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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 Feb 17. 2020

시간이 흘러서 저절로 30대가 되었죠

 요즘 일주일 중 가장 즐겁고 생산적으로 보내는 날은 학원에 가는 토요일이다. 지난 겨울, 퇴사를 한 달 여 앞두고 시작한 이 수업은 이제 딱 한주차 만을 남겨 두었다. 많은 경험과 인생의 연륜이 쌓인 선생님들께 듣는 수업은 늘 그렇듯 자연스레 머리가 조아려지고, 자세가 공손해지고, 또 선생님 앞에 서면 자꾸만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해가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열명이 조금 넘는 인원으로 시작했지만 출석의 강제성이 없다 보니 이제는 대여섯 명 정도의 인원만이 수업에 오고 있다. 그중 나는 유일한 비전공자이면서 한 번도 결석하지 않는 것으로 나름의 자기만족 비슷한 걸 느끼며 수업에 참여했다. 글쓰기와 연관이 있는 직업군에 종사했거나 종사 중이거나 혹은 문예창작 같은 것을 전공한 학생들 사이에서, 10년이 넘게 음식을 만들고 에세이를 찔끔찔끔 써보다가 교정교열 수업을 들으러 온 내 이력은 입을 꾹 다물고 있기에 충분했다. 허나 힘들게 번 돈으로, 엄청난 고민 끝에 등록한 수업이니 눈만 껌뻑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아 물론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질문은 못하고 그냥 선생님께서 질문을 하시면 맞든 틀리든 대답만 제일 크게 했다. 하하.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늘 일주일간 궁금했던 점이나 학생들의 근황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다. 어제는 내가 그 대상이 되었고 내 나이를 들으신 선생님은 후배가 생각하기에 34년을 살면서 본인은 어떤 기분을 자주 느꼈는지, 다시 돌아간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물으셨다. (선생님은 학생들을 후배라고 부르신다) 


"저는 제가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좀 더 생각하지 않고 급하게 결정을 해서 나중에 후회하는 기분을 많이 느꼈어요. 요즘은 일을 당장 시작하고 싶지는 않지만 뭔가 이렇게 더 시간을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도 있고, 사회가 정한 제 나이에 걸맞은 위치에 못 미쳐서 제가 도태되고 있다는 기분도 가끔 들어요."

"후배는 정말 본인이 34살이라고 생각해요?"

"아.. 음.. 나라가 정한 기준으로는.. 그 해에 태어났으니까요."

"아니에요. 제가 생각하기에 후배는 이제 10대 초반이에요. 자 이렇게 생각해보자고요. 후배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의 모든 일이 기억나요?"

"다는 아니지만 간간이 어떤 순간들만 기억하고 있죠."

"맞아요. 그럼 그다음,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인생의 모든 순간들을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대부분 부모님의 결정에 따랐고, 또 어떤 순간은 상황에 떠밀려 저절로 결정되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럼 스무 살부터 혼자 모든 결정을 주체적으로 했다고 가정해도 후배는 지금 13-4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거예요. 후배는 서툴지 않아요. 충분히 실수하고, 실패하고, 하지만 계속해서 무언가 다시 시도할 수 있는 나이예요. 본인이 생각한 잘못된 결정이라는 것들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만회하고 방향을 바꿔볼 수 있어요."


 여기까지만 보면 10여 년 전 유행했던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떠오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형광펜으로 밑줄까지 그어가며 마음에 새겼던 내용과도 아주 비슷했다. 책은 발간과 동시에 크게 이슈가 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지만 그런만큼 책의 내용에 반기를 드는 이들도 점점 많이 등장했고, 개그 소재로까지 사용되었다. 나도 어느새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가며 읽던 마음보다는 '맞아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뭔 아프니까 청춘이래?'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노력하면 열에 예닐곱쯤은 성공하던 기성세대와는 다른 시점에 사는 젊은이들에게, 노력을 할 기회조차 제공되지 않는 세상에서 노오오력이 부족하다고만 지적하는 건 이제 먹히지가 않으니까. 그렇다면 올해로 14살인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은 무얼까. 




"겁먹지 마세요. 지나치게 겸손하지 마세요. 뭘 그렇게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어깨 좀 펴고, 좀 더 뻔뻔하게 행동해도 됩니다. 다만 계획을 세우세요. 기생충 보셨죠? 모든 일에는 다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당연히 그 계획이 계획대로 다 되지는 않잖아요? 그럼 다시 또 계획을 하면 됩니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어요. 내가 생각하기에 좀 더 크고 허무맹랑한 계획을 세워보고, 남들이 뭐라고 하든 헛소리는 그냥 걸러요. 내 인생이고, 내가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야 할 시간이 앞으로 더 많이 남아있잖아요. 실패를 하더라도 계획을 세우고 실패한 사람과 계획 없이 실패한 사람은 분명히 달라요. 실패해도 괜찮아요. 우리가 14살 때 뭔가 실패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모조리 실패했다는 기분이 들었어요?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어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제가 이만큼을 살아보니까 인생은 본인이 계획하는 데로 흘러갑니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계획을 하지 않아요."


 선생님께서 왜 내게 그런 질문과 그런 답변들을 주셨는지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어쩌면 어딘가 조금 불안한 내 눈빛을 읽으셨을까. '난 이제 34살이 될 거야'라고 주체적으로 생각해서 서른넷이 된 것도 아닌데 나는 뭐가 그렇게 사회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매번 자책만 했을까. 그저 시간이 흘러서, 그런데 그 시간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좀 더 빠르게 흘러서 이제는 선뜻 나이를 말하기도 민망해지는(아니 생각해보니까 이것도 내가 잘못했네) 시기까지 밀려온 듯한 느낌을 자주 느껴야 했다. 다만 그 흐름에서 내가 헤엄을 쳤는지 서핑을 했는지 발버둥 치며 물만 먹었는지는 나만이 판단해야 한다. 사회가 정한 기준이 아닌, 내가 계획한 내 기준에서 나만이 나를 판단하고 보완하고 나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처음 대학에 갈 때, 처음 서울에 올라올 때,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 가게를 정리하고 다시 직장인이 되었을 때마다 나는 늘 내 주변의 사람들보다 조금 앞선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도 이상한 괴로움을 느껴야 했다.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고 닦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는데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였는지 혹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시선들이 두려워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실패했다고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들 대부분을 '아 또 실패했다, 또 잘못된 판단을 했어'라며 스스로를 질책하고 그 실패에 매몰되어 스스로를 수몰시켰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간은 또 당연히 흘렀다.


 장사 이야기를 할 때는 장사를 어떻게 그렇게나 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냥 시간이 갔다고 어물쩍 대답했다. '그냥 시간이 갔어요 하하' 덧붙이는 말은 '그때는 어렸으니까요. 아무것도 모르면 겁이 없잖아요.' 맞다. 그때의 나는 어렸고, 겁이 없었고, 빨리 나이를 더 많이 먹어서 좀 더 성숙하고 사회적 기준에 맞추어진 어른이 되고 싶었고,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행동했다. 새벽 작업이 끝나면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다음날의 예약을 정리하고 다음 시즌을 미리 계획했다. 그렇게 5년을 했다. 5년 동안 즐겁기만 했던 것은 아니지만 세 번의 해외여행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빚을 갚았고, 이력서 한 줄을 채울 수 있는 인생의 1막을 여차저차 만들 수 있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걸어야 할 만큼 도덕적으로 크게 잘못하면서 살지않았고 남들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한 적도 없었는데 (아 매번 내가 울었구나 허허) 뭘 그렇게나 겁을 집어먹었는지 모르겠다.


 사회가 정한 기준이라던가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다른 이들의 행복에 반해서 내가 덜 행복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렸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갉아먹던지, 내 팔로워 700여 명 중에는 카페에 앉아서 종일 노트북 두들기는 내 모습만 보고도 상대적으로 자신은 불행하다고 느낄텐데, 나는 그들의 안락한 집 혹은 예쁜 아기 혹은 그들이 가진 반짝이는 물질들을 보고 늘 모든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난것 같고 그에 비해 나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고, 예쁘지 않고, 성장환경이 불안했고 하며 핑곗거리들을 찾아내며 나를 그들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서른네 살에 한 달에 300만 원을 못 벌면 행복하지 않은 사람일까. 서른네 살에 결혼을 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이 없고 고민만 하면 늦은 걸까. 만약 내가 어디까지 갖춰져 있어야 스스로 만족을 하고 남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까. 아마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사랑했어도 완벽하게 만족하고 100퍼센트로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근 다시 보기 시작한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도 온갖 명대사들의 범벅으로 세상의 중간 역할로 내몰린 30대들의 험난한 인생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20대처럼 순진하지 않고 40대처럼 노련하지 않은 30대에게 요구하는 사회적 기준들에 부합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연애하고 사랑하고 그 사랑의 결론이 결혼으로 이어지는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순간들로 내몰리는 30대들은 자주 갈 곳을 잃는다. 갈피를 잡지 못해 방황하고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느끼는 와중에 그건 당신이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의 탄피들이 이곳저곳에서 날아와 마음에 내다 꽂힌다. 모두 다 피해낼 재간이 없어서 울고 넘어지고 자책한다. 그래도 그 속에서 무언가 건져보려고 멸렬하게 움직이고 우아하지 않게 버둥대는 우리들의 모습이 꽤나 웃프지만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이고 움직인다. 


 서른네 살이 뭐 어때서. 내가 원해서 내가 서른네 살이 된 것도 아닌데. 시간이 흘러서 30대가 된 우리들, 이제 조금 더 어깨를 펴고 걸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치를 이제는 그만 좀 보고, 주눅 든 마음을 떨쳐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작가는 글을 써야 한다는 드라마 속 진주의 대사를 복기했다. 모름지기 글을 써야 작가다. 부끄럽고 화가 나고 즐겁고 피가 거꾸로 솟구칠 때에도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라고 하니 나는 조금 더 자주 글을 써보아야 할 것이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릴 것. 나를 도우려는 사람들의 손길을 내치지 말 것. 모든 일에 조금 더 확신이 있는 태도로 나설 것. 나의 즐거움과 나의 평온함에 초점을 맞출 것. 내가 애쓰는 모든 것들의 궁극적 목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나의 만족을 위함이라는 것을 늘 기억하며. 조급해 말고, 불안해 말고, 울고 싶을 때는 마음껏 울고.



윤지온,남영주 - 느린 걸음

https://youtu.be/eodcP-TnT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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