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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Nov 30. 2022

축의금 7만 원에 대하여

어른들의 끝나지 않는 고민 - 축의금 얼마가 적당할까?


지난주, 전 직장 동료에게 모바일 청첩장을 받았다. 자세히 보니 카톡 프사도 웨딩사진으로 바뀌었다.

한때는 누구 결혼식이든 상관없이 결혼식에 가는 걸 좋아했다. 오랜만에 잘 차려입은 외출도, 설레하는 신랑신부의 모습을 보는 것도, 결혼식 뷔페도 좋아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청첩장을 받으며, 결혼식에 참석하는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그중 하나는 청첩장을 카톡으로 주는 지인의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위해 따로 시간 내기 아까운 사이라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울며 겨자 먹기로 소중한 주말을 할애하기 싫어서다. 부족한 성의(모바일 청첩장)의 보답은 그만큼이나 편리하고, 단순한 축하 이모티콘이면 족하다.


어른이 돼서 알게 된 인간관계의 진실 중 하나.

결혼식 참석 여부는 그 관계의 지속성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고, 따로 축의금도 보내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거의 틀림없이 정리된다. 나와 전 직장 동료의 관계도 여기에서 그만일 거다. 내 지인은 모바일 청첩장으로, 나는 축하 이모티콘으로 이 관계를 보이지 않게 정리했다.


결혼식 참석의 기준은 명확한데 아직도 축의금의 기준은 좀 모호하다. 친하다는 기준도 모호하고, 적당한 금액의 기준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적당히 친한 친구의 축의금을 고민하다가 <축의금 기준표>라는 글을 찾아냈다. 재미 삼아, 참고하기 좋아 그림으로 그려보았다.



결혼식이 장사는 아니지만, 축하해 주는 자리니 나는 어떻게든 식대 이상의 금액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비 신랑, 신부에게 청첩장을 받으며, 대접받았던 내 몫의 식사비용과 결혼식 식대를 계산해 본다. 5만 원은 부족하고, 10만 원은 왠지 부담스러울 때면 나는 축의금 7만 원이 내고 싶다.

축의금을 고민할 필요 없는 내 절친은 정말 몇 되지 않는다. 청첩장을 건네는 대부분의 지인들은 딱 축의금 7만 원처럼 내게 모호한 관계의 사람들이다. 나와 예비 신랑, 신부의 관계가, 나의 마음이 딱 7만 원이지만, 흔히 내는 금액이 아니라 늘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축의금 기준표>에서도 정의되지 않는 축의금 7만 원에 대해 한동안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고 다녔다.


내 이야기를 들은 전 직장동료는 10만 원이 얼마나 내기 아까웠으면 7만 원을 내나 싶다고 했다. 10만 원 내기 싫은 게 도드라지게 보여서 차라리 무난한 5만 원보다 더 보기 안 좋다고 했다. 그냥 3만 원을 더 쓰고 신랑, 신부의 얼굴을 편히 보는 게 낫겠다고 했다. 나는 전 직장동료의 조언에 따라 적당히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눈에 띄지 않게 10만 원을 축의 했다. 속마음은 7만 원인 10만 원짜리 봉투를 내면서 평범한 숫자 속에 내 이름을 숨겼다. 이번 축의금은 이미 냈지만 다음 결혼식의 축의금 금액을 결정하기 위해 내 질문은 계속됐다.


대학교 친구는 실제로 7만 원과 비슷한 금액을 축의금으로 낸 적이 있다고 했다. 친한 친구의 결혼식이었는데 럭키 세븐의 의미로 77,700원을 냈다고 했다. 거의 10년 전의 일이었으니 당시 7만 원이 적지 않은 금액이었을 테고 친한 사이니 괜찮았을 거 같았다. 77,700원은 7만 원보다 7,700원 더 많기는 하지만, 7만 원의 단점은 절묘하게 숨기면서 럭키 세븐의 특징만 남아 딱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동전이 관리되기 어렵고, 장난스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까 싶어 직접 쓰기는 좀 어려울 듯했다.


오빠는 실제로 축의금 7만 원을 받아봤다고 했다. 눈에 띄어, 이름을 보니 학교 다닐 때부터 친했던 친구였는데 그 금액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7만 원을 냈던 친구는 당시 첫 직장인 대기업을 퇴사하고, 이래저래 잘 안 풀렸다고 했다. 그때 친구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오빠의 결혼식에서 10만 원을 내기 힘들었을 테고, 5만 원을 내기에는 너무 미안했을 거라고 했다. 얼마나 10만 원이 내고 싶었으면 7만 원이라도 냈을까 싶었고, 그 마음이 전해져 축의금 7만 원이 그저 고마웠고, 마음 쓰였다고 했다.


기억과 편견은 그 사람의 경험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축의금 7만원은, 누구에겐 아까워 내지 못한 10만 원의 대체품이고, 다른 누구에겐 행운을 빌어주는 럭키 세븐이었으며, 또, 누군가에겐 꼭 내고 싶은 10만 원에 모자라 미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여름에는 더워서 햇볕을 피해 다녔고, 겨울에는 추워서 햇볕을 찾아다닌다. 같은 햇볕이지만, 상황에 따라 피해 다닐지, 찾아다닐지 달라지는 것처럼 궁금했던 축의금 7만 원의 의미도 달랐다. 결국 기준 없는 축의금 기준을 떠올리며, 오늘의 햇볕은 여름날에 따가움인지 겨울날의 따뜻함인지 느껴본다.


작가의 이전글 엔딩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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