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나는 가끔 하릴없이 노량진에 간다.
내 소울 플레이스는 노량진이다. 올해는 노량진에서 편입 공부를 한 지 딱 10년이 되는 해다. 이것도 저것도 하기 싫은 뜨뜻미지근한 날이면 노량진으로 향한다. 더 이상 용건이 없는 이 거리에는 내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이 녹아있다. 그 뜨거웠던 10년 전의 나를 찾으며, 노량진 거리를 걷는다.
오늘을 완전히 태워 내일을 준비하는 곳, 내가 누구인지 뭘 하는지 관심 없는 이 거리가 무심해서 좋다.
직장인일 때도, 다시 백수가 됐을 때도 아무 이유 없이 으레 한 번씩 들르곤 했다. 편한 차림으로 운동화를 신고, 옛날 공부했을 때처럼 가방을 메고 찾아간다.
회사에는 연차를 냈지만 집에는 말하지 않고, 출근하듯 나와서 노량진으로 향한다. 취준생일 때, 눈에 너무 익어버린 채용공고가 지긋지긋한 날이면 정말 하릴없이 노량진을 찾곤 했다. 노량진 거리는 초라한 나를 완벽하게 숨겨줬다.
나를 맞이할 사람도 우연히 알아볼 사람도 없는 곳, 자주 가지는 않지만 한 번씩 가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10년 전 그때 그 마음이 톡 하고 건드려진다.
사실 노량진 학원에서의 수험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3월부터 노량진 학원에서 편입을 준비했지만, 여름부터는 강남 학원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수업이 없는 주말에만 가까운 노량진 학원에서 자습을 했으니 공부한 기간으로 따지만 강남이 두배 이상 길었다. 강남지점의 강사진이 더 좋다고 해서 학원을 옮겼는데도 마음만은 옮겨가지 않았나 보다.
주중의 강남은 내 또래의 많은 직장인이 저마다 고층 빌딩으로 이동하기 바빴다. 쏟아져 나오는 직장인들의 점심시간과 마주치지 않도록 내 점심은 늘 느지막이 시작됐다.
그 사람 많은 강남 거리에서 나는 눈에 잘 띄었다. 멀끔한 정장 차림의 사람들 사이에서 맨얼굴과 트레이닝 복 차림의 내 초라함은 늘 강남 사람들의 화려함을 이겼다. 다들 내가 편한 복장으로 나온 동네 주민인 줄 알았는지 많이도 내게 길을 물었다. 심지어 외국인 관광객조차 아이를 목말 태운 채 굳이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와 길을 물었다. 원래도 길눈이 어두운 데다가 강남 지리라고는 지하철 출구, 학원, 자습실 위치밖에 모르는데 말이다. 매번 길 모른다고 답해도 ‘네가 왜 모르지?’ 하는 눈치였다. 종일 공부하느라 피곤하고 초라했던 내 모습이 창피하게도 너무 도드라져 강남에는 정이 들 새가 없었다.
주말마다 찾아오는 노량진은 강남과는 반대로 차분하고, 평온했다. 강남처럼 활기는 없지만(그 바쁨을 활기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노량진은 그 특유의 느릿함이 있었다. 길거리마다 즐비한 컵밥 거리도 좋았고, 수험생들만큼이나 카페가 많고 저렴해 하루에 음료 2잔씩은 꼭 마시고는 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영어단어를 놓치지 않던 사람들, 오늘 치르고 난 시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 모두 맞춘 듯이 나처럼 푸석한 얼굴과 트레이닝 복을 입고 있던 사람들. 학생 나이는 지났지만, 여전히 학생이라고 불릴 수 있던 그곳. 어떤 시험을 준비했던 걸까? 나처럼 편입은 많지 않았을 테고, 대부분 공무원을 준비하던 학생이었겠지.
아무리 힘들어도 가장 힘든 사람이 될 수 없고, 아무리 오래 공부한 날에도 제일 많이 공부한 사람은 될 수 없는 거리, 초라하고 후줄근한 내가 제일 후줄근할 수 없는 이곳. 나를 의기양양하게 만들지도, 주눅 들 게도 하지 않는 내 소울 플레이스.
그 시간의 터널을 지나면 모든 것이 해피엔딩일 것만 같았는데, 엔딩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지금은 공무원 열풍도 식어서 노량진에서 공부하는 학생들도 별로 없고, 컵밥 거리도 자연스럽게 하락세에 들어섰다. 점심시간에 찾아간 노량진에는 이제 지나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내가 자주 가던 돈가스집이며, 좋아하던 카페들도 사라져 아쉽지만, 그때의 그 분위기는 다행히 잔잔히 남아있다. 그 많던 학생들은 어디 갔을까? 노량진 점심시간에는 컵밥 포장마차 거리가 전부 북적였는데, 내 열정이 조금씩 식은 것처럼 그때의 그 후끈하던 거리도 차분해졌다. 나이는 나만 드는 게 아니었는지 이 거리도 나만큼이나 나이 들었다.
다들 밥은 먹고 다니나? 10년 전 그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이뤘을까? 아니면 그때의 뜨거움은 그 자리에 두고,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을까? 나처럼 가끔씩 뜨거웠던 이곳을 거닐며, 엔딩까지는 한참 남은 지금을 견디고 있을까?
내게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는 이 거리, 나를 기억하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나는 완벽한 익명으로 뜨거웠던 그때를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