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를 지속하는 힘이란
대낮이었다. 마음을 크게 먹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씻지도 않은 채 수영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내리려는데 하교한 작은 아이와 마주쳤다.
"잘 갔다 왔어? 엄마도 수영 갔다 올게!"
아이가 반가웠지만 인사만 짧게 나눈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와 반대로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던 아이의 눈이 순간 동그랗게 커졌다. 이 시간에? 엄마가? 하지만 이내 '알았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는 집으로 올라갔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몇 년 동안 이 시간이면 하교하는 아이들을 맞이했다. 오전에 외출했다가도 아이들보다 일찍 집에 들어오기 위해 발길을 서두르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시간에 자유 수영을 가곤 한다. 매일은 아니어도 한 번씩 떠오르는 어느 맛집 식당처럼 수영장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집을 나선 후 수영장으로 향하는 길. 콧노래가 나온다. 십 여분의 운전이 기분을 새롭게 한다. 차 안에서 오후 2시면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을 켜고 몇 분간 음악 속에 빠져든다. 노르스름하고 투명한 햇살이 거리의 가로수마다 내려앉았다. 이내 차창 속으로도 쨍한 햇볕이 파고들었다. 가을이었다. 더위 속을 헤매느라 뒤늦게서야 새 계절임을 알아챘다. 짧지만 좋은 계절이 펼쳐질 거라는 기대, 그리고 기쁨이 차올랐다.
수영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났다. 하교한 아이들을 제대로 맞이하지도 않고 불쑥 수영장으로 향하는 나. 그만큼 열렬히 수영을 좋아하는가. 스스로 따져 묻는다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수영장을 갔던 횟수에 비례하여 수영 실력이 늘었다면 좋을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수영을 배웠을 땐 새벽반 수업을 꼬박꼬박 나갈 만큼 열정적이었다. 영법을 익히려 따로 유튜브 강습까지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모양의 열정이든 저마다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나는 수영을 통해서도 씁쓸하게 깨달았다. 온몸은 투명한 물속에 빠져있을망정 마음은 그렇게 빠져들지 못했다. 실력이 잘 늘지 않으니 수영이 힘들고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업 자체에도 불성실해지고 말았다.
지역구 체육센터에서 운영하고 있는 수영 수강은 경쟁이 무척 치열하다. 3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수강생을 받는데 한 번 놓치면 세 달은 쉬어야 한다. 한 번은 기존 수영 수업 시간과 새로운 달 수강 신청이 겹치는 바람에 나 대신 남편이 수강 신청에 도전했다.
-성공!! 장바구니에 담았어! 결제는 안 했어. 오늘 오후 6시까지!
-응, 알았어. 고마워!
수영 수강신청이 새롭게 오픈한 날, 수업을 마치고 재빨리 휴대폰을 보니 남편에게서 기다리던 카톡메시지가 와 있었다. 남편은 한 번에 몰린 수강생 후보들 사이에서 겨우 수강에 성공했다. 출근을 무려 삼십 분이나 미룬 채 꼼짝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던 성과였다. 그런데 그런 남편의 노력은 결국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날 안에 결제해야 수강 신청이 완료되는 것을 정작 당사자인 내가 까먹은 탓이다. 하루가 지나니 장바구니 속 수강 신청권은 사라졌고 나는 또 3개월 후를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규칙적인 수업이 없으니 수영을 지속하겠다는 마음도 쉽게 사라졌다. 울타리가 열리자 어디론가 뛰어가버린 집토끼처럼.
그런데 희한한 사실은 수영에 대한 마음은 뜨뜻미지근해도 수영장 가는 걸 은근히 즐긴다는 것이다. 꼭 성적은 좋지 못하지만 학교 안과 밖을 들락날락하는 건 좋아하는 학생처럼. 수업을 이어나가진 못했어도 한 번씩 자유수영을 가곤 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영법도, 자세도 제각각이지만 수영에 대한 열정의 온도만큼은 뜨거운 분들이 있다. 잘 쉬지도 않고 레인을 도는 이들 뒤로 나는 부딪히지 않을 만큼만 거리를 조절한 채 따라간다. 팔다리를 힘차게 움직이며 나아가는 수영인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안에도 잠자듯 했던 활력이 기지개를 켠다. 허우적, 허우적 물살을 가르다가 힘들어지면 나는 바로 옆 걷기 레인으로 얼른 몸을 옮긴다. 힘듦을 참거나 견디지 못한 채.
차르르, 차르르. 물 안을 걷고 있으면 수영 중일 땐 잘 와닿지 않던 물소리가 귓가에 생생하다. 숨을 고르며 걷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다가오는 할머니 두 분이 장난을 친다. 얼굴이 동그란 할머니는 얼마나 즐거운지 함박웃음을 크게 지었다. 시간도, 세월도 읽히지 않는 해맑은 표정이다. 나도 그 표정을 따라 마음으로 활짝 웃었다.
'삑-.'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자유수영 한 타임이 끝났다. 십 분만 더 기다리면 한 타임 더 자유수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딱 이만큼이 좋다. 계속 수영하는 것보다 수영 후의 샤워가 더 달콤하기도 하고.
오전 내내 참았던 샤워를 시작하자 온몸이 상쾌함으로 채워졌다. 곁의 아주머니들이 말없이 서로의 등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제가 밀어야 하는데요..."
"아유, 누가 밀어주면 어때. 시원하죠?"
물론 샤워장이 한산할 때나 목격할 수 있는 장면이다. 샤워를 마치고 수영장 위층 카페에 들렀다. 나의 방앗간 같은 곳. 저렴한데 맛도 좋아 늘 만족스러운 곳이다. 자주 마시던 카페라떼 대신 카푸치노를 골랐다. 수영과 샤워 후 아이스커피의 유혹은 참기 어렵다. 노곤해진 몸을 토닥여주는 맛과 향기. 내가 수영장을 좋아하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다.
오늘도 '운동이니 사력을 다해서!' 수영을 하진 못했다. 숨이 찰 만큼만 적당히. 집으로 돌아오면 며칠간은 또 수영을 잊은 채 살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후 2시의 드라이브 길과 해맑던 할머니 얼굴과 수영 후의 샤워가 생각나면 또 수영장을 찾겠지.
지금의 나는 수영장 가는 게 좋아서 수영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본질보다 주변적인 요소에 마음이 더 동하니 나 자신도 이상하다. 하지만 아무렴 어떨까. 이렇게 계속 수영장을 들락날락거리다 보면 언젠가 수영도 매일 먹는 밥처럼 자연스러운 일과가 되지 않을까. 열정이 사그라들어도, 의지가 다소 부족해도, 한 가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힘. 어쩌면 그런 힘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저 무엇이 되었든 이어갈 수 있는 작은 이유라도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로구나, 계속 해볼만하겠구나. 수영장 밖을 나서며 뜻밖에도 나는 마음이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