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랭 May 08. 2023

엄마, 학교에 가고 싶어요!

미국학교 관찰기

 “엄마, 나는 미국 학교가 더 맞는 것 같아. “

미국에 온 지 세 달밖에 안 됐는데, 그것보다 한국 초등학교는 입학조차 하지 않아 경험해 본 적도 없는데, 딸아이가 대뜸 이런 말을 한다. 이유를 물어보니 생각보다 대답은 단순했다.


 “여기는 숙제가 없잖아. “


 미국 오기 전 태권도 학원을 다니며 언니 오빠들에게 초등학교 생활을 주워듣긴 했나 보다. 초등학교 가면 숙제도 많고 공부해야 할 것도 많다며, 유치원 때가 좋은 거라고 했단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숙제는커녕 제대로 된 교과서도 없으니 아이에겐 미국 생활이 한국보다 낫다고 생각한 듯하다.


 미국 오기 전, 나 역시 미국의 학교 수업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떤 교과가 있는지, 어떻게 수업을 하는지, 교실 풍경은 어떨지. 얼레벌레 입학식도 없이 중간에 들어가긴 했지만 초등학생 학부모가 된다는 건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았다. 다행히 교실 풍경에 대한 궁금증은 첫날 아이를 데려다주며 해결할 수 있었다. 미국 교실의 첫인상은 ‘자유로움’그 자체였다. 좋게 표현해서 그렇지, 줄 맞춘 책상과 걸상, 잘 정돈된 한국 교실과 비교하면 무질서하고 정신없어 보였다. 아무 데나 걸린 옷들과 쌓여있는 신발들, 책상 모양들도 제각각이어서 이게 아직 수업 시작 전이 맞는가 싶었다. 가끔 수업 시간에 찍어 올려주신 아이들의 사진을 봐도 아이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거나, 누워있거나(?)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우리가 말하는 소위 ‘공부하는 ‘ 모습은 별로 없었다.


 교과서가 없는 것도 나름 충격이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수학 한 과목 빼고는 따로 정해진 교과서가 없다. 매주 금요일 가져오는 ‘friday folder’에는 한 주 동안 활동한 다양한 활동지들이 들어있는데 a4 용지 반쪽짜리이거나(가끔은 손으로 찢은 듯한 1/4쪽 종이이기도 하다.) 대충 글씨 따라 쓰기를 한듯한 꾸깃꾸깃한 종이들이 들어있다. 처음에는  그냥 쉬는 시간에 끄적거린 건가 보다 하고 죄다 버렸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들이 교과서 대신 수업할 때  쓴 활동지라는 것이 아닌가. 교과서가 없으면 그럴듯하게 파일링한 문서들을 줄 줄 알았던 나는 뒤늦게 그 종이 쪼가리들을 보물처럼 모아두게 되었다.


 무엇보다 ’ 바깥 놀이‘에 대한 미국 학교의 집착은 무섭기까지 했다. 아이의 학교는 하루 세 번 ’recess' 시간이 있는데 이 시간에는 무조건 밖에 나가 놀아야 한다.(비가 오거나 눈이 많이 오면 교실 안에서 진행되기도 한다.) 컨디션이 안 좋아 교실 안에 있겠다고 해도 허락되지 않는다. ’밖에 나가 못 놀 정도면 학교에 아예 오지 말았어야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지인의 썰을 듣고 나니 아, 이 학교는 정말 ’ 바깥 놀이‘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심지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고작 18분밖에 안 되는 밥 먹는 시간이 땡 하고 끝나면 다 먹든 못 먹든 여지없이 바깥으로 내보낸 다고 하니 여기선 ’ 밥‘보다 ’ 놀이‘가 먼저인 듯하다.


 학교에서 하는 각종 행사들도 뼛속까지 한국 엄마인 나에겐 ‘맨날 놀기만 하고 공부는 언제 하나?’라는 생각을 심어주기엔 충분했다. 툭하면 하는 ‘파자마 데이’(파자마를 입고 좋아하는 인형을 가지고 등교한다.) 각종 ‘celeblation’이라는 이름의 파티들이 그러했다. 어느 날은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학부모들에게 믹서기를 빌려 밀크셰이크 먹는 날을 만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캐릭터 코스튬을 입고 가기도 하고, 이상한 양말 신는 날이라며 양말을 짝짝이로 신고 가기도 한다. (왜 미국 애들이 그렇게 코스튬 의상이 많은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이번엔 어떤 명분으로 행사를 만들까 고민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


 쓰고 보니 미국 생활에 불만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 가족은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시한부 미국 생활이기에 이곳에서의 생활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 저만큼 앞서 나가 있을 것 같은 한국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여기서의 학교 생활은 늴리리 맘보니까.

 그래도 여기 오니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그동안 우리는 뛰고 있었다는 사실. 모두가 전속력으로 뛰는 곳에 살다 보니 안 뛰면 불안하고, 숨이 차도 계속 뛰어야 했다. 그러나 지구 반대편엔 모두가 걷는 곳도 있더라. 아직은 뛸 때가 아니라며 여유만만인 이곳에 있다 보니 나는 그동안 숨이 찼던 거구나 깨닫게 된다. 이것이 후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주말에도 학교에 가고 싶다는 아이를 보니 일단은 좀 천천히 걷자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환장의 뮤지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