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잘했다고 울어?” 어렸을 적 한 번씩 들어봤을 이 요상한 다그침 때문에 우리는 숨죽여 울어야 했다. 질문은 했으나 대답은 원치 않았던 이 꾸지람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침묵만이 정답인 이 질문을 먹고 자란 어른들은 눈물을 들키지 않기 위해 화장실에 숨는다.
스물셋, 출판사 영업 지원으로 입사한 지 채 4개월이 되지 않았을 때다. 영어교재를 구매한 일반 고객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몇 차례 전화했는데 여기저기서 책임을 회피했는지 잔뜩 화나 있었다. 전후 사정도 모른 채 이 전화를 받은 나는 졸지에 잘 걸려든 분풀이 상대가 되어 있었다.
화가 난 고객은 담당자 핸드폰 번호를 대라고 소리치며 날 몰아세웠고, 나는 고민하다 답해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당 직원이 우리 팀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문제가 있더라도 연구소에 연락이 오지 않도록 영업에서 마무리해달라는 부탁이라고 했다.
안 그래도 실수를 한 거 같아 마음이 계속 벌렁벌렁했는데 과장이 전화받는 걸 보니 더 움츠러들었다. 과장이 나한테 전하는 말을 대리가 엿듣고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곤 한심하다는 듯이 허공을 향해 짜증을 내뱉었다. “아! 개인 번호를 알려줘?” 허공에 쏘아진 책망의 화살은 용케 주인을 알아보고 내게 꽂혔다.
서럽고 눈물이 났다. 뭘 잘했다고 우는 건 아니지만, 의지할 곳 없는 회사에서 궁지에 몰리니 울컥했다. 거북이었다면 등껍질에라도 숨었을 텐데, 나는 맨몸으로 태어나 얼굴을 숨길 곳이 없었다.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로 가는 길, 꽉 다문 입술이 파르르한 진동과 함께 미세하게 떨렸다. 뜨겁게 뭉쳐진 울음을 삼키지도 뱉지도 못한 채 화장실에 도착할 때까지 물고 있었다.
같이 일했던 언니가 눈치채고 화장실로 따라왔다. 나를 달래주러 온 언니를 보고 들숨만큼이나 큰 울음이 올라왔다. 한 마리가 울면 따라 우는 맹꽁이처럼 언니와 나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화장실에서 같이 울어댔다. 이 울음의 시작이 누구였는지 모를 만큼 울고 나니 좀 진정됐다. 진짜 볼일 때문에 화장실을 찾은 직원들이 나 대신 담당 직원과 대리를 욕하며 위로해줬다.
시간이 지나 전화가 빗발치던 출판사를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갔다. 처음보다 사회 경험은 더 쌓였지만, 어쩐지 전보다 더 자주 화장실에 들락거렸다. 화장실에는 마음에 탈이 난 사람들이 벌써 한 자리씩 차지해 늘 만원이었다. 그때 화장실에서 서럽게 우는 사람들은 왜 그리도 많았을까? 실컷 울지도 못해 어설프게 상해버린 목소리와 부은 두 눈을 나는 가끔 모른 척했고, 가끔은 아는 척했다.
당신은 어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내가 그때 당신에게 준 것은 위로였을까? 창피함이었을까? 그렇게 나는 때로는 화장실 칸에서 숨어 우는 사람으로, 때로는 세면대 앞의 방관자로 몇 해를 더 지냈다.
TV 드라마 속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우는 모습은 마음 쓰였으면서, 왜 우리 회사 화장실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마음 쓰지 못했을까? 우리는 각자 인생의 주인공인데, 주인공을 대하는 내 태도가 변변치 못했었다. 아직도 화장실에서 울고 있노라면 회사에서 울었던 그때, 그 사람들이 생각난다.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고 있었던 사람들아, 맹꽁이처럼 같이 울어줘서 고마운 사람아. 화장실에 들어서면 당신이 아직도 나처럼 울고 있을까 봐 칸막이 넘어가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