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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름달 Apr 06. 2023

우리는 도망치는 중이다, 태어났다는 재난으로부터

에밀 시오랑의 <태어났음의 불편함>


제목이 곧 나의 심정을 읽어줬다. “태어났음의 불편함” 바로 그거다.


<태어났음의 불편함>의 원작 제목은 '지금 이 순간, 나는 아프다(De l'inconvénient d'être né)’이다. 에밀 시오랑은 지독히 염세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철학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우울해지는 것이 아니라 파안대소를 터트리게 된다. 처절하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그의 시선은 고개를 끄덕일 만큼 현실적이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엇을 하십니까?" 그가 답했다. "나 자신을 견딥니다."


선택해야 하지만, 선택할 수 없는 삶.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는 것이라고는 그저 나 자신을 견디는 일뿐이다. 아들러의 ‘자유의지’를 두 주먹 가득 차게 쥐었다가, 에밀 시오랑의 속삭임에 슬그머니 힘을 풀어본다. 자유의지만으로 풀어내기엔 삶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은 온다"라는 최승자 시인의 말처럼, 이제 이렇게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음을 느낀다. 나는 괴테의 말처럼 “죽기에는 너무 젊고, 놀기에는 너무 늙었다.” 너무 젊으면서 너무 늙은 오늘, 밍숭맹숭한 나 자신을 견뎌야 할 날들을 헤아려본다.


태어났음의 비극만 한가득 써놓은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삶의 고단함을 담아내서다. 우리는 태어남 자체를 질문받은 적 없었다. 유전자와 환경을 선택할 수 없었고, 성격과 재능을 고를 수 없었다. 선택권 없는 선택들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과 그로 가득한 삶을 견뎌야 한다.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언제가 처음이었고 마지막일지 가늠할 수 없다.


햇빛을 고루 받은 사과는 빨갛게 익어가고, 그렇지 못한 사과는 풋내가 난다. 나는 어떤 사과인가? 겉으론 달콤해 보여도, 뜨겁게 익지 못해 얼룩진 사과다.


우리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태어났다는 재난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이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다. 재난이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쉬지 않고 달린다. 따라잡지 못해 뒤처진 나 대신 재난으로부터 뜀박질하고 있다.

다 시간 덕분이다. 한바탕의 소동이 끝나가고 있다.


내가 결국은 언제나 최근의 적을 닮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래로
나는 이제 아무도 탓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유일한 사실은 삶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거의 아무것도라고 해두자) 없다는 사실이다.
나는 각자에게 예약된 모든 계산 착오를 기록해 놓은 실망 알림표를 생각하고 있다.
그걸 학교에 붙여놓는 것이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살아가는 데 성공한 이유는
우리의 결함이 하도 많은 데다가 서로 상충되는 것들이어서 그것들이 서로 상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내 시간을 살았다.
삶의 첫 순간을 포함한 어느 순간에나 이보다 더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은 없다.

우리는 각자의 시간대로 순간을 살고 있다. 누가 먼저고 나중이랄 것도 없는 각자의 시간 속, 우리는 출발선을 떠났지만, 가야 할 곳을 잃어버린 피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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