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시집살이로 엄마는 힘들었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아니.. 며느리의 엄마 삶이 보이기 시작한 전엔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좋았다.
나는 엄마가 2명이라고 생각했다.
할머니도 엄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고.. 맞벌이를 하기 위해서 나를 돌보아줄 누군가가
필요했는데.. 할머니 밖엔 없었던 것 같다.
기억은 안 나지만 엄마 말로는 외갓집에도 한 달 가 있었다는데.. 기억이 없다
지극정성으로 나를 애지중지하는 할머니 덕분에 외갓집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임팩트 있는 일이 없었을까나..)
엄마와 아빠의 맞벌이가 결정이 되어 일하러 가야 한다고 나한테 이야기했던 순간
어린 나는 엄마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고 한다.
" 내가 과자 안 먹을게.. 밥도 조금만 먹을게.. 이쁜 옷 사달라고 안 할게..ㅜㅜ 다른 집 엄마들은 다 일하러 안 가는데 왜 엄마는 가는 건데? " 이런 말들로 엄마의 마음을 찢어지게 했다고 한다.
지금 나도 워킹맘으로 힘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 시절 우리 엄마는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울면서 절규했음에도 엄마는 일하러 가셨다. 어린 마음에 엄마에게 배신감도 느끼고
하나부터 열까지 나한테 다 맞춰주고 아껴주는 할머니가 계시기에 엄마보다 할머니를 더 엄마처럼 생각하고
좋아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보다 할머니가 돌아가심 나는 못 살 것 같다.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 할머니셨지만 나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주시기에 엄마의 힘듬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으레 모든 할머니들은 며느리에게 저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엄마와 한 번씩 난리가 날 때마다 짐 가방을 싸서 집을 나가시는 할머니의 뒷모습과
할머니를 다시 모시러 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많이도 봤지만
그래도 뭐 할머니가 좋았다. [ 무한 사랑의 힘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
사춘기가 접어들고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엄마의 인생이, 며느리의 삶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할머니보다 엄마가 더 챙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