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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층간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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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Jan 16. 2022

돈이 없어서 당하는 게 아닙니다.

층간소음 피해자들을 상처 주는 말

from pixabay

  아침부터 윗집과 혼자만의 전쟁을 치렀다. 윗집이 쿵쾅되면 천장을 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비웃듯 또 뛰기 시작하고. 이렇게 두세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만 더 지치는 것 같다. 남편은 한참 끼고 있던 이어폰을 벗더니 나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고쳐지지도 않는 것을 향해 수없이 두들기는 나의 힘없는 이 항의가 안 그래도 초라한데,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라는 작자의 눈빛이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든다.

 그 간 내가 경험해온 바로는 층간 소음 유발자들은 대부분 본인들은 아무 문제가 없으며, 아랫집 사람이 그저 예민하게 군다고만 여긴다. 자신이 내는 그 자그마한 소리가 온 벽의 콘크리트를 울려 아랫집 사람의 뇌를 뒤흔든다는 그런 기본적인 생각 자체가 없다. 그리고 이걸 하소연하면 대부분 더 비싼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라느니, 돈을 모아서 전원주택에 혼자 살라느니, 공동 주택에서 살면 다 참고 살아야 한다느니 식으로 피해자를 대하는 사람이 많다.

 층간 소음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흔히 '귀가 트였다'라고 하는 그 단계를 가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 평안한 일상이 무너지더니, 그 이후에는 모든 소리에 몸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나는 윗집의 차가 주차장에 서기만 해도, 윗집 남자가 퇴근하기만 해도, 윗집 아이가 어린이집에 제시간에 가지 않기만 해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층간 소음으로 고통받는 것은 소음 그 자체도 문제이지만 대부분 그 사람에게 가해지는 대응이 더 큰 고통이 된다. 나의 항의에는 귀 기울여주지 않은 채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층간 소음 유발자들, 함께 공감해주지 않는 동거인들, 뻔히 내 사정을 알면서도 새 아파트로 이사 가라는 말을 툭툭 뱉어대는 지인들. 이들이 내게 주는 무기력감과 절망은 층간 소음만큼이나 고통스러웠다.

 이 문제는 당연히 시공사와 소음 기준을 제대로 만들지 않은 정부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하지만 이미 아파트는 다 지어졌고, 다 지어진 아파트를 고칠순 없는 노릇이다. 20년이 넘어가는 아파트가 서울시에만 절반 이상이고, 30년이 넘어가는 아파트도 17%나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 사정에는 도저히 맞지 않는 새 아파트나 전원주택으로 이사 가라는 그들의 말이 나를 더욱더 초라하게 만든다.

 층간소음 카페에 가면 우리가 대한민국이 아닌 땅이라도 넓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이런 고통 겪지 않고 행복할 거란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혹은 돈이 조금이라도 많았다면, 혹은 로또가 되었으면, 층간 소음도 없는 좋은 새 아파트에서 고통받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도 많이 접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본질을 비껴간 이야기들이다. 기둥식 아파트도 윗집에서 작정하고 뛰면 천장이 울릴 수밖에 없다. 새 아파트도 층간소음이 아주 없는 것이 아니다. 뉴욕 중심부에 사는 미국인도 우리처럼 아파트에서 산다. 우리가 층간소음으로 고통받는 것은 '배려 없는 층간 소음 유발지' 때문이며, 그 인간들의 무례함에 우리는 당당히 맞서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침해받는 우리의 일상과 행복을 돌려받고 보호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건설기술과 촘촘한 정부 규제가 뒷받침되어 향후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층간 소음이 줄어들었으면 좋겠고, 언젠가 나도 그 혜택을 받게 되면 좋겠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루빨리 좋은 이웃들과 조용하게 함께 살아가게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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