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언니와 함께 자전거 나들이를 했다. 언니는 나와 좋아하는 것이 서너 가지쯤 겹치는 사람. 그중에 한 가지가 자전거 타기다. 카페도, 식당도 늘 가던 곳만 가는 내게 언니는 새 지도 같은 사람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그녀의 뒤를 졸졸 따라가기만 하면 전에 알지 못했던 참 괜찮은 카페, 별미로 채워진 맛집 식당이 눈앞에 나타난다.
그날도 언니의 하늘색 자전거가 우리 집 검은색 자전거를 앞장섰다. 이 쪽 길은 울퉁불퉁해.라고 말하며 언니가 다른 쪽 길로 방향을 틀면 나도 그쪽으로 자전거를 돌렸다. 큰 대로변을 건너 카페 골목이 있는 작은 길 안으로 들어섰다. 커피가 너무 맛있다고, 언니가 나를 데려가려던 카페는 웬일인지 문을 닫았다. 휴무일은 아니었지만 주인장의 개인 사정 때문이었다. 아휴, 여기 커피 너무 맛있는데! 문 닫힌 카페를 바라보며 언니는 크게 안타까워했다. 그리고는 잠시 뒤. 언니의 눈빛이 빛났다. 아! 조금만 더 가면 진짜 맛있는 카페가 있어.
자전거로 몇 분 더 달려가 우리가 도착한 카페는 작은 에스프레소 바. 진갈색을 띤 원목 인테리어와 한쪽 벽이 가득 찰 만큼 큰 캔버스 그림은 계절의 한 폭을 옮겨놓은 듯했다. 좁은 테이블 곁에 둘러 서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에스프레소가 비워진, 작고 귀여운 잔들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고.
에스프레소 메뉴는 이전에 골라본 적 없고, 커피란 카페 의자에 진득이 앉아 마시는 것이라 여겼던 내게 그들의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다음에는 나도 서서 에스프레소를 마셔볼까. 새로운 걸 시도하고픈 마음이 가볍게 일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만큼의 용기랄까. 어쩌면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어 주저하던 도전도 실은 저 작은 커피잔만큼의 용기면 가능해질지 모른다. 카페를 나서는데 웬일인지 힘이 솟았다.
집에 돌아와 언니에게 카페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남겼다. 덕분에 가을을 잘 누렸다고. 힘이 난다고. 그러자 내게 돌아온 말.
'참 기분 좋은 말이네! 덕분에 힘난다는 말'.
고마움을 담아 전한 진심이 통한 것 같아 순간 내 마음도 환해졌다. 베풀어 준 은혜나 도움을 뜻하는말 '덕분에'.덕분의 '분'이 '나누다'라는 의미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평범하게 여겨지던 단어의 속뜻을 헤아려보니 흰 조약돌처럼 반짝인다.쓰면 쓸수록 상대도, 나도 기분 좋아지는 말이란생각이 들었다.
문득 좋은 하루를 보낸다는 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마음 통하는 한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한 가지쯤 나누고 적어도 기분 좋은 말 한 마디쯤 서로 주고받을 수 있는 하루. '좋은 하루'란 어디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
요즘의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게 또 있다. 바로 이 계절, 가을이다. 티 없는 하늘, 붉고 노랗게 바림 중인 단풍 나무, 두 뺨에 닿는 서늘한 공기. 가을 안에는 좋은 것들이 흠뻑 많다. 어디 뚜렷한 행선지가 없어도 집 밖을 나서고 싶어진다. 계절이 건네는 기쁨 한 잔을 받아들고 값없는 풍요를 따라 걷고 싶어진다.
참 좋은 계절에 참 기분 좋아지는 말을 읊조려본다. 당신 덕분이에요. 내가 힘이 나고 행복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