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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tcc Sep 23. 2021

한 싱어송라이터의 앨범에서 출발한 뮤지컬

뮤지컬 ‘하데스타운’(2021)

‘하데스타운’에서 음악과 이야기의 결합은 절묘하다. 



신화는 인간적이고 뮤지컬은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원은 음악이다. 뮤지컬 ‘하데스타운’의 큰 줄거리는 그리스 신화 속 오르페우스 이야기에서 따왔다. 자신의 노래로 저승의 신을 감동시켜 죽은 아내를 데려오려는 어느 음유시인  이야기. 그러나 이 신화가 비극인 이유는 지상으로 발을 내딛기 직전,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아내 에우리디케를 잃고, 오르페우스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하데스타운’에서 변치 않은 캐릭터는 순진하리만큼 음악의 힘을 맹신하는 오르페우스(박강현)뿐이다. 생활력이라곤 없는 가난한 싱어송라이터로, ‘봄을 불러올 노래’를 쓰는 데만 매진한다. 18세기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 카운터테너가 주로  맡던 오르페오 역할처럼, 뮤지컬 속 오르페우스의  넘버도 높은 음역대로 작곡되었는데, 박강현은  가성을 듣기 편하게 사용하며 잘 소화해냈다. 


남자(남편 오르페우스, 저승의 신 하데스)에 의해  운명이 좌우되던 에우리디케(김환희)는 이제 스스로 지하로 향한다. 가난한 지상의 삶에 지친 그는 이곳을 벗어나, 지하 세계에서 거대 산업을 운영하는 하데스와 위험한 계약을 맺는다. 석탄산업 시대 거대한 광산을 소유한 거만한 사장처럼 그려지는 하데스(지현준)는 노동자를 부리고 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큰 업적인 양 내세우는 캐릭터다. 그런 그가 약한 모습을 보이는 순간은 자신의 아내 페르세포네를 대할 때뿐이다. 허스키한 목소리로 과감하게 포크 록을 부르며 춤추는 오늘날의 페르세포네(김선영)는 그 어떤 인간보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하데스타운] 오프닝 넘버 Road to Hell 뮤직비디오 (song by 강홍석) /클립서비스


그리고 이 작품의 형식을 결정짓는 중요한 캐릭터, 바로 신과 인간의 세계를 이어주는 헤르메스(강홍석)가 있다. 두 세계를 오가는 신화 속 헤르 메스의 특성은 작품에서 제4의 벽을 자유로이  오가는 내레이터로 변용된다. 스탠드마이크 앞에 선 헤르메스는 관객에게 뮤지컬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며, 중요한  상황이 되면 해설자로 나선다. 때로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기도 한다. 창극에서 관객의 흥을 돋우고 줄거리를 전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전지적 시점의 도창의 역할인 셈인데, ‘하데스타운’이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아니이스 미첼(1981~)의 포크 앨범을 극화한 뮤지컬이라는 것을 떠올려 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미첼은 콘서트에 가깝던 초창기 ‘하데스타운’을 무대화할 연출가로 레이첼 차브킨을 낙점한 이유에 대해 “음악과 뮤지컬, 그리고 콘서트 문화의 가장 좋은 면들을 어떻게 극장에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감각이 아주 뛰어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작품의 콘셉트는 관객으로 하여금 마치 신화 속 캐릭터로 분장한 가수들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뮤지컬엔 실제로 콘서트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브로드웨이 원작 무대 디자이너의 표현을 빌자면 ‘뉴올리언스식 하이브리드 뮤직바’로 구현된 무대 양옆에는 밴드 연주자들이 올라와서 공연 내내 라이브 연주를 들려준다. 콘서트로 치면 무대 뒤쪽의 코러스 가수에 빗댈 수 있는 세 ‘운명의 여신’, 백업댄서처럼 가수 뒤에서 춤추고 합창하는 앙상블까지. 


그렇다고 해서 극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하데스타운’에서 음악과 이야기의 결합은 절묘하다. 다시 앞서 이야기한 무대를 살펴보자. ‘하데스타운’의 무대가 ‘하이브리드’인 이유는 뉴올리언스에 위치한 유명 재즈 공연장(프리저베이션 홀)과 고대 그리스 원형경기장의 형태를 절반씩 취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노래로 전해 듣는 관객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서울의 공연장인지, 혹은 인간과 신들의 세계 하데스타운의 공연장인지 모를 기분 좋은 모호함에 휩싸인다.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뮤지컬에 그칠 수도 있었다. 자본과 계약의 논리에 충실한 하데스를 노래 하나로 돌려세우다니. 그러나 미첼이 만든 오르페우스의 반복적인 선율은 이성적인 잣대에 익숙한 현대인까지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들어보았던 바로크 시대의 성악곡을 닮아 고전적인 멜로디는, 앞으로도 사랑받을 것 같다.


[하데스타운] 한국어 음원 Epic III 두 번째 뮤직비디오 공개 (song by 박강현) /클립서비스


*9월 9일 공연 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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