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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생 Nov 05. 2019

외향인도 내향인도 괜찮(았)다

다섯 번째 편지


외향인 같이 보여야 안심이 됐다.



'나는 어떤 성향입니까?'

내게 답하는 다섯 번째 편지



5일 차 주제. '성향'




외향의 기록



초, 중학생 때,    

장기자랑 때 판소리를 부르고 친구들과 춤을 춰보았다.


대학생 때,    

연극 동아리에서 공연 한 번을 올리고는 연극 교양 수업에서 또 한 번 연극을 했다.

전과한 뒤 촬영한다고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났다.

해외 프로젝트에 신청해 활동적인 외국인과 활동적으로 작업해봤다.


직장인일 때,    

항공사 지상직 일할 땐 항상 사람과 함께였고 많이 웃었다.


학생과 수업할 때,    

모든 에너지가 학생들한테 나갔다. 으레 그래야 하는 일 앞에서 뭔가 잘못돼가고 있단 걸 뒤늦게 알았다. 시간이 흐르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동굴, 술



항공사 지상직도, 수업하는 일도 외향형이 사람에게 에너지를 덜 뺏기는 것 같았다. 내가 밖으로 쓸 수 있는 에너지 총량은 주변과 확연히 차이 났다. 많은 사람을 대하면 금방 지쳤고, 직장에선 말 안 하고 좀 쉬고 있으면 고상한 척한다느니 우스갯소릴 들었다. 나쁜 의도라기보다는 그냥 서로 외계인 보듯 했다. 외향적인 사람이 주로 모이는 집단에 내가 속해있었으니 이질감이 컸다.


그냥 그뿐이었는데,


그때는 ‘뭐, 난 내향적인걸!’이란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부정적인 뉘앙스로 보는 시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열심히 외향인처럼 살았고, 그래야 내가 거기 존재해도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집에 와서는 동굴에 처박히듯 세상을 차단하고 술을 자주 마셨다. 취하면 모든 게 뭉개져 기분이 나았다. 술을 마시면 유쾌해진다는 말도 들었다. 노력하니까 외향인처럼 살아지긴 했다.





인생은 사건이 아닌 해석 중심



꾸역꾸역 산 과거를

부정적으로 비춘 감이 있지만

지금 글을 쓰며 드는 생각은

'그것도 괜찮았다’는 것이다.



인생은 사건 자체가 아닌 해석으로 사는 것이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한테 다른 옵션은 없었다고 판단했을 땐 외향인으로 애쓴 과거가 억울하고 미웠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외향적으로 살아보지 않았다면, 위에 줄줄이 열거한 경험은 지금 내 게 아니었을 거다.


한 해 한 해 지나며 행동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저 서툰 움직임이 왜 이렇게 예뻐 보일까.


예전엔 외향인의 가면을 쓰는 게 최선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떻게 존재할지 선택할 수 있는 나로 인식하고 나니, '나 외향인 때도 나쁘지 않았어'란 생각이 가능해진다.


결국, 내향이든 외향이든 그에 따른 강약 점이 있고, 필요에 따라 가면을 쓰고 벗는 건 유능하게 볼 일이지 가면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분명 어떤 성향에 가까운 우리가 좀 더 편하게 느낄 일과 자리가 있을 테니, 나를 아는 건 아직도 중요하다 생각한다.


나 아니어서 얻을 수 있었던 경험들, 지금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체험한 듯 멀게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내향인을 자처하고 있다. 내향인일 시기가 필요해서랄까.


 



사람들과 겉도는 대화 뒤 공허한 느낌이 들기도



정적인 곳에서 몸이 간질거리기도


엄마랑 항공사 퇴사 전 다녀온 하와이


누구보다도 혼자 하는 여행이 편하고 좋았던 나지만, 엄마와 함께한 여행이 돌아보니 정말 행복했다 느끼는 나.


마지막 심리 종합검사 결과를 보니 3년 전보다 내향성은 높아졌더라. 당연한 결과다. 난 내향형 인간으로 사는 게 확실히 편하다. 그치만 외향인으로 사는 것도 꽤 괜찮았다.







나를 찾는 여행 중,

내일은 여섯 번째 편지를 씁니다.


https://brunch.co.kr/@chograss/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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