으로 보는 건지 코로 보는 건지. 굿즈로 파는 알록달록 불빛이 나오는 스피너는 여기저기서 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피자와 팝콘을 신나게 먹고 있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자 아이들은 복도로 나와 춤을 추고 자리에 일어나서 함께 몸을 흔들었다. 그 와중에 너무 우는 아이를 달래려고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면서 자리를 이동하는 바람에 나는 요리조리 잘 보이는 곳으로 목을 빼고 공연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눈알을 굴리며 ‘이게 맞는 건가?‘라고 생각하는 도중 옆에 앉은 딸아이를 봤다. 아이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아니, 신나 보였다. 질문하고 싶을 때 질문하고,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어깨춤을 추고 있었다.
그제야 주변이 보였다. 옆좌석에서 귀가 찢어지게 울어도 아무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 개월 수를 물어보며 스몰토크를 하는 엄마들. 콘서트장을 방불케 하는 신난 아이들의 춤사위, 주인공이 무언가를 찾고 있으면 아이들은 큰 목소리로 찾는 것을 돕고, 위기에 처하면 함께 소리 지르고 운다.
아이니까. 우는 것도, 떠드는 것도 당연하다는 듯이.
서로가 온전히 그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방해하지 않는 것이 우리나라의 배려라면, 그들의 배려는 다 함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도록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물론 어른인 나는 조금 정신이 없었고, 우리나라보다 두 배는 되는 자리값을 내고도 아이를 안고 밖을 들락날락하는 미국의 부모들의 돈이 조금 아까워 보이긴 했지만, 말 그대로 이건 ‘어린이 뮤지컬’이었고, 아이들은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것 같아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흔히 미국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 개인주의‘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모습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다 싶었다. 뮤지컬 내용은 여전히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앞으로의 미국 생활이 더 흥미진진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뮤지컬 티켓 값은 건졌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