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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채식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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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나물 Aug 08. 2021

내겐 너무나도 먼 채식

채식이 망설여진다면

 살면서 채식에 도전해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나는 조금만 집중하거나 옷이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위가 전혀 움직이지 않아 쉽게 체해버리곤 한다. 오늘도 새로 산 옷이 불편했는지 금세 체해버렸다. 예민한 성격 탓이려니 하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 날 고모가 위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리 가족은 첫째 고모가 위암으로 돌아가신 지 5년도 되지 않았는데 둘째 고모마저 위암으로 보내드려야만 했다. 장례식 장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위내시경을 꼭 챙겨서 하라는 말을 주고받으며 헤어졌다. 그날 이후로 아무거나 먹고 마시던 나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채식을 해야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규칙적으로 덜 짜고 덜 매운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정도만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 시작은 요가 때문이었다. <요가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적게 먹고 채식을 하면 자연스럽게 요가를 잘하게 된다기에 하루 한 끼는 샐러드로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제대로 된 채식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틱낫한 스님의 <How to eat 먹기명상>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채식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소극적으로는 붉은 고기만 먹지 않는 방법도 있고, 극단적으로는 식물에서 떨어진 열매만 먹는 방법도 있다. '비건(Vegan)'이라 부르는 단계는 달걀과 우유도 먹지 않는 단계로 흔히 생각하는 채식주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달걀과 우유를 먹지 않으려니 앞이 막막했다. 케이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빵은 물론 사랑하는 치즈까지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살바에는 그냥 맘껏 먹다 죽는 게 낫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여전히 망설이고만 있던 내게 가르치던 학생이 완벽한 채식주의자보다 10명의 채식주의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환경에 더 큰 도움이 된다며 오늘부터 자신은 고기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해볼 거라고 말했다. 이 말에 나는 큰 용기를 얻었고, 완벽한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노력하는 채식주의자가 되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날부터 조금씩 조금씩 노력하고 있고, 오늘도 여전히 노력 중이다. 만약 당신이 채식을 망설이고 있다면 지금 당장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시작해보았으면 한다. 이 이야기는 오늘 당장 달걀과 치즈를 끊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씩 조금씩 채식에 익숙해져 보자는 이야기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채식을 무조건 추천한다. 20대 때 나의 삶은 무지개 빛 색깔이었다.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우울하고 다시 기쁜 그런 다채로운 감정들로 형형색색 채워져 있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점점 감정이 무뎌져 갔고, 크게 소리 내어 웃는 일도 크게 소리 내어 우는 일도 점점 줄어갔다. 삶이란 캔버스에서 빨간색과 노란색이 사라져 버린 느낌이었다. 흑백은 아니지만 남색과 하늘색 정도가 남아있는 그런 우중충한 캔버스랄까. 채식을 시작하고 다시 내 캔버스에 색이 채워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낮에 먹은 토마토도 저녁에 먹은 고수 향도 조금씩 다시 캔버스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점점 굳어가던 몸의 감각들이 하나씩 다시 깨어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해보니 너무 좋아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이 기쁨을 나눠보고자 하루하루  채식을 노력하며 기록으로 남겨보기로 했다. 더불어 음식 명상을 이어가며 달라지는 몸과 마음에 대해서도 일지를 남겨보기로 했다. 아직도 망설이는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한 명의 완벽한 채식주의자보다
열 명의 축소 주의자가
동물복지와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믿는다.   
<축소 주의자가 되기로 했다> 이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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